보스의 바람

이 남자의 생존법 - 각두

by Lali Whale

- 보스가 바람이 났데!

- 보스가?

- 그렇다니까.

- 이제까지 아무 일 없었던 게 더 신기한 거 아닌가. 근데 그게 뭐?

- 중요한 건 보스 사모가 다른 조직에 현상금을 걸었다는 거야.

- 다들 미쳤구만.

- 보스가 가만있겠어?

- 보스가 지금 가만 안 있으면 어쩌겠어. 누구 덕에 그래도 체면 유지하며 사는데. 사모가 이번에 완전 꼭지가 돌았다나 봐.

- 아주 집안일로 지랄이 풍년이네. 조직 돌아가는 꼴딱 서니 하고는. 현상금은 얼만데?

- 그게 무려 10억이야.

- 10억?

- 그렇다니까.

- 다른 조직원들 만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

- 그렇겠지만. 그래도 우리 보스 애인을 건들었다가 무사하겠어?

- 그지? 보스 애인을 잡아오면 되는 거야?

- 잡아오면 10억. 누군지 알아만 와도 1억을 준다고 했다는데. 그런데 동영상으로 불륜의 증거를 찍어 와야 한다고 했데.


흑장미파 행동대장 각두는 말쟁이이빨의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10억이면 반씩 나눈다고 해도 무려 5억이었다. 각두도 여기저기서 듣는 소문이 있었다. 무엇보다 보스의 운전을 담당하는 막내로부터 의심스러운 얘기를 들은 것이 있었다. 보스가 한 달이면 한 두 번씩 혼자 운전을 하고 어딘가를 갔다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 날이면 차 안에서 이전에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난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사모가 보스를 의심하게 된 이유일지도 몰랐다.


강북 나이트클럽을 꽉 잡고 있던 흑장미파는 인천에서 밀고 내려온 불곰파와 대낮에 영역 방어를 위한 전쟁을 치렀다. 문제는 거의 이긴 그 싸움이 CCTV와 행인들의 핸드폰에 찍혀 유튜브에 뜨면서 불곰파도 흑장미파도 조직원의 4/5 이상을 교도소에 보내게 된 것이다. 겨우 살아남은 보스와 조직원들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강남의 조직에 관리하던 클럽과 도박장을 모두 빼앗기고 도망치듯 강북을 벗어났다. 곳곳에 있는 CCTV와 핸드폰 때문에 이제는 폭력배로 먹고사는 일도 녹록지가 않았다. 그나마 보스의 사모가 그간 관리하던 돈과 사모 쪽 사람들이 주름잡고 있는 경기도 남부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조직은 완전히 와해되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흑장미파는 강북에서 경기도로 내려와 나이트클럽 서너 개와 불법 도박장 몇 군데만을 근근이 붙잡고 있었다.


그런 안 좋은 분위기 속에서 보스가 집안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한심스러웠지만, 각두의 눈에는 10억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조직이 작아지고 돈줄이 말라 각두 돈을 받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강북에 김마담이 언제까지 각두를 기다려줄 거란 보장도 없었고 지금처럼 돈도 없는 각두를 좋아할 리 만무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강남파의 젊은 놈이랑 붙어먹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각두는 이빨 빠진 호랑이인 보스 보다 김마담의 배신이 더 무서웠다.


각두는 그 길로 막내에게 전화를 해 보스의 일정을 물었다. 마침 보스가 오늘도 혼자 차를 몰고 나갈 거라고 막내에게는 열쇠를 두고 먼저 가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각두는 그 길로 바로 보스의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트렁크에 탔다. 보스의 차는 트렁크 안쪽을 손잡이가 달려 유사시에 뒷좌석에서 트렁크로 몸을 피하고 도망갈 수 있게 해 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참을 트렁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한참을 달려 멈췄다. 보스가 차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각두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잘못 나갔다가 들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제 이판사판이었다. 결정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각두는 트렁크에서 한동안 대기했다. 핸드폰을 켜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누르고 슬며시 트렁크의 문을 열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머니에 감춰 두었던 각두의 손도끼를 꺼내 잡았다. 아차, 하면 동영상만 찍어서 튈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을 뚫는 음악소리가 밖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차 주변으로 창고 같은 곳이 보였고, 그곳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각두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창고 앞으로 걸어갔다. 창고 문을 살짝 열었을 때, 각두는 들고 있던 도끼를 툭 하고 떨어뜨렸다. 창고 안은 마치 뮤지컬 세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한 조명이 중앙 무대를 비추고 있었고 주변에는 오색찬란한 드레스와 구두, 가방과 장신구가 널려 있었다. 핸드폰 화면으로 무대 중앙에서 반백의 근육질의 보스가 타이즈를 신고 여장을 한 채 춤을 추는 모습이 잡혔다. 보스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음악 소리에 각두의 존재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각두는 조용히 창고를 빠져나왔다. 각두의 눈앞에서 1억짜리 수표 10장 휘리릭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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