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생존법 - 동석
아침 건강프로를 보던 동석은 건강상식이 나오자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요새 부쩍 온몸이 찌뿌둥한 것이 자고 일어나도 도통 개운하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무릎이 아파서 악 소리가 절로 났다. 두어 시간은 거뜬히 다니던 산책길도 이제는 무릎이 아파 금방 돌아오곤 하였다. 산속이라고 특별히 불편할 것은 없었지만,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은 돈도 많이 들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산골에서 동석의 건강을 챙겨줄 사람은 자신 뿐이었고, 아프면 스스로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는 음식이나 운동이 있으면 가능한 기억 해놓고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한동안 효소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산을 돌아다니며 온갖 종류의 열매와 약초들을 따와서 설탕에 절여놓았다. 그렇게 담근 효소가 동석의 침실까지 그득 차서 자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빨갛고 시꺼먼 효소 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 안팎으로 버섯이나 나물, 약초를 말려서 걸어두거나 담아 두었는데 한 해 두 해가 가며 그 양이 많아져 지난해에는 몇 달에 걸쳐 세 번째 창고를 만들어야 했다. 처음 단출하게 시작했던 산골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한 칸 한 칸 늘어 거대한 왕국이 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동석은 자신이 이룬 것들을 보기만 해도 뿌듯했다. 오늘 방송에서는 비즈왁스알코올이 관절에 좋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벌집의 밀랍에서 추출한 물질이라고 했다. 벌집이라면 산책을 하면서 많이 봐오기도 했고, 산 곳곳에 다른 사람들이 설치해 놓은 벌집들도 있었다.
동석이 혼자 산에 들어와 산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동석은 함께 살던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고 다니던 회사에 명퇴바람이 불었을 때 몇 년 치 월급과 퇴직금을 받아 산으로 들어왔더랬다. 원래도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회사 생활이 적성에 맞아 다녔던 것도 아니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다른 가족이 있지도 않았기에 도시생활을 청산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당시에는 파이어족이 유행이기도 했고, 주말이면 텔레비전에서 산속에 홀로 사는 사람들을 촬영한 프로그램을 몰아 보며 산속 생활에 대한 로망을 키워왔었다. 하지만 산 속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전기나 인터넷은 들어와 있었고 사는 동안 수도도 설치되어 더 이상 지하수를 끌어다 먹을 필요가 없었다. 편리해지는 것은 좋았지만 그러면서 반갑지 않게 주변에는 집이 한두 채씩 늘어 그 점은 꽤 불만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작년에 자신의 집 윗 터에 새로 집을 지은 박 씨는 동석과는 처음부터 마음이 맞지 않았다. 박 씨는 동석이 즐겨보던 수백 년은 되었을 아름드리나무들을 죄다 베어 버리고 그 자리에 이층 집을 지었다. 산속까지 와서 굳이 이층 집을 지으려는 그의 욕심보가 못마땅했다. 집을 짓는 동안 배수로 설치를 잘못해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는 동석의 집이 홍수가 나듯 물이 들어차기도 하였다. 박 씨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동석은 수차례나 박 씨의 행태를 시청이나 읍사무소에 고발했었다.
동석이 아픈 무릎 때문에 등산 폴을 두 개씩 들고 산책을 나섰다. 등에는 필요한 약초나 열매가 있으면 넣기 위한 백팩도 단단히 메고 갔다. 오늘 산책 길에는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본 벌집의 밀랍을 구해볼까 하는 생각에 머리에 쓸 그물망과 밀랍을 담을 비닐봉지도 챙겨두었다. 예전에 기억을 더듬어 벌집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산속을 한참 들어갔을 때 사람이 만들어 놓은 벌통 여러 개를 찾아냈다. 반가운 마음에 가방에서 그물망과 칼을 꺼내 들려는 찰나, 벌통 주변으로 박 씨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하필 그것이 박 씨의 벌통이라니 확 짜증이 밀려들었다. 이 산이 전부 자신의 것인 양 구는 것 같아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석은 숲 풀 뒤에 숨어 박 씨가 떠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박 씨는 자리를 떴다.
동석은 조심스럽게 박 씨의 벌통 근처로 갔다. 벌들이 윙윙 날아다니는 것이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 산골에 초창기부터 터를 잡은 사람으로서 박 씨의 벌집의 일부분 정도는 자신이 가져간다고 죄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동석은 그물망을 쓰고 벌통을 열어 벌집을 꺼내려고 애를 썼다. 자신들의 집을 건드리니 벌들은 더욱 윙윙 거리며 동석 주변을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벌들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동석이 우왕좌왕하는 틈에 벌 서너 마리가 맹렬히 동석의 목과 팔에 침을 꽂았다. 깜짝 놀란 동석은 손으로 벌을 쫓느라 잡고 있던 벌집을 놓치고 말았다. 꿀이 뚝 뚝 떨어지는 벌집이 떨어지면서 벌통도 뒤집어지고 벌들은 더 기승을 부렸다. 동석은 엎어진 벌통을 세울 틈도 없이 벌을 피해 도망을 쳤다. 무릎의 통증은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등에도 다리에도 손에도 벌들이 달려들었다. 저 멀리 사람을 보고 누군지 가릴 겨를도 없이 살려 달라는 외침이 저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벌에 잔뜩 쏘인 동석을 시내의 응급실로 데려간 것은 윗집 박 씨였다. 박 씨는 동석에게 왜 그물망을 쓰고 거기에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박 씨의 차를 타고 병원에서 돌아온 동석은 자신이 소중히 담가 놓은 효소 한 병을 슬쩍 박 씨에게 건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