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생존법 - 지호아빠
지호는 할머니가 주신 용돈 5만 원을 엄마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재빠르게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 집에 가면 텔레비전을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매번 할머니가 용돈을 주는 것도 좋았다. 이제까지는 은행에 저금을 해준다는 구실로 어른들로부터 받은 지호의 용돈을 엄마가 모두 가져가 버렸지만, 이제 4학년이나 되었는데 엄마에게 돈을 다 뺏긴다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정당하게 항의를 해봤자 잘해야 몇 천 원을 얻을 뿐 지호가 사고 싶은 포켓몬카드를 충분히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같이 축구를 하는 민준이가 포켓몬 카드가 잔뜩 들어있는 앨범을 가지고 와서 자랑하던 꼴이 얼마나 얄밉고 부러웠는지 모른다. 다른 친구들도 포켓몬카드가 꽉꽉 들어찬 앨범을 한두 개씩은 모두들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호의 엄마는 그런 종이 쪼가리를 돈 주고 사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혀를 끌끌 찰 뿐이었다.
- 할머니가 용돈 주신 거 아냐?
- 아냐.
- 이상하네. 주신 것 같은데. 진짜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가 추궁을 했지만 지호는 딱 잡아뗐다. 혹시라도 엄마에게 들킬까 하여 재킷이 아닌 바지 주머니에 여러 번 접어서 넣어 놓았다.
지호는 학교가 끝나고 학원으로 가기 전에 자전거를 끌고 먼저 나왔다. 엄마에게는 도서관에 간다고 대충 둘러댔다. 바지 주머니에 어제 할머니에게 받은 5만 원이 보물처럼 들어있었다. 지호는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았다. 동네 문방구는 엄마의 백화점만큼 지호에게는 신나는 곳이었다. 지호가 좋아하는 너프건이나 비비총, 포켓몬 카드가 눈앞에 즐비했다. 매번 천 원을 내고 몇 장밖에 안 들어있는 카드를 살 때는 자존심도 안 살고 못내 아쉬운 마음이 컸다. 이번에는 5만 원을 내고 포켓몬카드 한 박스와 눈도장을 찍어 놓았던 카드 앨범과 슬리브를 샀다. 어깨가 으쓱하고 한 봉 한 봉 뜯어보고 싶은 마음에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하이퍼 레어가 한 장은 나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호는 포켓몬카드가 들어있는 비닐포장을 찢고 또 찢었다. 문방구 앞에는 지호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포켓몬 카드를 뜯고 있었다. 지호의 박스가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흥분해 날뛰었다.
- 하이퍼 레어다! 대박.
- 그거 팔면 10만 원도 넘게 하겠는데!
상기된 얼굴의 아이 손에는 지호가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진화한 용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레어템답게 떨어져 봐도 일반카드와는 다른 아우라가 있었다. 지호는 마지막 남은 카드의 포장지를 찢었다. 노란 피카추가 깜찍한 몸짓을 하고 있었다. 나쁜 카드는 아니었지만 흔하고 점수도 높지 않았다. 엄마를 속여서 까지 산 포켓몬 카드였는데 일반 카드와 GX카드만 나왔다는 것에 눈물이 찔끔 났다. 문방구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시간을 보니 이미 학원시간이 늦어있었다. 지호는 엄마의 전화를 받지도 않고 포켓몬카드와 빈 박스를 가방 안에 쑤셔 넣고 정신없이 학원으로 달려갔다.
수업에도 늦고, 교실에서는 선생님 말씀이 귀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혼날 것도 걱정이었지만, 5만 원이나 썼는데 레어 카드를 한 장도 뽑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화도 나고 돈도 아까웠다.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는 없고 아빠가 일찍 퇴근해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있을 때는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던 사발면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 지호 왔니! 학원 잘 갔다 왔어?
- 어! 아빠! 라면 먹네! 엄마가 먹어도 된대?
- 비밀이지!
- 비밀?
- 지호도 먹을래?
아빠가 행복하게 웃으면서 말하는데 지호는 왠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 아빠 나도 비밀 있는데.
- 뭔데?
- 그럼 아빠도 엄마한테 비밀이다.
지호는 가방 안에서 포켓몬 카드 백여 장을 꺼내어 놓았다. 모두 꺼내놓고 보니 다시금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 어제 할머니가 준 용돈으로 샀는데 레어템이 하나도 안 나왔어. 민준이도 있고 우리 반 다른 친구들도 다 있는데 나만 없어. 돈도 다 썼는데 한 장도 안 나왔어.
지호의 눈에서 눈물이 삐죽삐죽 나왔다.
- 지호야 아빠도 어릴 때 문방구에서 50원씩 뽑기 했었거든. 그런데 한 번도 1등을 못 뽑은 거야. 그래서 어느 날 모아 놓은 용돈 만원을 다 가져가서 뽑기를 한 적이 있거든. 그때는 뽑기에서 1등 하면 커다란 잉어킹 엿을 줬거든. 그런데 어떻게 됐게?
- 잉어 뽑았어?
- 아니. 만원 다 날렸지.
- 에이. 그게 뭐야.
- 문방구 아줌마가 내가 너무 실망해 있으니까 부러져서 팔 수 없는 잉어킹을 주셨어.
- 뭐야. 내가 아빠 닮아서 똥손이네.
지호는 아빠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다. 주전자에서는 물이 팔팔 끓고 있었다. 아빠는 지호에게도 사발면을 하나 끓여 주었다. 지호가 좋아하는 진라면 순한 맛이었다. 아빠와 함께 맛있는 라면을 먹고 있자니 멋진 포켓몬 카드를 뽑지 못해서 서럽고 실망스러운 마음이 어느새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