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생존법 - K
K는 아쿠아리움에 있는 전기뱀장어를 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퇴화된 듯 작은 눈과 뭉툭한 입이 아무리 봐도 너무나 못생겼지만 1미터가 넘는 길이에 근육이 탄탄해 보이는 꼬리로 힘차게 헤엄치는 모습은 위풍당당해 보였다. 그런 위세가 허세가 아니라는 것은 먹이를 잡기 위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K는 개장 때부터 녀석의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전기를 발생시키기를 기다렸다. 만화에서나 보듯 노란색의 스파클이 튀기는 것이 아니었다. 사육사가 주는 먹이를 먹을 때 자세히 보면 먹이가 전기에 충격을 받아 움찔움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K는 손을 데지 않고도 상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 힘이 너무 부러웠다.
K는 전기뱀장어를 동경했지만, 미꾸라지 쪽에 가까웠다. 전기뱀장어에게 제대로 한 번 대응도 못해보고 움찔거리다 잡혀 먹히는 미꾸라지. K는 턱과 이마에 여드름이 잔뜩 난 얼굴을 알이 굵은 안경으로 살짝 가렸다. 학교에서는 흔히 말하는 찐따였고, 몇몇은 오타쿠라고 불렀고, 대부분은 그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 K는 쉬는 시간이면 혼자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아 패드에 그림을 그렸다. 주로 파충류나 거미류, 심해의 어류 같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생물체였다. K는 자신에게도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다면 하고 바라왔다. 아무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숨겨진 힘이 있다면 자신을 툭툭치고 가고도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똥이라도 밟은 듯 불쾌한 표정을 짓는 이 학교의 인간들을 모두 고통 속에 빠지게 만들고 싶었다.
- 그거 뭐야?
- 전기뱀장어..
- 엄청 못생겼네. 꼭 미꾸라지 같이 생겼는데?
- 아직 다 안 커서 그래. 크면 미꾸라지도 잡아먹어.
- 징그럽구만. 너 그림 진짜 같다. 완전 리얼.
새 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된 연수는 한 번씩 그의 그림을 보고는 아는 체를 하곤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언제부턴가 그녀가 자신을 봐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림이 잘 그려진 날은 은연중에 연수가 와서 봐주기를 기대했다.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더 신기한 생명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특별한 힘이 없어도, 그녀가 좋아할 만한 새롭고 독특한 생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부터인 것 같다. 연수는 K가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면 찾아와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언제나 방학을 기다리던 K는 올해는 방학이 되는 것이 아쉬웠다. 그녀를 만날 수는 없지만, 방학 동안 더 많이 그리고 그 결과물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 한 달이 지나도 연수는 K의 그림을 보러 오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는 K가 끔찍하게 싫어하던 기태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대놓고 K를 무시하고 따돌리던 아이였다. 왜 연수가 그런 애와 어울리는지 화가 났다. 연수는 어느 날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신이 나 보였고, 어떤 날은 책상에 얼굴을 처박고 울고만 있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게 연수가 사귀는 기태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K는 미칠 듯이 화가 났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칭찬해주던 연수마저 빼앗아간 기태가 미웠다. 하지만 기태는 고등학교에 와서는 K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기태는 보냉병에 얼음물을 싸가지고 다녔다. 점심시간이면 다른 애들과 농구를 하고 들어와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친구도 많았고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그런 기태가 굳이 연수까지 차지한 다는 것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으억. 뭐야!
기태가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고 반으로 와서 물을 마시려다 헛구역질을 하며 무언가를 토해냈다. 미꾸라지였다. 까만 미꾸라지. 그 모습을 보고 연수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아이들도 진저리를 쳤다. 기태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점심에 먹은 급식을 다 게워냈다. 아이들은 그런 기태를 보며 야유를 퍼부었다. 기태가 토한 자리로 미꾸라지가 꿈틀꿈틀거렸다. 마치 전기라도 내뿜는 뱀장어처럼 기세가 등등했다. 깔깔거리던 연수의 시선이 그림을 그리는 K에게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