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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Nov 21. 2024

차라리 인수인계를 하고 싶다

나는 일반 직장이 아니라 어디로 언제 옮기든 업무 인수인계를 할 필요가 없다. 이제까지 내가 일한 개인 센터는 그러했는데, 아마도 대기업 상담센터 같은 경우는 각 기업의 업무 강령이나 인계절차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나 같은 경우는 퇴직을 할 때면 나 혼자 내담자와의 종결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했다. 단순히 이직을 할 때야 얼마간 기존의 상담실에 나가면서 내담자에 속도에 맞게 종결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센터가 문을 닫을 때는 그들의 타임라인에 맞출 수가 없다. 지금처럼 한두 달의 여유가 있을 때는 대부분 문제 되지 않는다. 또, 상담사도 사실은 작은 나사 하나라 내가 아니어도 다른 상담사가 대체할 수 있다. 내가 뭐라고 '나 아니면 안 돼!'라고 거만을 떨겠는가.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훌륭한 다른 상담사가 천지에 깔렸고 지금 같은 불황에 아마도 절실한 마음으로 내담자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내담자와 종결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기존의 내담자들에게 센터의 마지막 영업일을 알리고, 내담자의 요구나 걱정을 경청하고 함께 종결을 준비했다. 알맞게 상담기간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니어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나와 추후상담(정기 상담이 끝나고 시간 간격을 넓게 해서 점검을 목적으로 하는 상담회기)을 약속했던 과거 내담자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이달 안에 마지막 상담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상담비를 미리 냈든 아니든, 나와의 상담에 다시 문을 두드렸을 때 없는 번호, 없는 사람이라고 알게 된다면 허망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어쩌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고 슬픈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들이 마지막 상담을 하러 오든 아니든, 내가 이제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인사하고 싶었다. 나와 상담을 하러 오지 않더라도 혹시 그들이 미리 지불한 상담비가 있다면 환불받아야 함도 마땅하니 말이다.


아.. 하지만 모든 것이 어디 계획대로 되냐 말이다. 


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내담자가 센터가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눈물만 흘리고 말을 잊지 못했다. 기간별로 상담중간평가를 할 때마다, 많은 성장을 보인 내담자였다. 그럼에도 자신이 나아진 것을 믿지 못하고 성장의 축하를 자신을 밀어내려는 구실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상담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담자가 말했다. 

 

다음 상담 때까지만 죽지 말고 견뎌보자고 생각했어요. 


아... 가슴이 무너진다. 그는 매번 옥상까지 딱 세 계단을 앞두고 멈췄던 것이다. 상담에 오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안고 더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막막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내담자의 진심이 나를 흔들었다. 난 그만두고 중장비랑 베이커리 배울 건데.. ㅠㅠ 이 구역 고인물인 나는 모든 것을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필요한 내담자에게 나는 어떻게 상담자로서의 책임을 다 할 것인가? 아직 정답이 없지만, 이 답을 찾는 것 역시 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믿는 것은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예상컨대 그를 살린 것은 나의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이별이 오히려 그를 더 견고하게 만들지도 모를일이다.  보조바퀴가 떼어진지도 모르고 두발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릴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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