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브런치에서 구독하는 '육아도 하는 변호사'님의 <조각난 엄마의 시간, 그 속에서 마음을 쌓아갑니다>를 읽었다. 글 속에 작가는 어머니가 쌓아놓은 모래더미를 내 것처럼 가져오며 자라났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 엄마로서 아이에게 내 모래를 어떻게 내어 주어야 할 것인지 두려움이 들었다고 했다.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모래성을 허물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령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할지라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엄마는 자기 몸의 한 움큼을 원하든 아니든 내어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난 인간은 어느 누구도 그 부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물며, 주 7일 연 365일을 밤낮으로 일해도 법에 저촉됨이 없던 야만의 시대에 부모로서 살아온 사람은 어떻겠는가. 나의 엄마가 그랬고, 그 안에서 그녀의 올망졸망한 딸들이 엄마의 모래성을 허물며 컸다.
나의 엄마는 가져올 모래더미가 턱없이 적었던 6.25를 겪어낸 7남매의 6째였다. 엄마는 빈손으로 결혼해서 남편이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온 돈을 자본 삼아 장사를 했다. 엄마가 밤낮없이 일한 덕분에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걱정하며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늘 현금이 없었고 나는 늘 가난을 마음으로 느끼며 살았다. IMF 무렵에 장사를 할 때는 가게로 매일 일수 아줌마가 찾아왔다. 엄마에게 5만 원을 받으면 자신의 수첩과 똑같이 생긴 엄마의 손바닥 만한 수첩에 각각 도장을 찍어 주고 사라졌다. 엄마는 1 금융권에서 더 받을 수 없는 도움을 동네 사채꾼에게 빌어 쓸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런 시간은 꽤 길었다. 하지만 사채를 쓸지언정 우리 딸들의 학원비는 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학원비를 받아가는 나는 매달 부채감에 시달렸다. 내가 허물고 있는 엄마의 모래성은 하루 벌어 하루 쓰는 간당간당한 크기였기 때문이다. 나와 언니들이 허물어가면 엄마는 그 모래를 한 줌 써보지도 못하고 다시 쌓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 가장 미안했다.
하지만....
우리가 허물고 있는 모래성 옆에 빨간 벽돌집이 차곡차곡 올라가고 있었다.
어릴 때는 몰랐던 사실을 고등학교쯤이 되어서 알았다. 우리 집에 이다지도 현금이 없는 것은 엄마가 목돈이 생길 때마다 부동산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획적인 엄마는 모래성 만으로는 불안했던 거다. 엄마는 착실한 농부가 노는 땅을 못 보듯 노는 현금을 못 봤다. 심지어 끌어 쓸 수 있는 대출은 모두 땡겨 부동산을 샀다. 방이동 집은 분당땅과 강변역의 아파트로 둔갑하고, 그 뒤로도 돈이 생기면 가평, 온양, 증평, 강원도까지 여기저기 씨를 뿌렸다. 팬티는 꿰매입을 지언정 땅은 팔지 않았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묻는 어린 딸에게 엄마가 알려준 비밀은 부동산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깍쟁이들보다 우리 집이 더 부자라고. 엄마의 얘기는 허튼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부자마인드를 조금 얻었다. 다소 어깨뽕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 아파트 깍쟁이들의 부모님도 더 많은 자본으로 열심히 부동산을 사 모았기에 우리가 더 부자는 아닐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은 모두 힘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힘든 사람은 그 중심에서 자신이 사놓은 땅을 지켜야 했던 엄마였을 테지만, 선택의 힘이 없던 나는 그저 미안하고 답답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 벽돌집이 있고 너른 논밭이 있다 한들 내가 보는 곳의 모래성은 매일매일이 아슬아슬했다. 나는 일수 아줌마처럼 엄마의 얼마 없는 돈통에서 몇만 원을 헐어가는 칼만 안 든 강도였다. 미안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혼자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고 집에 오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밥도 했다. 학원에서 농담 한 번 하지 않았고 숙제 한 번 밀리지 않았다. 매번은 아니었지만 문제집을 사는 것이 아까워 위아래 여백에 한 번씩 답을 쓰고 세 번째가 되어서야 본바탕에 문제를 풀기도 했다. 교복이 반들반들 해지도록 교복만 입고 상표도 없는 싸구려 구두를 밑창이 헤 벌어질 때까지 신었다.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하는 건 너무너무 미안했다. 이유가 무엇 이건 엄마는 늘 돈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 엄마는 왜 돈을 다 땅에 박을까? 생활비와 대출이자에 허덕거리는 엄마가 유독 힘들어 보이는 날에는, 그래서 더 눈치가 보이는 날에는 원망이 들었다. 왜 저렇게 까지 모을까. 현실은 이리도 곤궁한데...
엄마가 벽돌집은 좀 작게 짖고 모래성을 조금 높게 쌓아주길 바랐다. 내가 헐어가도 너무 티 나지 않게 확 무너지진 않게 말이다. 그래야 좀 덜 미안하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의 벽돌집은 두고두고 엄마의 밥줄이 되어주고 있다. 환갑 전에 은퇴한 엄마는 상가주택의 월세로 생활비를 쓰고 계신다. 엄마의 씀씀이에 비해 충분치는 않아 보이지만 아주 부족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막내! 넌 아등바등하지 마. 사고 싶은 거 사고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엄마가 살아보니 너무 그럴 거 없어. 그냥 즐기면서 살아."
엄마. 난 일찍이 알았어. 내가 엄마한테 계속 말했잖아. 그냥 쓰시라고. 으이긍~~~
염치없는 딸년은 엄마의 모래성을 매일매일 헐어가면서 눈치는 조금만 보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엄마가 술만 마시면 서러워 펑펑 울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도 좀 다른 아줌마들처럼 쓰면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 아이가 내 모래더미를 가져가더라도 '덜' 눈치보기를 바랐다.
그런데 웬걸.
이 자식은 왜 '전혀' 눈치 보지 않지? 이렇게까지 안 볼 일인가? 내가 너무 행복했나? 이 아이는 내 배를 박차고 나오는 순간부터 우렁차게 당당하고 과하게 뻔뻔하다! 일 년에 한두 번 자신도 감사는 한다는데 화나면 나에게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그다지 진실해 보이지 않는다! 선물로 주겠다는 그림 속 '엄마'는 3년 째 눈코입이 없고 "TO. 엄마에게"까지 쓴 카드 역시 2년 째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 실정이다.
아들? 조금은 눈치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흠... 나는 어떻게 내 모래더미를 아이에게 내어 줄 것인가? 아... 이 녀석은 안 준다고 해도 퍼갈 것 같은데... 고민이다.
아들, 그래도 엄마가 사랑해!
엄마, 감사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