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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Apr 10. 2023

O. 무능력을 감당하는 시간

Persevere! 가혹함을 견디기.  

Persevere! 가혹함을 견뎌라.

젊은 시절 책상 앞에 써붙여놓았던 단어입니다. 그런 때가 있었네요.


근래 텔레비전에서 김미경 강사가 40대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한 강의를 일부 보았습니다. 그중에, 처음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다면 자존심은 가방에도 넣지 말고 다니라는 얘기가 솔깃하게 다가왔습니다. 자존심 세우지 말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투자해야 진정한 자신감이 생기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는 시기가 온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을 넣어두는 시기... 내가 사실은 부족하기 때문에 남들의 평가에 더 발끈하고 열등감을 가지는 시기.라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 시기를 "무능력을 감당하는 시기"라고 얘기합니다. 그 시기는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오고 극복하면 또 다른 이슈가 생기는 넘어도 넘어도 나오는 산 같은 시기이며 그것이 인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에게도 그랬습니다. 3년간 미국에서 상담박사과정을 공부했었는데요. 한국에서는 논술, 상담, 말싸움. 말로 하는 건 다 자신 있던 나인데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는 갑자기 장애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공항 입국장에 외국인으로 줄을 서 있는 순간, 당당했던 어깨가 축 처지고 세상에 둘도 없이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학교 때 영국으로 10개월 워킹홀리데이 가고 영어학원 다니면서 배운 게 다인 토종 한국인이 갑자기 미국 가서 영어로 수업도 듣고 일도 하고 상담도 해야 하니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졌던 적은 살면서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한동안은 버스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에서처럼 잘할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 당시는 14시간 차이에 전혀 다른 취급을 받는 다른 정체성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O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도 꽤 잘하고 학교에서 인정도 받는 인싸였지만, 중학교에 가면서, 하필 코로나 19로 가정학습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다시 갔을 때는 다 같이 놀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들은 계속 공부를 해왔고 자신만 뒤쳐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좌절했습니다. 다시 공부를 해보려고 했지만 성적은 뜻대로 오르지 않고 이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다시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게임만 하게 되고 그러면서 부모님과도 자주 싸우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면서는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가보니 역시 공부는 잘 되지 않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커졌습니다.  


이런 경우가 저와 O 에게만 있는 특별한 일일까요?


팬데믹 기간 동안 가정학습기간이 늘어나면서 학습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 학생들이 매우 많아졌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학업에서 지체되었고 어떤 학생들은 대인관계에 정체됨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는 비단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때, 과거에 포기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려 할 때 마주치는 좌절과 불안이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취직을 하거나 직종전환이나 이직을 할 때, 자신을 계발하려는 취지에서 도전적인 일을 시작할 때, 퇴직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한 동안은 무능력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O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공부는 너무 어렵고, 공부했다고 생각하는데 성적은 충분히 오르지 않는 것에 1차 좌절을 하고 2차로 공부를 못하면 대학에 못 가고, 대학에 못 가면 자신의 인생은 망했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도저히 다시 시작할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의 끝에는 다 포기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똬리를 틉니다. 시작하지 않는 것도 불행하고 불안하지만, 노력을 해서 실패하고 자신에게 반복해서 실망하는 것은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스트레스나 불안은 적당히 높으면 성취도를 놓이고 일의 효율이나 집중도를 높이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성취도도 효율도 곤두박질치게 만듭니다. 그것 차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 과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죠. 지금 O는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 시간이 지속되면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불안에 다시 용기를 내어 상담에 온 것입니다.


무능력을 견디는 시간.

가혹함을 버텨내는 시간.

자존심을 가방에도 넣고 다니지 말아야 하는 시간.

그 시간은 나를 완전히 타버리게 만들 수도 있지만, 알에서 깨어나게 만들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우선은 O는 얼마나 힘들게 다시 서려하는지, 그간 얼마나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괴로웠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비난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알아줍니다.


마음에 작은 창이 살짝 열리면,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내 생각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부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아마 특정기간 공부를 했지만 성적이 그다지 오르지 않아 실망한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공부가 1년 놀다가 1달 한다고 성적이 쑥 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2~3년 놀다 1개월 하면 성적이 오를까요? 우선은 하루 6시간 이상 1개월을 꾸준히 장시간 앉아있기도 힘들거니와 실제 성적도 기대만큼 안 오릅니다. 이게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의 오류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특별히 집중력이 떨어지고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오래 공부를 안 해서 공부의 습관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실제 성적향상을 위해서는 꽤 오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인 기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고등학생이 되면서, 대학에 대한 부담은 커지기 때문에 불안은 실제 가능한 수준 보다 더 빠른 성과를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도 불안도 더 높아집니다. 그러면 자연히 성취도는 더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불안과 스트레스 속으로 나를 몰아세우기보다, 불안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면서 조금씩 지속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에 쓴 글에서 처럼 "이 대학 안 가면 이번 생은 망"하지도 않고요.  


무엇보다, 지금 이 무능력을 감당하는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쓰레기같이 지내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버티고 지켜온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O는 살아있고, 학교를 졸업했고, 또다시 시작하려고 일어섰습니다.

더 나빠질 수 있었고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지만 버티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바라건대 무능력한 자신을 자책하고 비관하기를 멈추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도약하려 할 때 한동안 무능력하고 그 시기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내가 모자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이 결코 즐겁고 유쾌하지만은 않겠지만 분명 당신을 크게 합니다.


젠장.. 고난은 축복이라는 말에 까르띠에 반지라도 거절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고난이 당신을 크게 한다고 말하고 있네요.  


꼭 거쳐야 하는 고난의 시기라면 가장 낮은 언덕을 그래도 쉽게 오를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본문의 사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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