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생존법 - 유나
텔레비전에서 유명 훈련사가 입질이 심한 강아지를 훈련시키기 위해 보호자들을 교육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작고 깜찍한 애완견 같았는데 돌연 잇몸까지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더니 이내 자신의 주인을 콱하고 물었다. 피가 나게 물고도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혓바닥이 보라색으로 변할 정도로 제 분을 못 이기고 있었다. 10kg도 안 되는 강아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주인들을 보니 유나는 답답하고 한심한 마음마저 들었다. 자신이라면 저 주인도 몰라보는 녀석의 목을 움켜쥐고 깨갱 소리도 안 나게 혼내서 버릇을 고쳐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솟았다. 주인에게 온전히 의지해서 사는 애완견 주제에 꼬리는 못 흔들 망정, 배은망덕하게 입질을 하는데도 그저 물리고 있는 주인들을 보니 마치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처럼 분통이 터졌다.
- 쾅쾅쾅
유나의 방문을 세차게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유나는 얼마 전에 안방의 문고리를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 쉽게 열 수 없는 열쇠형 문고리로 교체했다. 버튼식으로 된 문고리는 젓가락을 이용해 밖으로 작게 나있는 구멍을 살짝 눌러주기만 하면 너무 쉽게 열렸기에 멧돼지처럼 쳐들어오는 아들의 행패를 막을 수가 없었다. 유나의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또래보다 큰 키도 아니고 입이 짧아 어릴 때부터 잘 먹지 않아 반에서 가장 마른 축에 들었지만 성격이 불 같았다. 한번 화가 나면 눈앞에 뵈는 것이 없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개를 10시 방향으로 쳐들고 반말로 소리를 꽥꽥 질렀다. 그런 동물상태의 아들과 얘기를 해봐야 남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유나가 안방으로 스스로를 격리하면 아들은 젓가락으로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와 남은 화를 다 터트리고 가야 진정이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유나도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면 부모가 버릇없게 구는 자식들에게 "네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면 씩씩거리면서도 들어가던데, 유나의 아들에게는 도통 통하지 않았다. 유나 자신이 어릴 때라면 부모님에게 소리를 지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어린애지만 성깔도 힘도 장난이 아닌 터라 유나는 안방까지 침입하는 아들을 못 들어오게 막는 것도, 밖으로 내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정말 내보내겠다는 마음만으로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라도 잡는 날에는 가정폭력을 당한다고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방법이 안방의 문고리를 바꾸는 것이었다.
- 왜 패드 시간을 다 막아놨냐고! 원래 1시간은 하는 건데 왜 엄마 맘대로 다 줄여놨냐고!
- 네가 숙제를 다 하지 않으면 게임시간 조정한다고 벌써 열 번도 더 넘게 얘기했어.
- 왜 미리 말도 안 하고 줄여놨냐고! 엄마 때문에 이기고 있는데 그냥 꺼졌다고!
- 난 왜 인지얘기했어. 그냥 날 비난하려는 거라면 그만하고 돌아가!
- 뭔 개소리냐고! 원래 아무것도 안 해도 1시간은 하는 건데 왜 다 막아놨냐고!
- 아무것도 안 해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고, 숙제 다 해야지 1시간 게임하는 거고 못하면 게임 못하는 거야.
- 누구 맘대로!
유나는 더 얘기해 봐야 목만 아플 거라는 생각에 미리 준비해 놓은 소음을 완벽히 차단해 준다는 헤드폰을 꼈다. 스스로를 위해 고가에 구매한 명품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었다. 핸드폰 음원 어플에 아들이 소리를 지를 때 들을 음악을 미리 저장해서 종류별로 파일도 만들어 놓았다. 오늘은 록음악을 선택했다. 순간 아들의 고성방가가 뇌리에서 사라지고, 이메진드레곤스의 고음의 보컬과 리드미컬한 기타와 드럼소리가 현란하게 요동쳤다. 확실히 비싼 것이 제값을 한다는 생각에 유나는 뿌듯했다. 한 시간 정도의 재생시간이 끝나갈 쯤이면 아들도 제풀에 지쳐 방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피하려고 노력해도, 고요가 찾아왔을 때는 성취감이나 희열보다는 억울함과 좌절감이 밀려들었다. 유나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 아들의 저런 행패를 지켜봐야 하는지, 자신의 방으로 피신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인지 서럽고 한심했다. 아들이 개라면 목줄이라도 잡고 훈련을 시킬 테지만 그랬다가는 벌써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갔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꿈꿔보기도 했다. 간식을 던져주며 숙제도 시키고 잘하면 쓰다듬어 주고 안 하면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굴면 바디블로킹도 하고 켄넬훈련도 시켜서 흥분해 있으면 '하우스'하고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기를 말이다.
유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켰다. 아들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보던 개를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OTT로 다시 빨리 감기해 틀었다. 훈련사가 사나운 개에게 핀치칼라를 끼우고 여유 있게 웃으며 동네 산책을 시키고 있었다. 옆에서 따라가며 지켜보던 반려견 보호자가 얌전한 자신의 개의 모습에 연신 놀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산책이죠.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 시켜주셔야 해요.
유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개나 인간이나 한 시간은 시켜줘야 하는 거네. 근데 저 개는 숙제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