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생존법 - 미영
소연이 은근슬쩍 조금씩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미영은 꽤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소연과 미영은 고등학교 때 부터 친구였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돈을 쓸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미영이 학교 매점에 갈 때면 '나도 나도'하며 따라와 얻어 먹곤했다. 학생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얘기가 달랐다.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아이들에게 돈을 모아 자신의 카드로 결제를 하곤 했는데, 미영이 찬찬히 계산을 해보면 걷은 돈 보다 결제된 금액이 적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만나면 유쾌하고 재밌는 소연의 매력이 있었고, 어릴 때 미영이 성적이나 가족 문제로 힘들어 할 때는 옆에서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미영의 생일날 몇천원 되지 않는 핸드폰 케이스를 선물로 사오고는 자신은 명품 핸드백을 메고 나타나 주인공처럼 구는 모습을 본 후로는 그나마 있던 정 마저 뚝 떨어져버렸다. 미영은 오랫동안 가지고 싶어도 비싸서 사지 못한 가방을 그것도 자신의 생일날 굳이 메고온 소연이 너무 얄미웠다. 밥값도 제대로 안 내는 년이 명품백을 사고 SNS에는 필라테스를 하는 사진이나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폼을 잡고 있는 사진을 올리는 것이 너무나 어이없었다.
미영은 소연에 대해 자신만 유독 고깝게 생각하나 반문해보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렇게 째째한 사람이라고 결론이 나진않았다. 다른 친구들을 만날 때는 자신이 조금씩 돈을 더 내기도 하고, 기념일에는 커피나 조각케익 같은 기프티콘도 조건없이 먼저 보내곤 했다. 하지만 소연의 행동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는 것은 정말 옆에서 지켜본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왠지 내가 먼저 돈 얘기를 하는 것은 쪼잖해보이는 것 같아 말할 수가 없었다. 한번은 슬쩍, 먹은거에 비해 회비가 많은 거 아니냐고 얘기했지만 소연이 완전한 실수 인 것처럼 '어 그랬나 미안' 이라고 하며 남은 돈은 다음 모임때 쓰자고 웃고 넘어가는 바람에 아무일 아닌 듯 지나가고 말았다.
한 번 정이 떨어지니 다음 부터는 소연에 대한 모든 것이 꺼려졌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만나왔던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을 소연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억울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미영은 단톡에서도 소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불편해 자신도 모르게 빈정거리거나 소연의 말에는 의식적으로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단톡을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해져 알림도 꺼놓고, 며칠에 한 번씩 미뤄뒀던 톡을 확인해보곤 했다.
그 날 저녁도 그랬다. 거의 일주일 만에 쌓여있던 톡을 확인했다. 수백개의 톡에 1이 떨어지지 않고 달려 있었다. 단톡방은 흡사 전쟁터와 같았다. 그 난장판의 중심에는 소연이 있었다. 알고보니 소연이 주변 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자잘한 돈을 빌려왔고 서로 서로는 얘기를 하지 않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 한 그 중 한 명이 단톡방에서 그 사실을 터트린 것이었다. 그 다음 부터는 소연에 대한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드디어 그녀의 본색이 드러난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은 너무 급작스럽고 과격했다. 소연의 가족이 다 사기꾼이라는 패드립부터, 소연이 자신의 남친을 꼬셨다는 고백, 가지고 다니는 백이나 SNS의 사진들이 모두 가짜라는 얘기까지. 어느 순간 소연이 단톡을 나가면서 소연에 대한 폭로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미영에게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일이어야 하는데 톡을 다 읽고 전보다 더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곧 돈을 갚겠다고 울며 비는 모습의 이모티콘을 올리는 소연의 궁색함이 짜증났다. 10년이 넘게 친구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칼날 같은 비난과 확인할 수 없는 조롱도 섬뜩했다. 소연이 채팅방을 나가고 잠시 소강상태였던 단톡방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금새 각자의 얘기를 하기에 바빴다. 누군가의 해외여행사진, 백화점 오픈런을 기다리는 모습, 남자친구와의 백일반지.... 미영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에는 소연이 생일날 준 핸드폰 케이스가 끼워져 있었다. 파스텔 빛 비즈가 촘촘이 박혀 있는 화려한 케이스였다. 벌써 비즈가 중간중간 빠져 나가 볼품없어져 있었다.
미연은 조용히 단톡방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