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생존법 - 금선
운전대를 잡은 금선의 귓가로 짹깍짹깍 시계 초침소리가 재촉하듯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가다가는 면접시간에 늦을 거란 생각에 반듯하게 차려입은 검정 재킷 안쪽의 하얀 블라우스가 땀으로 찐득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바빠서 겨드랑이에 데오드란트를 뿌리고 나오는 것도 깜박하고 말았는데 인터뷰 중에 냄새가 날 것을 생각하니 더 짜증이 났다.
며칠 전부터 온갖 단톡방에서 이제는 우회전을 할 때마다 일시정지를 하고 다시 가야 하는 것으로 교통법이 바뀌고 계도기간이 끝났으니 주의하라며 메시지가 왔었다. 그래서인지 교통경찰들이 곳곳에서 어리숙한 운전자를 잡아 딱지를 끊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우회전을 기다리는 모든 차들이 매번 멈췄다 다시 가고 또 멈추다 보니, 예정도착 시간이 자꾸만 늦어졌다. 이제 금선 차례가 되어 멈췄다 다시 가려고 보니 코너를 지나 차 한 대가 경찰에게 걸려 붙잡혀 있었다.
"아. 진짜 병신 같은 것들이 거지 같은 법을 만들어서 세금만 뜯어내려고!"
금선은 운전대를 탁탁 치면서 욕을 했다. 언제 금선도 그 운전자처럼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50이 넘은 나이에 다시 일을 구하면서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기 한이 없었다. 이제야 아이들 거의 다 키우고 이자나 학원비 걱정 없이 남편이 벌어주는 돈, 오롯이 쓰면서 사모님 놀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금선은 결혼을 하고 둘째가 생기면서 10년 넘게 일하던 직장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고 가정 주부로서 최선을 다했다. 회사원이었던 남편의 월급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으며 아이들 학원비를 내려면 남들이 흔히 하는 보톡스는 고사하고 네일 관리 한 번 받으러 갈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아끼고 아끼며 지내왔는데 작년에 남편이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금선이 기다렸던 디데이에 남편 역시 이때부터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별러왔던 것이다. 남편은 금선의 반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퇴직금 중에 일부를 이용해 산속 땅을 매입하고는 집을 짓겠다고 떠나버렸다. 매주 등산을 다녀서 돈 안 드는 취미라고 말리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살 곳을 보고 다닌 것이었다. 남편은 착하고 순한 사람이지만 한 번 꼴통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까지 심하게 금선의 뒤통수를 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편은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퇴직금, 후에 나올 연금이면 노후에 쓸 자금은 충분하다고 금선을 설득했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아직 환갑도 안 된 나이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데 벌써 집을 정리하고 있는 통장의 돈을 빼서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남편이야 좋겠지만 금선은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고 20년이 넘게 살아온 지역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 아파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관 입구부터 화장실 타일하나까지 금선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매일 같이 금선이 쓸고 닦고 고치고 새로 만들며 자식들이 결혼해서 손자 손녀가 와도 함께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계획하에 꾸민 집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떠났고, 금선은 큰 집에 홀로 남겨졌다. 집을 팔지 않았고,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없어지면서 생활은 곤궁해졌다. 그렇다고 대학생인 둘째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째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자식들은 아직은 더 도움을 줘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자신만을 생각하고 떠나버린 남편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야속했다. 그럼에도 생활비는 매일매일 들어갔고, 세금은 빠지지 않고 날아왔다. 금선은 어쩔 수 없이 고용센터에도 가보고 돋보기를 쓰고 핸드폰으로 구직정보를 알아봤다. 20년 전과는 너무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그래도 과거에 무역회사에서 경리회계를 봤던 경험이 전혀 쓸모없지는 않았는지 작은 무역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2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길은 막히고, 우회전에서는 자꾸 멈추고, 겨드랑이에는 땀이 흥건해졌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흐르는 땀 때문에 애써한 동안 메이크업이 얼룩덜룩 뭉개지는 것 같았다. 금선은 거의 처박다시피 차를 주차장에 쑤셔 박았다. 살면서 한 번도 떼지 않은 딱지들이 얼마나 날아올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벌써 면접시간이 5분이나 지나있었다. 금선이 도착한 오래된 5층 짜리 건물에는 엘리베이터조차 없었다. 안 신은지 삼백 년은 된 것 같은 검은색 하이힐이 금선의 발볼과 발가락들을 고문하듯 옥죄었다. 숨을 헐떡이며 501호 문의 벨을 눌렀으나 인적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앞이 막막했다. 금선의 인생 전체가 여기서 일시정지되어 버린 것 같았다. 빌딩을 잘 못 찾은 것인지 자신이 일정을 헛갈린 것인지, 아니면 집을 나간 남편 때문인지, 애들을 기른다고 일을 그만둬서 인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도무지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대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목 끝까지 밀려왔다.
- 면접 보러 오셨나요?
계단 아래서 금선보다 젊은 여자가 올라오며 말했다.
- 네.
- 오는데 어찌나 차가 밀리던지. 오다가 우회전에서 안 섰다고 경찰에 걸리는 바람에 이렇게 늦었네요.
초면에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 아. 그죠. 저도 우회전할 때마다 서는데 적응이 안돼서 당황했었어요. 딱지 떼신 거예요?
- 네. 6만 원이요.
여자는 장난스럽게 눈물짓는 표정을 했지만 밝고 상냥했다.
- 어휴. 도둑놈들! 너무 속상하셨겠어요.
- 그죠! 진짜 너무해요.
- 네. 정말 말도 안돼요. 저도 오면서 몇 번이나 화가 치밀던지.
- 맞아요! 저랑 같은 생각이시라니 너무 반가운데요. 이제 안에 들어가서 더 얘기 나누실까요? 저희 사무실이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올라오기 쉽지 않으시죠? 담에는 그냥 운동화 신고 오세요. 저도 그게 편하더라고요.
잠깐이었지만 여자랑 있자니 금선의 긴장이 어느새 뭉글뭉글해지는 기분이었다. 501호의 문이 열리고 상큼 달콤한 향기와 함께 사무실 창에서 밝은 햇살이 쏟아져 나왔다. 복도의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와 큼큼한 냄새와는 전혀 다른 세상 같았다. 금선의 습습한 겨드랑이로 상쾌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