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생존법 - 미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은 일주일에 오직 하루, 일요일 낮 12시부터 다음날 월요일 12시까지다. 새해가 되면서 주 2일이던 분리수거 날이 주 1회로 바뀌면서 미연은 매주 재활용 쓰레기와의 전쟁이었다. 시간을 맞춰서 쓰레기를 내다 놔야지 아무리 다짐을 해도 일요일이면 행사나 약속이 왜 그리 많은지 얼렁뚱땅 지내다 보면 월요일이 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월요일 아침에는 회사에 제때 가는 일도 쉽지 않은데 일찍 나가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미연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지방의 신도시 아파트에 살았다. 미연이 사는 분당의 끝자락은 회사까지는 차가 밀리지 않아도 편도로 1시간 반이 걸렸다. 회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집 근처의 7분 거리의 버스 정거장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가서 다시 또 시내버스를 갈아타거나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다. 처음 분당에 아파트를 사려고 알아보던 때만 하더라도 회사가 강남에 있어서 광역버스를 탄다고 해도 30~40분이면 갈 수 있었다. 미혼이던 미연은 아파트 청약 점수가 부족해 반복해서 청약에 떨어지면서 웃돈을 내고 다른 사람의 아파트 청약권을 샀다. 자신이 청약 가점을 받을 수 없어 수천만 원의 피를 내고 청약권을 사야 한다는 것이 못내 억울했지만, 아파트 값은 계속 올라 자신이 추가로 낸 금액의 10배는 이득을 본 셈이었다.
하지만 20년이 넘게 강남에 있던 회사가 서대문구로 확장 이전을 한 것이 지난해 말이었고, 아무리 밀려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던 출퇴근 길은 야근 후에 아무리 차가 안 밀려도 1시간이 넘게 걸리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연의 마음을 부유하게 해 주던 천정부지의 집값도 올해부터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회사가 이전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미연은 절대로 이곳에 집을 사지 않았을 거라고 밀리는 버스에서 앉을 자리도 없이 서서 갈 때면 이를 바득바득 갈며 회사를 원망했다.
재활용쓰레기를 버리지 못한 지 2주가 넘어갔다. 오늘도 늦지 않게 버스 정거장으로 뛰어갔지만, 앉을 자리가 없어 버스를 한 대 놓치고 혹시나 지각을 하는 건 아닌가 하여 마음을 졸이다 겨우 버스에 올랐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서서 가더라도 기다리는 승객은 모두 태워 갔었지만 지금은 미연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도 태워줄 수 없다는 정부의 지침에 하루하루 출근 전쟁에 피가 말랐다.
이제 40대 중반인 미연은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어떤 때는 따라가는 일만도 버겁게 느껴졌다. 최신형 전자제품을 쓰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가방이나 명품 몇 가지는 뒤처지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트렌드에 맞는 음악이나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돈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미혼인 데다 피부과도 정기적으로 다녔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 애가 있는 친구들에 비해 한참 어려 보인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1시간 반이 넘는 출근길은 어려 보이는 것과 별개로 미연에게는 너무나 버거웠고, 재활용쓰레기를 대신 버려줄 남편이나 자식이 없다는 것이 오늘따라 서러웠다. 아무리 깨끗이 헹구어도 배달용기에서는 냄새가 났고 귀신같이 날파리가 알고 찾아왔다.
이번 주에는 정말이지 쓰레기를 내다 버렸어야 했다. 미연의 입사 동기가 일요일에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피로연에서 자신이 꽐라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다시 또 쓰레기를 쌓아두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러다가는 바선생 마저 미연의 집에 새끼를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회사에서도 온통 재활용 쓰레기에 대한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미연은 서둘러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활용쓰레기장이 혹시 문이 열린 것은 아닌가 둘러보았다. 하지만 쓰레기장의 나무문은 굳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이미 비닐은 비닐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대로 커다란 봉지마다 재활용 쓰레기들이 잘 분리되어 싸매어져 있었다. 미연은 낙심한 마음에 집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자동센서로 켜진 불빛에 어두운 거실 한가운데 작고 날랜 살아있는 생명체가 잽싸게 자취를 감추는 모습이 예리한 미연의 눈에 포착되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 빠르고 검은 생명체는 바퀴벌레 같았다. 미연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끔찍하게 생각한 존재였다.
미연은 모든 방의 불을 켜고 바퀴벌레의 흔적을 찾았다. 이번 주에 냄새가 날까 하여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둔 세탁실의 창문을 열고 간 것이 화근이었다. 모기장은 닫혀있었지만 물구멍으로 벌레가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제와 찾아보니 문틀의 물구멍이 생각보다 아주 컸다. 미연은 숨을 죽이고 앉아 혹시 모를 위기에 대비하기 위하여 고무장갑까지 착용하고 플라스틱 용기를 하나하나를 뒤져 보았다. 뒤지다 보니 묵직한 용기 하나에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져 나왔다. 며칠 전 배달해 먹은 김치찌개에 반찬으로 나온 잡채가 플라스틱 용기에 그대로 담겨 상해 있었다. 주변으로 날파리가 분주하게 도망을 갔다. 안쪽 용기에는 날파리가 낳은 알들이 참깨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에프킬라를 뿌리고 찍찍이와 청소기를 이용해 주변을 싹 쓸어 담았다. 세탁실은 물론 집 전체의 가구 밑과 바닥, 벽과 가구 사이사이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어디선가 기어 나올 바퀴벌레를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아 다행이면서도 잡지 못한 것 같아 불안했다. 이렇게 침대에 누우면 숨어있던 벌레가 나와 미연의 얼굴을 태연하게 지나갈 것 같은 두려움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퀴벌레를 찾아 헤매며 미연은 바퀴벌레 전문 방역업체와 아파트 바퀴벌레로 검색을 했다. 왜 들어오는지 어떻게 막는지 모든 정보를 검색했다. 아침이 되면 무엇보다 먼저 연락을 해서 방문 신청을 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생활용품 전문점에서 창틀의 물구멍을 막는 얇은 철사로 된 테이프도 당장에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바퀴벌레를 잡지 못하고 동이 텄다. 얼마 만에 마주 하는 푸른 새벽인지 몰랐다. 이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인 재활용쓰레기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에 결혼을 한 동기가 미웠고, 술을 마시고 취해버린 자신이 싫었고, 아파트의 재활용 분리수거 횟수를 줄인 관리사무소에 화가 났다. 미연은 이 모든 상황에 분노했다.
미연은 지난해 유럽여행을 갈 때 샀던 여행용 캐리어를 꺼냈다. 수하물 붙이는 용도로 산 캐리어라 안이 상당히 컸다. 캐리어 안에 재활용쓰레기를 꾸역꾸역 담았다. 종이와 박스가 있어 꽤 묵직했다. 부피가 큰 플라스틱 용기와 스티로폼은 그 안에 다 담기지 않았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남은 재활용 쓰레기와 제일 냄새가 많이 나는 비닐쓰레기를 담았다. 미연은 샤워도 하지 않고 야구 모자를 꾹 눌러쓴 채 캐리어와 봉지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해가 다 떠오르지 않아 주변은 어둡고 단지 안은 조용했다. 미연은 커다란 봉지를 재활용 쓰레기장 안으로 농구공처럼 던졌다. 무겁지 않은 봉지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아무렇게나 떨어져 나뒹굴었다. 미연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캐리어를 끌고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이른 시간이라 정가장이 한산했다. 버스에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연은 캐리어를 끌고 회사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