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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Jul 08. 2018

하노이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은 현재 베트남(베트남민주공화국)의 제1대 국가 주석이다. 그의 재임 시절 동네 아이들이 주석궁 마당에 찾아와 그의 수염을 만지면 웃었고, 그런 아이들과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함께 놀아주었단다. 아이들은 그런 호치민을 파파호호나 호 아저씨라 불렀다. 호치민은 주변인들에게 화내지않고 일관되게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호치민이 젊은 시절부터 거친 직업은 극적이다.

교사, 보조요리사, 하인, 집사, 선원, 정원사, 청소부, 노동자, 웨이터, 댄서, 사진수정자, 식당노동자, 식기세척기 세척원, 제빵 보조, 호텔 주방보조 등을 생업으로 하며 다양한 하층민의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의 경험을 북베트남 하노이,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광동/산시/윈난 등에서 섭렵했다고 한다.


그는 식민지 독립을 목표로 베트남 민족의 자유를 위해 고민하고 실천한 지도자였다. 이제 국내 언론에서는 호치민을 가장 위대한  20세기 피식민지 국가 정치지도자라고 평하기도 한다. 물론 공산화 과정에서 많은 지주와 반대파 지식인들을 숙청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삶에서 호치민같은 위인에게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공산혁명가 호지명은 스탈린, 마우저뚱과 같은 느낌이었고, 맥아더나 윈스턴처칠처럼 주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이데올로기란 더 이상 세계를 둘로 나누는 사회 경화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호치민에 대해 알아보는 것을 일방적으로 회피해 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데올로기는 반대편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돕지않는다. 오히려 회피 컴플렉스를 야기해서 그런 주제 자체를 가까이 못하게 머리 속에 철조망을 두른다. 이것은 확실히 부작용이다.


가까이 가서 봐야한다.

시야를 확보하고 심리적 거리를 좁혀서 그 공간 안에서 바라봐야 안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그제서야 지나간 과거에 형성되어 이제는 불필요한 편견과 선입견들이 머리 속에서 걸리적거리기 시작하고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틈이 벌어진다. 어느 나라와 민족을 보는 것이 그렇고 다른 사회나 이질적 역사를 접할 때도 그렇다. 작게는 내 주변의 한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더 가깝게 다가서기.

있는 대로 보고 느끼기 위해 노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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