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일을 해야할까?
나는 이 일 자체는 좋다. 그런데 지금의 회사에서는 생각만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알아준다 해도 일이 힘들거나 혹은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불만이다. 이렇게 계속 해야할까?
직장 생활 중 불만이 고조될 때, 어떤 이들은 더 큰 만족을 위해 직업을 유지하는 대신 회사를 떠난다. 또 다른 이들은 고심 끝에 회사에 남아 직종을 바꾸기도 한다. 혹은 제3의 선택도 있다. 누구의 선택이 더 좋다고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선택이 무엇이든 간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일을 잘하기 위해 지금의 회사를 다녀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의 회사에 다니기위해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순간에는 본인이 추구하는 미래상이 중요하다. 지금 하는 일이 자신이 꿈꾸는 미래상과 연결되느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 꿈꾸는 미래상이 현재 직업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테스는 아테네시의 변두리에 살면서 강도질을 했다고 전해진다. 인간을 잡아 침대에 누이고 인간이 침대 길이에 모자라면 잡아 늘여 맞추고, 침대 길이에 남으면 목과 발목을 잘라 맞추었다고 한다. 한 가지 슬픈 비밀은 프로크루테스가 침대 길이를 몰래 조절해 가면서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현대 직장인에 비추어 보자면 우리는 마치 그렇게 타자의존적으로 상품가치를 부여받고 재단 당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런 방향의 이해가 우리 직업의 목적으로 연결될 수는 없다. 취준생의 경우로 볼 때, 취준생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목적은 취업이라기 보다는 영어 실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다. 장차 발전과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영어 실력도 갖추고 있어야 하므로 영어에 가치를 두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해이다. 다시 직업의 목적으로 돌아와서, 주어진 일을 해내고 급여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부분의 직업인들에게 일차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숙련 과정을 거쳐 전문가가 되고 지도 계층까지 가서 궁극적으로 지위와 명예와 합당한 보상을 취하는 것, 그 과정에서 삶의 즐거움과 보람을 찾는 것을 현재 직업의 상위 목적으로 둘수 있다면 우리 각자는 처음 제시된 질문에 더 큰 확신으로 대답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면 처음의 질문을 수정해 보자.
나의 가장 잘 되어있을 미래상과 결부하여 지금의 나는 그 길 위에 바르게 있는가?
프린스턴대학교 인간가치센터(Princeton University Center for Human Values)는 25년간 한 가지 질문을 연구하고 있다. 그 질문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이다. 인간가치센터가 주관한 삶의 의미(Meaning of Life) 프로젝트에 참여한 철학 교수 수전 울프(Susan Wolf)에 따르면, '의미있는 삶이란 마땅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그 대상에 관여함으로써 찾아지는 것'이다. 인간이 단순히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의미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직업에 관해서라면, 현재 직업에서 추구해야 할 마땅한 가치는 무엇이고 나는 그것에 어떤식으로 관여하고 있는가? 또, 앞으로 그 가치에 지속적으로 관여할 용의가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직장과 직업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에 대해서 나만의 답을 더 뚜렷하게 정리해 나갈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