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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Apr 09. 2020

동물의 숲과 애국심


요즘 퇴근 후 유일한 낙은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유튜브를 보는 것이다. 닌텐도가 너무 비싸고 물량도 없어서 구할 수가 없다. 최근 모동숲 게임을 테마로 디자인한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36만원)은 출시 당일 마트에서 모두 팔렸다. 게임 소프트웨어만 판매하는 패키지 게임도 지난 27일 매진되면서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단다.


게임이 너무 힐링된다. 유저 생일날 동물 친구들이 모여 깜짝 생일파티를 해준다. 돌아가며 유저에게 "네가 태어나서 정말 좋아" "항상 우리 함께 지내자" "생일 파티는 언제나 흥분돼. 너 덕분에 우리도 이렇게 모였어 고마워"라고 한다. 동물들이 힘을 모아 컵케이크를 만들고 선물도 준다. 받은 컵케이크를 다시 동물들에게 나눠주면 보답으로 선물을 또 준다. 정과 사랑이 흐르는 섬 생활..


비록 게임속 얘기다만 너무나 흉흉한 우리네 생활, 팍팍하고 살기 힘든 인간의 삶과 대비된다. 실제로 동물의 숲에는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집을 짓고 꽃을 심고 물고기를 잡고 박물관을 짓고 나무열매를 따거나 하는 식이다. 동숲에 빠져있는 친구에게 인기요인을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현실에서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누군가와 경쟁을 하는 것에 지쳤다. 게임 속에서 동물 주민들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코로나19로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 게임에 열광하고 있다. 이미 동물의 숲은 기존에도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던 게임이다. 2001년 4월 닌텐도64를 기반으로 한 ‘동물의 숲’을 시작으로 ‘놀러오세요 동물의 숲’ 등 10가지 시리즈가 출시됐다. 



지난 8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동물의 숲을 저격하며 게임이 더 화제가 됐다. 평소 독도 광고 등에 힘쓰던 서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다. "요즈음 제가 가장 많은 제보를 받은 건 바로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닌텐도 게임기가 발매된 지난달 말, 시민들이 제품을 사기 위해 서울 용산 전자상가로 가는 통로에 줄을 섰다. 물론 (반일) 불매운동이 절대 강요될 수는 없다. 개개인의 선택을 저 역시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만 더 생각해 봤으면 한다. 작년 유니클로 매장 앞줄 선 사진이 일본에 공개돼 일본 네티즌들에게 정말로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점에서 이런 사진을 두고 일본 우익과 언론에서는 얼마나 비웃고 있겠나"라고. 


일본 회사가 만든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반애국적이라고 힐난한 걸로 보인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은 앙심을 품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우리도 맞불을 놓으며 한일 관계가 격랑으로 치달았다. 서 교수는 이런 연장선에서 현재 한국과 싸우고 있는 일본제품을 구매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나도 일본이 괘씸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역사의 상처를 외면하고 있는 일본은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기회가 될때마다 일본의 악행을 전세계에 알려야 하고, 불매운동을 통해 정부뿐 아니라 국민도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할 필요가 있다. 


다만 애국의 마음으로 일갈했을 서 교수의 주장도 어딘가 찝찝하다. 우리가 일본 제품을 쓰지 않으면 일본도 우리 제품을 쓰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로 물건을 보내는 일본 기업뿐 아니라 일본으로 물건을 수출하는 기업들도 경영이 힘들어진다. 요즘 자급자족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나라는 남미나 아프리카 오지 부족 아니면 없을 것이다. 하물며 바로 옆나라인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도 많고 비즈니스를 하는 이는 그보다 더 많다. 일본이 너무 밉고 싫지만 이건 현실의 문제다. 일본 내 우익이 싫고, 우익 언론의 딴죽이 밉지만 일본인 자체를 미워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그중에는 분명 한국 정부의 논리가 맞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나서서 한국에 사과한 이들도 존재할텐데.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만 현실적인 문제도 분명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져봐야 할 것은 왜 우리 나라 게임계는 동물의 숲 같은 힐링 컨텐츠를 못 만들었냐는 거다. 닌텐도와 같은 게임기기의 부재 탓도 있겠다만 양산형 RPG로 일관하며 유저들 호주머니를 빼내려는 국산 게임이 즐비하다. 자극적인 광고와 미진함 게임성, 유저를 벗겨먹으려고만 하는 대형 국내 게임회사들의 분발을 외쳐야 하지 않나. 안그래도 지치고 힘든 코로나 정국에서 어디 의지할 곳도 없고 즐거울 일이 없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킬링컨텐츠를 마련하지 못한 국내 게임 or 컨텐츠 업계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일본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힐난하는 게 이런 국내 사정을 덮는 기제로 작용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과 소비자라는 보편적, 자본주의적 정체성이 충돌할 때. 정치의 영역과 민족성이라는 분야가 충돌할 때, 그리고 애국자들이 나서서 '개념 좀 차리라'고 짐짓 가르칠때마다 나는 애국심(patriotism)에 대해서 떠올린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2008년 2월 대선 유세 당시 "어른이 된 후 처음으로 진정으로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공화당 측은 발끈했다. 공화당 존 매케인의 부인 신디는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내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며 미셸 오바마를 공격했다. 미셸의 발언이 오바마의 애국심 논쟁으로 확산되자 오바마는 "미셸이 언급한 것은 국가 자체가 아니라 미국의 정치를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는 이럴 때마다 애국심의 폭력성을 목도한다. 물론 김연아가 온갖 어려운 역경을 뚫고 빙상을 누빌때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방탄소년단(BTS)가 전세계 음악시장을 석권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받을때 감동적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랬다. 한국인인게 자랑스러웠고 이 나라에 태어나서 기뻤다.


그런 황홀한 순간이 있다면 국가가 부끄럽고, 성에 차지 않을 때도 많다. 정부가 곧 국가로 치환되는 요즘에는 더더욱 그렇다. 한국인인게 자랑스럽지만 부끄러울 때도 있다. 지극히 당연한 사람의 섭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가를 대기업으로 만들었을 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으로 나라를 다 망쳐놨을 때가 그랬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뛰고있는 문재인정부도 100% 잘하고 있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실망스럽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정치영역의 애국심은 때론 이상하게 발현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정부(=국가)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다. 그걸 막는 행위는 전체주의이자 홍위병이다. 그래서 내가 일부 극렬 지지자를 싫어하는 것이다. 사회적 논의와 소통을 막고 대화를 끊기 때문이다. 


굳이 정치 영역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너는 왜 항상 국가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느냐"는 말은 민족적 정체성을 개인이라는 개체 위에 덧씌우려는 폭력적인 말이다. 아무리 일제강점기 등 우리가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거쳤대도 이런 말은 시대에 역행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불과하다. 위정자들이 계속 노력해서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은 나라를 만든다면 난 평생 애국자로 살겠다. 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애국자로 살고 싶지 않다. 아니, 정말 그게 애국인지도 잘 모르겠다. 미셸 오바마도 아마 이런 부분을 언급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이상하게도 서경덕 교수와 당시 미국 공화당이 묘하게 겹쳐보인다.




일본 제품 불매의 필요성은 일부 인정한다. '다만 너는 왜 따라오지 않느냐'는 꼰대적 애국심은 오히려 애국 마케팅을 노리는 일부 치들의 뱃속만 챙기는 꼴이 될까 우려스럽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애국심 마케팅의 정점이었다. 현저히 떨어지는 영화성에도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대단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이를 지적하면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이건 애국심이 아니다. 애국을 가장한 전체주의다. 


애국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본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 애국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해서 일하면서 내수를 진작하고 가족을 꾸리고 애를 낳고 사는 것도 애국이다. 미천하지만 내가 기자로서 기사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도 사회를 먼지만큼이나마 좋게 만든다면 애국이 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온몸을 바쳐 일제에 항거한 의병들이 애국자이듯, 그들을 측면에서 지원하며 엄혹한 시절을 가족들과 함께 이겨낸 필부들도 애국자일 수 있다. 나는 서경덕 교수처럼 애국의 조건을 자꾸 규정하고 한가지 방면으로 좁히고 가공하고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애국 마케팅의 폐해를 떠올린다. 난 계속 동물의 숲 유튜브를 볼 거고, 기회가 된다면 아예 살 거다. 그래도 난 여전히 일본의 만행을 기억할 것이고 나라를 위해 살고 있다.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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