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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n 17. 2020

언론개혁, 언론인 스스로 합시다


언론개혁은 필요하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기자로 일하며 느꼈던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우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작은 결혼식을 설파하지만 일부 기자는 호화롭게 결혼한다. 권력자의 탈법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과거 음주단속에 걸렸는데 기자라는 이유로 풀려났다고 자랑한다. 학벌주의 타파를 외치지만 명문대 출신 기자가 즐비하다. 직장 내 갑질 문화를 없애자는 기사를 쓰면서 후배 기자에게 인격모독과 폭언을 한다. 


기업이 사정상 광고를 줄이면 해당 기업을 ‘조지는’ 기사를 하달한다.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뒤에선 ‘부작용이 더 크다’고 힐난한다. 기업 홍보팀, 정부 대변인실을 하인 부리듯 하는 기자도 있다. 경찰서장 방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라 가르치던 야만의 시대는 지났다. 그런데 언론 원로들은 아직도 경찰서 형사과나 검찰 부장검사실을 밥 먹듯 드나들던 과거를 낭만으로 포장한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정권이나 권력, 기업과의 유착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최근 채널A 기자의 ‘협박 취재’처럼 국민의 알권리를 운운하며 각종 불법 혹은 비도덕적인 취재 방식을 써 왔다. 기사는 쉽게 쓰면서 보도가 틀렸을 때 이를 고치거나 사과하는 데에는 엄격했다. 부당한 보도의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오보를 숨기고 은폐했다.


사주를 둔 언론은 진실 보도 대신 회장님 지키기에 열중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이 외치는 정의는 달라졌다. 어제의 주류가 오늘의 적폐가 됐다. 그러니 편을 나눠 살아있는 권력의 입맛에 맞춰 보도한다. 물론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젠 수십년 전 소수의 매체로 구성된 카르텔부터 이어져온 구태의연한 관행을 언론이 직시하고 바꿔야 할 때가 왔다.


과제는 남는다. 누가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언론 시장질서 정상화, 언론피해구제 제도 확립, 언론사 경영 투명성 제고 정책과 언론윤리 확립 방안 마련, 언론 관련 전문 법원 설립, 미디어교육 제도화, 편집권 독립과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 등 손댈 곳이 너무나 많다. 고칠 게 즐비하기에 언론의 병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전이 필요하다. 그래야 언론 자유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아쉽게도 중구난방이다. 언론학자와 기자, 정치권과 정부, 청와대와 여론이 주장하는 언론개혁의 정의와 방향이 판이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태에서 불꽃처럼 일었던 언론개혁의 목소리는 정파적이고, 설익은 측면이 있었다. 쏟아진 보도 가운데 당사자 측이 사실이라 인정한 것도 있다. 언론이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향후 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도 수용자 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불복할 가능성도 크다. 결국 사람들이 감정과 정치색을 내려놓지 않으면 언론개혁은 중립성을 잃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터다. 


정치권이 내놓은 안도 부족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열린민주당이 내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오보방지법 제정, 종편의 막말 편파 방송 규제’ 등은 언론개혁의 시작은 될 수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다. 정 의원 발의안은 법원이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는데 ‘악의’의 개념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이해 관계가 첨예한 정치권이라 미덥지 못한 측면도 있다.


과거 영국의 ‘왕립 언론위원회’ ‘캘커트위원회’ 혹은 미국의 ‘허친스위원회’처럼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언론개혁을 논의하자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 산하에 직속 언론개혁위원회를 만들거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개혁위원회 등을 조직하는 거다. 논란이 없도록 각 정당과 계층별로 동등하게 위원을 선임하고 언론과 미디어를 오랜 시간 분석해 개혁방안을 내놓을 수 있겠다. 다만 외국의 언론위원회가 내부 갈등 등의 이유로 미비한 성과를 낸 점을 고려하면 무작정 낙관할 수만은 없다.


결국 뻔한 결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했듯 언론 스스로 신뢰 회복을 위해 자기 개혁의 노력을 다할 수밖에. ‘기레기’ ‘기더기’ 소리 듣기 너무 싫고 지겹지 않나. 나부터가 매일 아침 노트북을 펴고 앉아 되뇌인다.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자”고. 다짐과 다짐이 모이면 먼훗날 언젠가는 기자인 게 자랑스러운 날도 오지 않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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