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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21. 2023

보도자료 - 잘쓰면 약, 못쓰면 독

산업통상자원부의 이번주 보도계획


매일 아침 내가 출근후 제일 먼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번주 주간보도계획을 확인하고, 오늘 석간용 또는 내일 조간용 보도자료의 내용을 체크하는 것이다. 각 부서마다 특징이 있다. 사회부나 사건팀, 정치부는 자료가 별 의미가 없다. 수사 상황은 따로 다른 루트로 확인해야 한다. 정치부도 여당 누구와 누구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다고 들으려면 그들과의 관계 정립이 우선이다. 즉, 보도자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출입처다.


반면 정책팀은 어떨까. 정책을 만드는 주체는 정부다. 정책팀 기자는 정부가 만드는 정책이 어떤 그림인지 본다. 이 정책이 국민 또는 수혜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 인지 알아본다. 더 나은 대안이 없는지, 세금낭비는 아닌지도 관전 거리다. 즉 정책팀은 정부의 생각과 공무원들의 움직임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 정부부처는 하루에 많게는 20개에 달하는 보도자료를 낸다. 대부분 자화자찬이지만, 그 중에는 층간소음 대책이라든지 정말 중요한 것도 있다. 그러니 보도자료를 하나하나 꼼꼼히 보고 대체 이 출입처의 요새 현안은 무엇인지, 각 부서별로 어떤 생각을 갖고 일을 하는지 챙겨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보도자료의 질이다. 보도자료는 어떻게 보면 정부 공무원이 기자에게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걸 준비하고 있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국민들에게 대신 알려달라는 암묵적 자료다. 그러나 사실 보도자료를 잘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자 생활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기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라서 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매일아침 약 30분안에 산업부 또는 기재부의 모든 자료를 확인하고, 야마(주제)를 뽑아 정리하고, 추가 취재를 하려다 보면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니 잘쓴 자료를 보면 여간 기쁠 수가 없다. 그만큼 준비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뭔말인지 모르겠는 보도자료는 일단 보기도 싫고, 정리도 잘 안된다. 해당 사무관이 열심히 쓰고 과장도 첨삭하고 국장 실장까지 OK했을텐데.. 홍보 효과는 커녕 반감만 갖게하는 보도자료는 독이 된다.


대개 보도자료의 구성은 이렇다. 논문과 비슷하다. 현황과 문제점, 정부가 어떻게 나서야 하나, 기대효과와 전망, 향후 계획 순으로 나타난다. 또는 정보를 짧게 요약하고 뒤에 부연하는 형식이 많다. 이렇게 자료에 기승전결이 있으면 이해하기가 쉽다. 왜 정부가 이렇게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지가 쉽게 다가온다. 또 맨앞에 서머리가 있으면 한눈에 들어오고 바로 야마를 찾을 수 있어서 편하다. 



세종에 내려와서 가장 극혐하는 자료가 있다. 뜬구름잡는 것 같은 보도자료가 그렇다. 마치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문제인정부의 혁신뉴딜 같은 느낌이다. 딱 보기엔 명확한 성과나 체계가 보이지 않는데 무작정 2030년까지 목표만 나열한다든지 하는 류 말이다. 구체적인 방법이 없고 그저 좋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식으로 카테고리만 열심히 나눠놓은 깡통같은 자료를 목도할 때마다 너무 힘들고 지친다. 사무관 과장도 위에서 시켜서했을텐데, 본인들이 열심히 준비한 걸 이런 정도로 밖에 PR하지 못하는 건가 정녕???


부처들은 보도자료를 너무 많이 낸다. 들어보니 이것도 내부 실적으로 잡힌다고 한다. '너 보도자료 많이 냈어? 너 열심히 하는구나'라니.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지 않나. 기사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죽어라 우라까이 하면서 써도 온라인 조회수는 1000을 잘 넘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있는 기획이나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질만한 단독을 하면 금방 10만을 넘기고 100만까지도 간다. 어차피 하늘아래 대단한 정책은 없다. 이미 유능한 선배들이 해온 거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똑같거나 조금심화된 내용도 포장하기 따라 다르다. 어떻게든 기자에게 어필하고, 더 많은 기사가 나와서 많은 국민이 해당 부처를 알게 되고 혜택을 보게 만드는 게 보도자료의 존재 이유 아닌가. 그런거 치고는 아직도 너무 공무원 사회의 뻣뻣함이 보도자료 음절 하나하나 사이에 박혀있는 것 같아 아쉽다. 


결국 보도자료는 친절해야 한다. 자료를 읽다보면 궁금할 만한 사안을 미리 자료 뒤에 붙여놓으면 기자 전화도 적게 받고 좋다. 또 자료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한 정책 사안에 대해 무지한 기자를 설득하기 위해 왜 이걸 할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아울러 보도자료는 그저 백화점식, 나열식 진행을 피하고 중요한 것은 앞에, 덜 중요한것은 뒤에 배치하는 스트레이트형 기사 형식을 취해야 한다. 별것도 아닌 사안을 가지고 이상한 카테고리를 나눠서 이상적인 얘기만 하는 기사는 기자들이 정말 보지도 않는다. 


반대로 잘 쓴 자료를 보면 이 부서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지가 보인다. 일부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도 하고, 식사도 잡고 싶어진다. 부처에서 보도자료를 쓰는 건 사무관이지만 최종적으로 1차본을 생산하는 건 과장이다. 그러니 과장이 감이 있어야 한다. 평소 많은 글을 써보고 실험도 해보면서 언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기업들의 보도자료 경쟁은 좀더 심각하다. 한 대형 자동차 회사 지원 얘기였는데, 홍보팀이 너무 많다보니 자신이 쓴 자료를 몇개의 매체가 인용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고 했다. 가령 현대차 기술 개선 관련 자료를 A 부장이 썼으면 그는 친한 기자에게 전화해서 기사를 온라인으로라도 써달라고 한다. 그래야 자신의 실적이 오르기 때문이다. 역시 자본주의는 참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기업은 참 잘 쓰지만, 중소기업 중에는 맞춤법도 틀리고 아예 읽을 수가 없는 보도자료도 많다. 역시 경쟁의 힘인 것인가..


보도자료는 가끔 열심히 하지 않고 힘 없는 기자의 전형처럼 불릴 때도 있다. "쟤, 자료만 보고 쓰는 애야" "자료없으면 취재 못하는 기자래" 매우 모욕적인 말이다. 누군가 던져주는 정보 없이 내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라서다. 


근데 또 한번 곱씹으면 자료만 챙기는 애라고 하기엔 자료가 참 중요한 출입처도 있다. 자료를 다 내팽개치고 특종만 쫓는 것도 일간지 기자로서 맞는 행동이 아니다. 자료라는 기본에 충실하되, 새로운 아이디어를 그 안에서 찾기도 하고 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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