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Mar 18. 2020

비주류 기자


4차산업혁명 시대,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때가 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언론사의 핵심 부서는 정경사일 것이다.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다. 업무 강도가 타부서에 비해 높고, 취재원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특종이나 사회 통념을 바꾸는 대형 기획 기사도 이 세개 부서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보니 소위 에이스 기자들이 정경사에 모인다. 특히 사회부 사건팀, 법조팀과 정치부 청와대팀, 국회팀, 외교안보팀. 그리고 경제부 기획재정부 출입과 한국은행 출입 등이 언론사의 핵심 스팟이다.


사회부 사건팀은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많이 낮아졌다. 더 이상 언론사의 꽃이 아니다. 경찰 기사가 주목받던 때는 딱 90년대 정도까지였다. 소수의 매체가 경찰서를 출입하고 바닥 정보가 경찰을 통해 언론으로 정해지던 시대는 지났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의 집단지성이 빠르게 공유되고, 사건 기사는 커봤자 원고지 4매 혹은 킬되기 일쑤다. 그러니 사건팀은 기획 위주 이슈팀처럼 기능하게 됐다. 사건팀은 수습을 교육하는 요람 정도이지, 신문 종합면 또는 1면을 장식할 일은 천재지변 아니면 거의 없다시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각사 사건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면 법조팀은 여전히 주요 부서다. 검찰개혁 와중에서 취재가 더 힘들어졌다. 오는 8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하면 법조 기사 경쟁은 더 심해질 거다. 피의사실공표 혹은 검찰발 받아쓰기 논란이 있긴하지만 아무래도 법조 기자들이 언론사 내부에서 잘 나가는 기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청와대와 국회, 국방부, 외교부가 포함된 정치부나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은행 등을 출입하는 경제부도 언론사의 주요 부서다. 그러니 정경사로 진출하려는 기자들이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 객관적인 실력 뿐 아니라 다양한 변수가 인사에 반영되기도 한다.


난 사회부 사건팀에 3년 정도 있었다. 서울 시내 모든 경찰서를 다 출입했다(경찰청 제외). 이후 교육부와 복지부를 짧게 했다. 그리고 산업부로 가서 항공과 부동산을 출입하다가 청와대에 와서 2년1개월 간 일했다. 갑자기 이번 인사가 났고 온라인뉴스부로 오게됐다. 정치 분야를 담당하며 온갖 정치관련 기사를 온라인으로 쓰고 있다. 여야 최고위원회의, 국무총리 주재 회의, 대통령 일정이나 외교부 백브리핑, 국방부 브리핑 등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빨리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게 임무다. 주로 연합뉴스와 뉴시스 등 통신사에 속보가 뜨면 우라까이(베끼는 것)를 한다. 연합과 뉴시스는 우리 회사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기사를 베끼기에 무리가 없다. 다만 좀 부끄럽고 겸연쩍을 뿐이다. 현장 출입처가 없는 적이 처음이라 많이 당황스럽긴 하다.



정치부에 있을때만 해도 같잖은 오만함이 있었다. 내가 제일 바쁘고 힘들다고 착각했다. 나라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 청와대를 통해 이뤄지니 청와대를 출입하는 내 지위도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근데 온라인뉴스부에 와보니 그게 아니었다. 평소 먹고 노는 줄만 알았던 부서도 각자의 업무가 있었고, 치열하게 일 하는 건 정치부에 못지 않았다. 따져보면 열심히 취재해서 남들이 안쓰는 단독 기사를 쓰는 이가 있어야 하지만 또 회사의 존립을 위해 조회수를 올리는 기자도 필요하다. 물론 옐로저널리즘은 최대한 지양해야겠지만.. 


날카로운 시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가 있으면 산업부에서 회사를 위해 광고를 따오는 기자도 중요하다. 한발 물러나서 직접 겪어보니 기자의 기여도 혹은 실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여러 개 일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기획을 잘하고 누구는 페이퍼워크를 잘하고 누구는 다 보는 보도자료에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기사를 써내고, 누구는 칼럼을 잘쓰며, 누구는 후배를 잘 다뤄서 협업을 통해 대형 기사를 잘 만들어낸다. 그러니 회사는 기자 각자의 장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키워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정경사가 중요한만큼 문화부 스포츠부 국제부 등도 각자 맡은 영역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온라인뉴스부도 마찬가지다. 지면 기사 자체가 오프라인으로 거의 소비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제목을 달아야 하는지, 다 알려진 사안을 어떻게 잘 포장해야 하는지, 기사 구성과 문체는 온라인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고 편집과 그래픽을 무엇을 넣을 것인지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최소 6개월 이상은 통상적인 언론계의 시각에 비춰 '비주류 기자'로 살아야 할 것 같다. 다만 단순히 어뷰징 머신으로만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다. 다 알려진 내용이지만 뭔가 다르게 엮어서 쓸 수 있는 게 있을 거다. 타사가 똑같은 제목을 달았으면 어딘가 다르게 포인트를 주거나 하는 식으로 차별화를 나름 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조회수 장사가 아니고 온라인 상에는 어떤 기사가 어떤 트렌드로 어떻게 소비되는지 따져봐야겠다. 기똥찬 무용담이나 기억에 사무칠 스펙타클한 사건이나 충돌은 없겠지만 아무리 비주류라도 주류처럼, 아니 그보다 더 인싸처럼 정보를 얻고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많은 독자분들, 작가분들, 취재원 분들. 이제 끈 떨어졌다고 절 멀리하지 말아주세요.. 몸은 편하되 마음은 편하지 않게, 6개월여간 도태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