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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ul 31. 2023

글 잘 쓰는 사람


지금은 회사를 떠난 후배 얘기다. 나는 그와 같은 사건팀 소속이었는데 눈이 펑펑오고 정말 추운 겨울날 소위 뻗치기(현장에서 계속 대기하는 것)를 가야하는 일이 생겼다. 다른 팀원들은 다 맡은 일이 있었고 나와 그 후배 가운데 한명이 현장에 가야했다. 보통 후배가 먼저 손을 드는데 그는 조용했다. 뭔가 찜찜한 분위기가 연출됐고 그냥 내가 간다고 하고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춥기도 하고 좀 짜증도 나고 복잡한 감정이었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조계사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후배가 나타났다. 뜨거운 커피 하나를 들고 왔다. 그냥 걱정되고 죄송해서 왔다고 하면 되는데 "선배가 제대로 현장에 계신지 감시하려고 왔다"고 했다. 아마 장난을 치고 싶었던 모양인데 약간 나는 농담처럼 받아 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때는 나도 왜이렇게 옹졸했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나는 그에 대해 좀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하루는 집회 시위 현장을 다녀온 뒤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그냥 집회 참가자들을 가까이서 본 소회같은 거였다. 나는 지하철을 타려고 역으로 가다가 그 글을 봤는데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사실 집회 시위 감상평은 거기서 거기인데 너무 글을 잘썼다. 짧은 문장에 문단 구성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진심이 느껴졌다. 덤덤하게 썼지만 그래서 더 절절했다. 나는 그 글 하나에 그 후배에 대한 악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내가 글 잘 쓰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글 쓰며 사는 직업을 택했던 건 초등학교 문예반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쭈욱 문예반 활동을 했는데, 시나 소설 뿐 아니라 독후감까지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일주일에 2~3편씩 썼다. 수요일 오후가 되면 각자 쓴 글을 들고 나와 앞에서 읽어내려갔다. 나도 나름 독창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4학년 때 1년 선배가 있었다. 5학년 누나였는데 그녀의 글을 보고 읽을 때마다 좀 기운이 빠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수가 없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꼬마가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활어회처럼 펄쩍 살아 숨쉬는 글을 썼던걸로 기억한다. 수십년이 흘렀는데도 그 당시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만큼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좋아하고, 시기하며, 또 나름대로 노력하며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질투가 나의 힘이었던 것이다.


나름 성과도 있었다. 우선 한국언론재단이 주관한 제1회 신문논술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약 1000명이 직접 현장에 와서 주제를 받고 쓰는 거였다. 이후 한국일보와 한국조사기자협회가 주최한 신문사랑논술대회에서도 1등을 했다. 내가 잘 썼다기 보단 주최측이 어떤 글을 원하는지 빠르게 파악에서 그에 맞춰서 글을 썼던 것 같다. 학교 다닐때 대학신문 문학상도 탔고, 각종 대학생 칼럼니스트도 했다. 대기업 사내 잡지에 기고도 하고 중앙일보 주말판 옴부즈맨 활동도 했다. 그러다가 일간지 기자가 됐고 11년째 버티고 있다. 이 정도면 나도 수십년 간 동안 계속 글을 써왔고, 나름 소기의 성과도 거둔것 같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글을 잘쓰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는 게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문장을 짧게 쓰고,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쓰며, 미리 플롯을 짜놓고 잘 연결시키라고들 한다. 근데 그렇게 이론에 맞춰 쓴 글 대부분에는 진심이 없다. 재미가 없다.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없다. 반면 문장도 엄청 길고 비문도 있고 구성이 중구난방이지만 자신이 겪거나 또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한 통찰을 담은 글이 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해결방식을 보여주거나 자신만의 스토리를 뚝심있게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고수라고 생각한다. 요새는 책을 내기도 너무 쉬워서 별거 아닌 컨텐츠로 막 4~5권의 책을 내고 작가라고 뻐기는 사람이 많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묵묵히 그리고 겸손하게 글을 대하는, 한자한자 진심으로 써내려가는 사람은 몇 없다. 


나는 그런 보물같은 글을 찾는걸 좋아한다. 그래서 대학 시절엔 주말마다 종로나 광화문, 혹은 대학로의 헌 책방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종이 냄새 자욱한 골방같은 서점에서 나의 눈길을 넘어 영혼을 끄는 글 한줄을 발견했을때 그 성취감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이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글로서 글쓴이와 이어지고, 그 탯줄같은 인연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팬심을 느낀다. 그리고 무서울만큼 추진력이 생긴다.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다. 지금은 언론계를 떠난 권석천 선생님이 그랬다. 무작정 먼저 중앙일보 메일로 연락을 드렸다. 대학생때 였다. 기자를 지망하는 학생인데 기자님이 쓰신 칼럼을 보고 너무 좋아서 팬으로서 한번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는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는데 결국 우리 대학 언론고시반 선생님으로 뵙게 됐다. 그때의 감격은 잊을 수 없다. 권석천 쌤은 참 겸손하고 조용한 분이었다. 하지만 글 한자한자를 꾹꾹 눌러서 쓰시는 분이었다. 나는 그런 고수분들과 얘기하고, 대화하고, 그의 글을 읽고 또읽고 나름대로 퇴고하고 하는 그 소중한 경험을 내 글쓰기에 녹이려 노력한다. 


사실 누구나 글쓰기는 할수 있지만 좋은 글은 아무나 쓸 수 없다. 좋은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이 없고, 작가가 무슨말을 하는지 한눈에 와닿는 글이다. 그러면서 생각 거리를 던져주고 구성이 깔끔한 글이다. 현학적인 표현은 최대한 자제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지 않으며 글쓴이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글이다. 그래서 계속 연습하고 고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요새처럼 책이 쏟아지고 정체불명의 작가들이 난립하는 시대에 글을 정말 잘쓰는 한 사람이 참 그립고 소중하다. 나는 이 브런치에서도 그런 사람을 찾고 싶다. 일단 나는 부부 얘기나 결혼 이혼 얘기, 시댁 얘기, 입사나 퇴사 얘기, 여행 얘기, 육아 얘기 등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이런 주제를 놓고도 정말 공감가게 잘 쓰는 사람들이 어디가엔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한명이라도 찾고 싶다. 그때까지 나는 그저 묵묵히 조용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열심히 남기고, 눈팅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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