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기자는 1~2년에 한번씩 출입처를 바꾼다. 취재 분야가 아예 달라지는 것이다. 말그대로 상전벽해가 벌어진다. 내가 정치부에서 아무리 이름을 날렸어도, 사회부로 오면 아예 초짜다. 아는 취재원도 없고 기사를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도 익숙하지 않다.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물론 계속 똑같은 분야만 취재하면 좀 지겨울 수도 있고, 출입처와의 유착도 강해질 수 있으니 계속 변화를 주는 건 관심 환기도 되고 좋을 수 있다. 다만 아예 직업을 바꾸는 정도의 변화는 아직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 분야에서 인싸였던 기자가 출입처를 옮기면 곧바로 아싸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 대기업과 달리, 언론계에서 인수인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문서가 없는건 고사하고 그냥 친한 취재원과 함께 식사 자리를 하거나 전화번호 정도만 주고 끝인 경우가 많다. 떠나는 사람도 새로운 출입처에 빨리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사가 나자마자 해당 출입처 기사를 써야하기 때문에 제대로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받을 시간도 없다. 닥치니까 하게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새 출입처에 적응하다보면 전임 기자의 흔적이 보이고, 나와 비교하게 된다. 전임 기자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었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열심히해서 돋보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임 기자가 출입처의 지배자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 자신 뿐 아니라 취재원들부터가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그 미묘한 분위기가 읽힌다. "A 기자님과 참 잘 지냈거든요" "A 기자님이 진짜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새로온 B 기자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A 기자를 빼내고,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고민만 하게 된다.
이건 마치 연애와 같아서, 전 남친 혹은 전 여친을 잊지 못하는 상대의 마음을 빼앗는 작업과 유사하다. 나와 만나기 시작했는데도 아직도 EX를 잊지 못하면 나는 안달이 나기 시작한다. 심지어 전임 기자는 출입처를 바꿨지만 기존 출입처 사람들과 계속 만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출입처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의 인맥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출입하는 기자는 더 조바심이 생긴다. 출입처를 장악해야 기사가 나오기 때문에, 새로 인사가 난 기자 대부분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진정한 경쟁 상대는 사실 타사가 아니다. 일을 잘하는 우리 회사 전임 기자가 가장 직접적인 연적이 된다. 사실 불만은 크게 없다. 그도 자신의 시간을 갈아넣고, 노력을 해서 사람을 만나고 식사를 하고 인맥을 구축했을 터다. 나도 그만큼의 공을 들여야 더 많은 취재원을 사귀고, 그 출입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여러 출입처를 다니며 본보 선후배들의 발자취를 자주 목도했다. 좋은 자극이 됐다. 때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임 선배 혹은 후배의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이 생기면 과감히 포기했다. 오히려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취재원을 사귀는 재미도 있었다.
후배에게 배우는 적도 많았다. 지금은 더 큰 매체로 이직한 후배가 있는데, 참 배울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 후배와 함께 나와 친한 취재원을 만나면 한달 정도 이후에는 그 취재원이 나보다 후배와 더 친해져 있었다. 일부 기자들은 이런 것도 문제삼고 언짢아한다지만, 나는 그 후배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안에 어떻게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보를 갖고 있는 취재원의 숫자는 한정돼 있고, 대한민국 모든 기자들이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각자 스타일대로 노력하는데 이런 경쟁에서 승리해 하나라도 정보를 더 얻으려면 나만의 영업방식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겠다. 통상 연애도 사람 마음을 빼앗는 작업이라면, 기자들은 매일매일 안팎의 연적을 물리치고 연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끝나지 않을 사랑 다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