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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익숙해짐'의 다른 이름

권태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by 작가 전우형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불행하길 바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어?

어떻게 해도 행복해질 수 없어.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행복은 어디에도 없어.




스피커에서는 재즈 피아노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다.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느낌. 은은한 불빛 아래로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묵묵히 듣는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는 듯 연신 쓸어 넘기면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말한다. 무슨 할 말이 저렇게 많은 걸까? 듣는 이의 표정은 덤덤하다. 귀를 기울이며 가끔 대꾸를 해주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인다. 꾹 참고 엄마 잔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 같다. 친구랑 한잔 했는데, 지하철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놓쳤고, 심야택시 요금은 비쌌고, 도어록 비밀번호를 5번이나 잘못 눌러서 비상 알람이 울렸다는 그런, 흔하디 흔한 이야기들. 대놓고 심드렁한 반응을 보일 수 없어 들어주는 척할 뿐, 알맹이는 없는 대화들. 살아가면서 겪는 일이 매번 미션 임파서블이나 로스트 인 스페이스처럼 스펙터클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보고 싶어. 우리 만날까? 오늘 시간 돼? 언제가 좋아? 뭐할까 우리? 새로 영화 개봉했다는데 보러 갈래? 요 앞에 괜찮은 카페가 오픈했대. 거기 가볼래? 오늘 한 귀걸이 예쁘다. 나 보고 싶었지? 음... 그런데 오늘 너 대답이 좀 느리다..?"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영화 보고 쇼핑하고 수다 떨다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 여행 가고 술 마시고 집에 바래다주고,

사랑이란 게 원래 이런 거였나?

재미없다...




사랑은 익숙해짐의 다른 이름이다. 한정된 시간과 일상 속에서 깊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한된다. 한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할 때 사랑이 시작되고, 일상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익숙해진다.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더 많이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보인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사랑하기는 더 쉽다. 알면 알수록 더 밉다. 익숙해짐은 흔해짐을 의미한다. 만나기 전의 두근거림과 헤어질 때의 애틋함은 점점 깎여나간다. 더 자주, 더 열심히 만날수록 사랑은 뾰족한 연필심이 된다. 잘 써지지만 부러지기도 쉽다.


많은 시간을 함께할수록 권태기는 더 빨리 온다. 권태기는 별다를 것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만남이 뻔하게 느껴지고 헤어짐이 무던해지고 아무렇지 않은 것. 그저 익숙해졌을 뿐인데 익숙함이 소중함을 덮어버리는 것. 두근거림보다 그저 평범해지는 것. 권태기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아무렇지 않은 사이로 만들어버린다.


봄처럼 풋풋했던 사랑은, 여름처럼 뜨거워지고, 가을처럼 편안해지더니, 겨울처럼 싸늘해진다. 어떤 사랑은 겨울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끝이 난다. 좋은 추억은 도톰한 담요 같다. 권태는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이다. 이 시기를 피해 갈 방법은 없다. 익숙함 속에서도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면,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개미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랑의 겨울',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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