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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한 사람

두려움을 이겨내는 건 사람의 '온기'

by 작가 전우형

안중의 가을은 일교차가 크고 인근에 평택호와 아산만이 있는 탓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자주 낀다. 지금도 나는 카페 영업을 마친 후 밤안개로 덮인 도로를 달리고 있다. 와이퍼는 바삐 움직이며 차창을 쉴 새 없이 닦아대지만 뿌옇게 변해가는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왜 보이지 않지? 젠장! 또 접어둔 채 출발했다. 차를 바꿔 탄 것이 화근이었다. 손을 뻗어보지만 반대쪽에는 도저히 닿지 않는다. 벨트를 풀어도 불가능하다. 안전벨트 미착용 알람이 울리며 정신만 더 사나워졌다. 사이드미러를 직접 펴려면 차에서 내리거나 조수석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일단 룸미러로 후방 상황을 살피고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옆을 살핀다. 라이트는 어둡고 가로등은 없다. 비상등 불빛이 앞뒤 양옆에서 희미하게 깜빡이고 앞차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뗐다를 반복한다. 브레이크등 빨간 눈을 끔뻑거리며 약을 올린다. 도로 위는 엉거주춤 움직이는 차들로 아수라장이다.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고, 운전대를 잡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간다. 옆에 누군가 한 사람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불안을 더욱 자극한다. 미래는 안개로 덮인 도로와 같다. 앞은 보이지 않고 언제 갑자기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앞을 보려고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떠보지만 시야는 점점 더 좁아지고, 온갖 소음이 귓전을 맴돈다. 안개로 인해 공명되고 증폭된 소리는 예민해진 청각을 타고 들어와 머릿속에 알람을 울려댄다. 콘서트장 스피커 옆에 선 것처럼 머리가 웅웅 거려 온다. 보이는 것은 없는데 소리만 들리는 상황. 공포영화에서 흔히 쓰는 연출 방법이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절망과 공포는 극대화된다. 에너지가 배로 들고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막막한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비웃듯 불안은 어떤 좌표에 우리를 묶어둔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건 옆사람의 온기다. 사람의 온기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안심시켜준다. 그 든든함이 놓아버렸던 이성의 끈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두려움의 장막이 걷히고 불안이 진정되면 상황을 명료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문제를 크고 심각해 보이게 만드는 건 불안, 두려움, 막막함과 같은 '감정'이다. 눈을 가리고 있던 감정이 해소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내재된 감정을 알아봐 주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지지자가 있을 때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것들에 도전하게 되고 그동안 미루어왔던 일들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된다. 단 한 사람의 소중한 지지자만 있으면 천 길 낭떠러지 끝에 홀로 세워지지 않는다.


배우자를 얻는 것은 한 사람의 지지자를 만드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남편은 '남의 편', 아내는 '안 해'라고 하지만, 웃어 넘기기엔 내포된 의미가 가볍지 않다. 삶에 의지가 될 한 사람을 꼽는다면 과연 누구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의 아내, 또는 남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되돌아봤을 때 자신은 그런 배우자가 되어 주었는가? 배우자의 낱자는 '配(짝지을 배) 偶(배필 우) 者(사람 자)'를 쓴다. '배필로 맺어진 사람'이라는 뜻의 배우자는 서로 등을 맞대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며 같은 방향을 보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고 사랑과 신뢰, 유대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부부는 자신의 배우자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하며, 그런 배우자를 만난 것은 자신에게 큰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할 일이다.


얼어붙은 손을 녹여줄 손난로 같은 사람, 당을 채워줄 ABC 초콜릿 같은 사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이 좋은 커피 같은 사람, 새벽녘에 나설 때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 주머니에 든 핫팩 같은 사람, 어딜 가든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사람, 싸워야 할 때 한 팔 걷어붙이고 함께 나서 주는 사람, 지갑 깊숙이 꽂아둔 부적 같은 사람, 그런 든든하고 따뜻한 사람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준다면 꼭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길 바란다. 당연한 호의는 없으며, 관계는 상호성 안에서 유지된다. 당연하다 여겼던 사람의 온기는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면 인생에는 겨울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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