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지선 씨의 명복을 빕니다.
웃음 안에는 슬픔이 머문다. 누군가의 웃음은 슬픔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다. 밝기만 해 보이는 그 웃음 속에 담긴 무수한 사정을 누가 알 수 있으랴. 그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참 밝은 사람이었는데, 다정다감하고 굳센 사람이었는데, 인상 한 번 찌푸린 적 없던 사람인데' 그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나 보다. 인생사는 '희로애락'이 골고루 분포한다. 희극인이라 한들, 어찌 슬픔이 없었을까? 늘 사람 좋은 웃음만 짓던 사람이라 한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없었을까? 차마 남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그 가시밭길 같은 마음은 상처 입은 가슴을 할퀴고 물어뜯고 곪아 터지게 한다. 누가 그렇게 곱게 살아라 했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바보같이 참고 비켜서고 스스로 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방법밖에 알지 못했으므로.
희극인은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이다. 우리에게 찰나의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그들은, 결코 웃어넘기지 못할 치열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잃어버린 동생을 얻기 위해서는 팔다리 하나쯤은 내어놓아야 한다. 내 웃음을 팔아 남의 웃음을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의 법칙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가 보다. 웃음은 공평하지 않아서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눈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된다.
그녀의 죽음에 어떤 일들이 숨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모든 이의 죽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모두가 죽음을 경원시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늘 죽음을 떠올리며 산다. 때때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하루를 버티는 일이 진이 빠지고 다음 날을 살아가기가 소스라칠 정도로 암담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을 살다 보면, 희망이 죽어 절망이 되고, 아침이 두려워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기도 한다. 인생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거무죽죽한 대나무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더 이상 햇볕을 맞이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으로 가득 찬 터널 안에서, 열 손가락 안에 없을 것 같았던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아무렇지 않게 1번으로 등장해 이제 그만 쉬자고 재촉할 때가 있다. 늘 웃던 사람은 그렇게 한 번을 제대로 울어보지도 못한 채 가버린다. 세상 당차게 살 것 같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리는 일은 그렇게, 흘러 지나가는 뉴스 기사처럼 우리 일상을 스윽 지나쳐버린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떠올리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어떻게 살지에 대한 생각보다, 어떻게 죽을지를 더 많이 고민하던 시절.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할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깊은 절망에 허우적거리던 그때가 떠오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 시간들 안에 나를 붙들어주었던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고 박지선 씨는 나와 같은 나이에 죽음에 이르렀다. 아마 그녀 역시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고3 수험생 신분으로 머리를 싸맨 가운데 온 동네에 퍼지던 주민들의 함성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눈은 교과서를 향해있지만 나도 모르게 월드컵 중계방송에 귀가 기울어졌던 그때 그날처럼, 우리는 늘 무언가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참고 버티며 살아왔다. 앞길이 창창할 30대 중반의 나이에 뭐 그리 아프고 힘들일이 많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녀의 죽음이 남일 같지가 않다.
선택은 결국 자신의 몫이지만, 그래도 조금 더 살아주었다면, 무언가를 붙들고 조금 더 버텨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비롯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희극인이었던 고 박지선 씨의 명복을 빈다.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