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해석불가
손끝의 감각이 가늘어지고 생각의 실타래가 거미줄이 되어 떠도는 아이디어들을 친친 동여맬 때 가끔 하지 못하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복잡한 이야기는 싫지만 어떤 일에는 한없이 복잡해지고 마음은 더 복잡하고 해석불가다.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이해가 되려 하다가도 마음에 차지 않는 인내심의 바닥이 보이고 메말라버린 것 같던 감정의 우물이 분노, 질투, 시기심 같은 것들로 맹렬히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홍수 퍼붓듯 강력한 물줄기가 저변을 스치고 태풍을 만난 바다처럼 속은 고요하지만 겉은 풍파가 일렁일 때 나도 모르는 회오리가 그동안 아름답게 일궈둔 밭을 헤집고 지나간다.
사람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인정을 바라다가도 누구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고 곁에 머물기를 바라면서도 어서 가라며 양손은 등을 떠밀며 상대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만든다.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힘든 이유는 내가 상대방을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내 마음을, 양파 겹겹이 쌓인 맨틀 아래쪽에 출렁이는 핵과 같은 마음을 고스란히 알아차려주길 바라는 모순적인 바람을 대면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럴까? 자조 섞인 물음을 허공에 던져보지만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고 거울이 사라진 카지노처럼 푸석해진 얼굴을 스스로는 절대 보지 못한다. 나를 돌아보지 못하기에 가꾸지 못하고 마음을 읽지 못하다 보니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듣지 못한다.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을까?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연필심이 달아 없어질 때 끝이 뭉툭해진 연필로 글씨를 쓰다 보면 흐릿해지고 미묘하게 글씨의 크기도 커진다. 표현은 거대해지지만 드러낼 수 있는 의미는 모호해지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전달하기보다 그저 쓰고 싶다는 그 욕망 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나. 반복되는 질문 속에 그림 속의 빛은 그림자로 채워지고 여러 색이 섞인 그림은 밝고 투명해지기보다 점차 어두운 색으로 덧칠되어간다. 마음을 가리는 먹구름은 스스로의 마음조차 알 수 없게, 긴 빙하기를 가져올 화산재처럼 어딘지 모를 쓸쓸함과 외로움을 널리 퍼트린다.
삶에는 계절이 존재하고 따뜻하고 시원한 계절은 소중함을 느끼기도 전에 지나가버린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에게 여름과 겨울이 긴 이유는 사소한 변화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자극을 쫓다 보면 달고 짠 것 외에는 둔감해지고 가느다란 향과 맛을 경험할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린다. 변화는 삶의 색깔을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작은 변화가 작은 행복감을 주고 작은 것에 감사하게 해 준다. 첫사랑을 담은 러브레터처럼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즐거움이 먹구름을 뚫고 빛줄기들을 대지에 뿌려준다. 사랑은 사람을 어려지게 한다. 화이트 머스크 향처럼 코끝은 달콤하지만 마음은 싱숭생숭하게 한다. 행복은 오묘해서 크고 확실한 것을 바라는 것보다 작고 사소한 것을 원할 때 사슴이 집어간 선녀 옷처럼 의외의 선물을 툭 하고 던져준다.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겨울바람은 늙은 화가의 목숨을 앗아갔다. 누군가의 절망은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 인연이 이어지는 것은 소망의 끈이 누군가에게 닿아서가 아닐까?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깊은 마음이 공동체의 온기를 다독이고 남다른 밀도를 관계 속에 채워준다. 겨울의 한기도 밀도 높은 관계의 따뜻함을 겉돌 뿐이고 관심은 나를 넘어 상대에게로 향할 때 비어있을 것만 같던 곳간을 채워준다. 알고자 할 때 세상은 몰랐던 것을 알려준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곳곳에 숨은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수집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행복의 정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웃음과 밝은 표정, 눈가에 비치는 작은 반짝임을 볼 때 커피를 몽글하게 만들어주는 라테 거품의 은은함이 느껴지고 반갑게 맞이하는 이름들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사람의 온기가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고 감추지 못했던 내면의 불안을 잠재워준다. 혼자는 외롭고 둘은 괴롭다지만 옆사람의 고민을 듣다 보면 내 고민이 사라지는 역설 속에 불행에 귀 기울이면서도 마음만은 꽃밭을 거닌다.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곳에 있을 때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가 일어나고 엉덩이는 들썩이며 다른 곳으로 가려하지만 편안함인지 불편함인지 모를 여러 겹으로 겹친 마음은 가야 할지 머물러야 할지 결정할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