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나는 '정상'
우울증이 마음의 방벽을 사정없이 갉아먹어가던 암울한 시절. 그때의 내게 가장 끔찍했던 순간은, 이유 없이 기분이 축 처지고 활력마저 바닥으로 떨어져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던 순간이었다. 우울증을 암시하는 증상들은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고, 결코 다시 예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양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들로 인해, 나는 약해져 버린 나를 스스로조차 받아들여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내 마음을, 고민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여겼기에 더욱 힘겨웠던 당시의 나날들. 쓸데없는 걱정만 해대는 머리와 시도 때도 없이 푸념만 늘어놓으며 온갖 것들로부터 불안에 떠는 마음을 송두리째 들어내버리고 싶은 욕구는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컸다. 그것이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마법처럼 내 일부가 새것으로 바뀌어버리길 바랐다. 그런 조급함과 강박이 당시의 상황에 나를 더 오래, 강하게 묶어두었다.
우울증이 좋아지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도 '재발'과 '악화'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수시로 불안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곤 했다.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던 5년여의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불안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이 내 상태를 더욱 안 좋게 오판하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너 다시 좀 심해지는 거 아냐? 말수도 적고 얼굴 표정도 어두워진 것 같은데?" 이런 타인의 피드백들은 여지없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마치 그동안 어렵사리 회복되어온 우울증이 금세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심각한 고민에 빠져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가장 끔찍한 상상은 영원히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비틀어진 예측이었다. 헤어날 수 없는 미래를 암시하는듯한 내면의 목소리가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끊임없이 귓전을 맴돌며 나를 미치게 했다.
그날의 기분이 몸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자각조차 없던 시절이었기에, 전날 새벽까지 야근을 해서 몸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몸살 기운으로 온몸이 무거워서 기분도 함께 처졌을 뿐이라는 당연한 예측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단지 기분이 처지거나 무력감이 휘몰아치는 날이면, 다시 심해질 우울증의 예고편을 직접 확인이라도 한 것처럼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회색빛 미래를 스스로 점칠 뿐이었다. 무의식에 의해 직렬연결되어버린 축 처진 기분과 우울증 악화의 상관관계는, 충분히 정상범위에 속할만한, 누구나 그 정도는 수시로 경험하며 살만한 가벼운 우울감조차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오히려 불안은 더욱 커졌고 그것의 진위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해 내면의 들여다보는 동안 오히려 부정적인 상상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의심암귀(疑心暗鬼)'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잇달아 일어나 불안해 짐
'의심암귀'라는 말처럼, 의심은 마음 한 편의 손이 닿지 않는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공간에 '불안'이라는 괴물들을 풀어두기 시작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당시의 나는, 지진을 경험한 사람이 작은 진동이나 울림에도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는 것처럼, 작은 기분의 변화나 심장의 떨림, 의욕 저하, 피로감 등의 사소한 파도만으로도 폭풍우를 만난 나룻배처럼 크게 흔들리며 표류하곤 했다. 방향타만 잡으면 다시금 정상 진로를 찾을 수 있었지만 나는 방향타를 잡지 않았다. 그깟 사소한 행동들을 통해 현재의 비극적인 상황을 결코 해쳐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상의 범위에 속해있었음에도 스스로 그것을 비정상으로 여겼기에, 문제시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문제로 만들어 자신을 더 괴롭힐 수밖에 없었다.
마음 상태는 시간, 생체리듬, 스트레스, 업무의 양과 수준, 몸의 피로도, 인간관계, 성공과 실패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정상이다. 가벼운 불안, 가벼운 우울, 오래 지속되지 않는 불편한 기억, 때때로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 같은 것들은 '정상'에 속한다. 일상생활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사소한 어려움이나 스트레스를 겪는 정도라면 그저 일상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여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극심한 두려움, 극도의 불안, 지독한 고통과 같은 깊은 감정들은 당시의 순간을 하나의 좌표로 만들어 마음속에 '각인'시킨다. 각인된 사건은 지워지지 않은 채 어떤 자극을 만나면 급작스럽게 당시의 상황으로 소환시키는 방식으로 오랜 시간 우리를 괴롭힌다. 예를 들어, 정전된 엘리베이터에 반나절 동안 갇혀있었던 끔찍하고 두려운 사고를 경험했다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려 할 때 어느 정도 긴장되는 것은 당연하다.
언제 어떻게 추락할지 모르는 캄캄한 엘리베이터 내에서 구조의 손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극도의 무력감을 느낀다. 자신의 목숨을 타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공포,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막연함, 그날의 선택과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후회들이 뒤섞인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를 들으며 어딘가에 갇혀있어 본 경험이 있다면, 유사한 자극을 만났을 때 당시의 기억과 감정이 불현듯 소환되어 동일한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보다 더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해서 공황장애가 다시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런 심장의 두근거림을 공황발작과 직렬연결시키는 스스로의 무의식이 그런 작용을 가속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긴장의 수준이 호흡곤란, 전신마비, 공황상태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면 정신과 진료나 상담 등을 통해 치유가 필요하겠지만 약간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겪는 것만으로 문제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불안의 범위는 넓어질 수밖에 없고, 불안해할 이유는 많아지며, 만성적인 불안상태에 머무를 시간은 늘어난다. 여러 가지 일들로 감정 주머니가 가득 차면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스트레스도 무시 못할 수준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지금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은 기분이 좀 다운됐네. 이러면 안 되는데.' 보다는 '오늘 이렇게 기분이 좀 처지는 걸 보니 어제 잠을 좀 설쳐서 피곤한가 보구나.'와 같이 받아들이고,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지? 이러면 안 되는데.'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구나. 내일 일이 많이 부담되긴 하나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수업 준비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지? 내일은 푹 좀 쉬어줘야겠어.' 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흐르는 물을 막아두면 점점 더 많은 물이 고이게 되고, 점차 그 물을 막아두기는 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면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힘도 들지 않는다. 불안을 느낄 때, 그것을 당연한 반응으로 받아들이면 불안은 물처럼 흘러간다. 흐르는 불안은 우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불안을 느낄 때, 불안을 나쁜 것으로 여겨 '나는 불안하지 않아'를 마음속으로 100번 외친다거나, 불안을 억누르려 할수록 불안은 점점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불안 자체에 집중할수록 우리는 더 불안해지고, 불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거대해진 불안은 답답증을 유발하고, 무언가로 짓눌린듯한 느낌이 우리를 더 불안에 빠지게 한다.
불안을 느낄 때는 그저 '내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구나'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중요하다. 잠시 불안에 대한 집중을 멈추고 쉬어주거나, 산책 등을 통해 마음속에 가득 찬 불안들을 환기시켜주는 것이 좋다. 이러한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정서적 환기'라고 부른다. 불안은 '연기'처럼 모호해서, 마음속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아침 안개로 뒤덮인 호숫가를 걷는 것처럼 사방이 뿌옇고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안갯속에서 헤매다가는 자칫하면 실제로 물에 빠질 수도 있다. 불길한 예측에 근거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불안의 특징은 '모호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을 느낄 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왠지 불안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런 말이 불안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그래서 불안한 상태에서 불안의 원인을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불안의 안갯속에 잠재된 원인을 찾아내려면, 우선 마음속에 가득 찬 불안을 배출시켜 주어야 한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불안의 크기가 줄어들 뿐 아니라, 가득 차 있던 마음속에 공간을 만들어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볼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다. 불안의 원인은 불안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후에 차분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고, 의외로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아 허탈함마저 느낄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할수록 불안에 대한 자신만의 해소 방법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며,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차후에 맞이할 새로운 불안에 조금 더 침착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