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불안 사용법' 만들기
작은 개인 카페를 하나 운영하는 것도 '생각보다' 신경 쓸 것들이 많고 어려움이 컸고 그래서 불안도 컸다. 카페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어색했다. 에스프레소 머신 사용법도 손에 익지 않았고 레시피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재료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급한 순간에 보이질 않아 나를 다급하게 했고, 커피 그라인더, 믹서 사용법, 와플 기계, 오븐 조작법, 어떤 잔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들이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많은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온종일 긴장했고 누가 오면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어떤 메뉴를 주문하면 어떻게 준비하고 서빙할지에 대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느라 혼란스럽고 속이 시끄러웠다. 커피를 내렸는데 맛이 없으면 어쩌지? 우유를 스팀 하다가 실패하면 어쩌지? 서빙 중에 쏟으면? 메뉴를 잘못 알아들으면? 재료가 떨어진 건 없을까? 온갖 걱정들과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녔고 가끔은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확인하고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초주검이 되어 늘어지기 일쑤였다.
눈처럼 소복소복 쌓인 불안들은 마음을 무겁고 답답하게 한다. 폭설에 쌓인 눈의 무게로 지붕이 내려앉기도 하는 것처럼 누적된 불안의 무게는 소중한 마음의 공간을 무너트려 차가운 겨울바람에 정면으로 노출되게 한다.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보고도 해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회피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삶의 문제들은 과도하게 커지기 전에 조금씩, 수시로 처리해줄 필요가 있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작은 불안을 잘 관리하는 방법은 그때그때 불안의 원인을 찾고, 해결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불안에 '압도'되면 작은 일도 크고 어렵게 느껴진다. 너무 어려워 보이는 일은 함부로 도전하기가 두렵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실패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실패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이 어그러졌을 때 그 뒷감당을 하기가 두려운 것도 매한가지다. 우리의 양 어깨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걸려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기대이기도 하며, 때로는 진지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패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워 그것을 짊어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말은 개소리에 가깝다. 실패는 두려워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불안으로 일의 덩치를 불리는 바람에 충분히 해볼 만한 기회조차 발로 차 버리는 것은,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주춤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다. 우리가 지양해야 할 태도는 전자에 해당한다.
과감하게 도전하기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잘게 쪼개어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일은 큰 덩어리 하나로 둘 때보다 작은 덩어리 여러 개로 나눌 때 더 쉽고 해 볼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주제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쓰고 싶다면, 처음부터 책 한 권 분량을 쓰려해서는 안된다. 몇 페이지 끄적거리다가 '역시 책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포기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책을 쓰고 싶다면 목차를 구성해야 한다. 쓰고 싶은 내용을 잘게 쪼개고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다. 일단 목차가 완성되면 인용할 자료나 사례들을 구해야 한다. 자료수집까지 끝나면 나머지는 각각의 챕터를 하나씩 써나가면 된다. 대략 40~50개 챕터를 구성했다면 하루 한 챕터씩 쓰면 2달, 하루 2 챕터씩 쓰면 1 달이면 책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다. 아무리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1년 정도면 누구나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다.
불안의 강력한 힘은 '모호성'으로부터 나온다.
불안에 압도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역시 책 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불안의 가장 강력한 힘은 '모호함'으로부터 나온다. 불안에는 실체가 없고, 전쟁의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어떤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더 많이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다 보면 시기를 놓치게 되고 어느새 불안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거대해질 수밖에 없다. 불안에 압도되지 않으려면, '모호성'이라는 불안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방법은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써보는 것이다.
막연한 불안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불안지수는 치솟아 오르기 마련이다. 큰 프로젝트를 하나 맡았는데 어떻게 완성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의 모호성을 뒤집으려면 불안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목록을 하나씩 써보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불안에 집중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 지속적으로 불안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해소해야 할 것은 불안이 아니라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그것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내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해보는 것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질 수 있으면 걱정이 없겠네'
생각은 모호하고 흐릿하고 금방 잊힌다. 어찌 보면 생각은 불안의 속성과 비슷하다. 생각은 금세 불꽃이 튀었다가 사라지는 반면, 불안은 손에 접착제가 묻은 것처럼 진득하게 남는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그래서 불안이 자극되면 '생각'만 많아진다. 이런 의미 없는 생각들을 우리는 '걱정'이라고 부른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질 수 있으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은 부질없는 걱정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불안은 '안전하지 못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때 우리는 '그렇다면 다시 안전을 되찾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집중하며 머릿속에 생각의 구름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불안의 자극을 받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생각의 구름들은 생각 그 자체로 내버려 두는 것 만으로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피어나는 상태가 바로 '걱정이 가득한' 상태다. 걱정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모호한 생각들을 문자의 형태로 눈에 보이는 곳에 끄집어내는 것이 '쓰기'의 과정이다.
쓰기를 통한 형상화의 과정을 일과 불안에 대입하면 '업무 목록'과 '과업 쪼개기'가 되는 것이고, 감정을 다스리는데 적용하면 '감정일기'나 '감사일기'를 쓰는 것이 된다. 감정은 흔히 마음으로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생각과 감정 모두 뇌에서 벌어지는 전기자극의 집합 들일 것이다. 꿈을 꿨을 때 뭔가 꿈은 꾼 것 같은데, 꿈속에서 분명 어떤 일들을 경험하고, 누군가를 만났던 것 같은데 정작 떠올려보려 하면 꿈을 꿨다는 느낌 말고는 모든 것이 모호할 때가 있다. 생각이나 감정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패턴은 꿈과 유사하다. 어떤 생각이 들었다가 곧 사라지는데 아예 그 흔적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분명 어떤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찝찝함은 남고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명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그저 나를 불편하게만 한다. 사라진 듯 사라지지 않은 이런 찌꺼기들은, 마치 헤어진 이에 대한 미련처럼 마음속을 맴돌고 어지럽힌다. 해결되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을 때 우리는 쉽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불안이 자극되기 때문이다.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기록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좋은 것도 '반드시'라는 말과 맞물려 강박이나 비합리적 신념으로 자리 잡으면 '독'이 된다. 모든 것의 출발은 '균형'이다. 균형을 찾는 것은 약물의 복용법을 아는 것과 같다. 불안에도 사용법이 있다. 불안이 적절한 자극으로써 우리를 준비시키고 움직이도록 하는 순기능으로 자리 잡으려면, 불안을 오남용 하지 않도록 적절한 사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불안은 허황될 때도 있지만 쓸모 있을 때가 더 많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 때때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처럼, 불안은 어쩌면 우리가 간과하고 있을, 혹은 잊어버린 채 망각하고 있을 중요한 어떤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챙겨볼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불안을 나쁜 것이 아닌 하나의 소중한 '신호'로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신호는 무언가를 '환기'시켜주기 위해 존재한다. 화재 알람 소리가 들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화재 알람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열심히 듣거나 데시벨을 체크하는 것이 아니다. 화재 알람이 들렸다면 어디에 불이 났는지 확인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119에 신고하거나 이동식 소화기를 찾아 초기진화에 들어가야 한다. 불안의 사용법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불안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 마음에 경종이 울리고 있다는 의미다. 뭔가 위험이 감지되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탐색해보는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불안한 '상황'이 종료되면 불안은 자연스럽게 알람을 멈춘다. 우리는 불안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단지 시끄러운 알람을 끄는 방법을 애용해왔다. 당연하게도 그런 방식으로는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알림을 받지 못해 문제가 더 커지고 치료받지 못한 상처가 곪아 터져 위험해질 뿐이다.
'불안 사용법' 간단 정리
1. 불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물 흐르듯 내버려 둔다.(불안을 억누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2. 내가 해야 할 일, 혹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글로 써본다.
3. 목록화된 일을 하는데 집중한다.
4.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의 불안은 내버려 둔다.(때때로 시간이 해결해준다.)
'공부'라는 말만 나오면 "에이~ 나는 그런 어려운 거 못해, 골치 아파"하며 학을 떼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학창 시절에 형성된 공부를 지긋지긋한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이미지 때문이다. 흔히들 공부라 하면 '시험공부'를 떠올린다. 점수를 받기 위한 공부. 그러나 시험공부는 공부의 여러 가지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교과목에 포함되어 있어서, 혹은 시험 범위에 포함되어 있어서, 자격증을 따야 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필요와 관심에 의해서 하는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가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너 같은 놈이나 공부하는 게 재밌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공부에 새겨져 있는 주홍글씨를 걷어내고 나면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언제나 공부를 하면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부란 곧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질적으로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결국 불안을 감당해내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우울증을 공부했고, 감정으로 힘들었기에 감정을 공부했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인간의 심리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글을 쓰는 과정도 공부의 일부이며, 스스로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만약 자신이 만성적인 불안으로 힘들어하거나, 불안으로 인해 삶을 발목 잡혀 있다면, 달리 방법은 없다. '불안'에 대해 공부하는 수밖에.
불안에 대해 공부해보면 불안의 속성에 대해 알 수 있다. 사실 누군가의 조언은 그들만의 해법일 뿐 그 방법이 자신에게도 적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신에게 있어 불안이 당면한 과제라면, 불안을 공부하는 것은 불안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기 위한 자신만의 해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그것의 속성에 대해 꿰뚫고 있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비책 한두 가지를 갖고 있다면, 적어도 불안으로 인해 삶이 휘둘리는 상황까지는 도달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 불안의 벡터 매거진 연재는 이번 7편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수정을 거쳐 브런치 북으로 발행하면 다시 공지 올리겠습니다. '불안의 벡터'는 총 일곱 편으로 연재되었습니다. 1편부터 차분히 보시면 더 좋습니다.
<전우형 작가 올림>
https://brunch.co.kr/magazine/anxiety-v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