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의 단편소설 3편
집으로 가는 골목. 멀찍이 <속초 아바이 순대>라고 써붙인 트럭이 보였다. 모두가 원조라 주장하는 시대. 트럭 한편에도 어김없이 <원조> 문구가 붙어있었다. 이미 인적이 드문 시간이건만 순대 팔이 트럭의 불은 여전히 밝았다. 별 기대 없이 트럭 앞을 지나던 내게, 움직임이 없던 손등이 갑작스러운 대화를 걸어왔다.
"순대 좀 드릴까?"
사람이 안에 있었던 걸까? 얼굴을 가린 채 손만 보이는 천막이 생소했지만 요즘 보기 힘든 순대 트럭이 나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한 통 가득 남아있는 순대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모둠으로 주세요."
대답 없이 익숙한 손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처럼 김이 폴폴 나는 순대가 도마 위에 올려졌다. 그녀는 순대를 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총각, 강아지 키워봤어, 강아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나를 총각이라고 부른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무슨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다만 말 상대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는 말이야. 강아지들과 산책을 나갔는데 봉투 가져가는 걸 깜빡했지 뭐야. 마침 앞에 산책시키는 아저씨가 있길래 봉투 몇 장 줄 수 있냐고 물었지. 그런데 그 아저씨도 봉투가 없다지 않겠어? 표정이 난처해 보이더라고. 아니나 다를까 산책시키던 강아지가 길 한가운데에다 똥을 싸고 있는 거야. "아저씨, 똥은 치우고 가실 거죠?" 하고 물었지. 아저씨는 "네~ 뭐 치우고 가야죠." 하고 어물쩡 넘어가려 하더라고. 아무래도 대답하는 꼴이 그냥 갈 것 같은 거 있지? 똥 치우고 가는지 보려고 앞에 서있는데 아저씨가 왜 거기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
"뭐하러 거기 서계셨어요? 그냥 지나가시면 될걸."
"내가 길바닥에서 똥 밟은 적이 몇 번인 줄 알아? 강아지 산책 다니려면 똥 치울 봉투 정도는 챙겨 다니는 게 매너 아니겠어? 그런데 사람들이 참 생각들이 없더라고. 도무지 똥 치우는 사람이 없다니까? 문화시민이란 사람들이 그러면 쓰겠어? 어이구, 참!"
"아... 그러니까 전에 똥 밟은 게 기분이 나빠서 보고 계셨던 거네요?"
"아니, 뭐 꼭 그래서였다기보다... 아무튼 보고 있자니 나도 머쓱하기도 해서 그냥 산책이나 가고 말자 그러고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아까 싼 똥이 그대로 있는 거 아니겠어? 내 이양반을 그냥. 욕을 하면서도 내가 또 치웠지 뭐야. 바로 앞 편의점에만 가도 봉투를 팔았거든. 저런 사람들 때문에 괜히 개 산책시키러 나온 선량한 사람들만 욕을 먹는다니까. 어이구, 참!"
나는 고개만 끄덕였고, 씩씩거리던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며칠 후에 또 산책시키러 나왔는데 마침 그 양반과 딱 마주쳤잖아? "이봐요, 아저씨. 전에 여기다 똥 싸 두고 그냥 가셨죠?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그래?" 내가 또 목소리가 좀 커? 사람들 다 들으라고 일부러 소리 좀 질러줬지. 그랬더니 날 정신 나간 여자처럼 보더니 자리를 뜨기 바쁘더라고. 사람이 참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렇지? 지 집에도 똥 싸면 그대로 둘껀가봐? 어이구 참!"
그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 하품을 간신히 참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그분이 참 잘못하셨네요."
떠드는 중에도 그녀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징어순대를 꺼내 썰으며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갔다.
"뉴스 봤어? 20대 여자가 백신 맞고 죽었다던데. 근데 그 여자 간질이라고 하더라고. 그래도 보상금은 주겠지?"
"보상금이요?"
"그래, 보상금. 왜 코로나 백신 맞고 죽으면 4억 얼만가 보상금 지급한다고 했잖아~."
"아~ 그래요? 나라에서 준다고 했으면 주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게 간단하지 않은가 봐. 그 여자가 백신 때문에 죽었는지, 간질발작으로 죽었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러게요. 어렵겠네요."
"그런데 그거, 간질. 나라에서 무상으로 치료해주는 병이라며?"
"그래요? 그건 몰랐네요."
자꾸 하품이 나왔다.
"심하게 놀라거나 했을 때 빨리 치료 안 해주면 그게 간질이 된다고 하더라고.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간질 걸린 오빠가 한 사람 있었거든? 그런데 그 오빠 어릴 때 밤새 시끄럽게 운다고 아빠가 땅바닥에 던져버렸대. 발작도 심하고 그랬는데 치료고 뭐고 신경도 안 써줬다지 뭐야."
"에이, 그건 너무 심했네요."
"그 오빠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한겨울에 동네 길가에서 얼어 죽었어. 참. 사람 어떻게 갈지 모르는 일 아니겠어? 아니, 자식새끼가 밤새 집에 안 들어오면 나 같으면 걱정돼서 한 번 찾아보기라도 할 텐데, 주워 온 자식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였다니까? 그네 부모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가서 몇 년 더 잘 살다 갔다더라고. 그렇게 자식새끼 비명에 보내 놓고도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긴 했나 봐, 어이구 참!"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만 끄덕였다. 아주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보상금만 주면 뭘 해? 나 죽고 나서 받은 돈이 무슨 소용이냐고?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거지."
"그래도 남은 가족에게는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흥! 나 죽으면 사망보험금이야 얼굴 코빼기도 안 보이는 아들놈이 타가겠지. 근데 만약에 내가 백신 맞고 죽잖아? 그럼 그 돈은 우리 시츄들 주라고 유서에 남길 거야. 그 돈 때문에라도 좋은 주인 만나서 이쁨 받고 살다가지 않겠어?"
"강아지를 예뻐하시나 봐요."
"어이구, 사람보다야 백 배 낫지. 얼마나 순종적이고 착한데. 사람이야 마음에 상처밖에 더 줘? 키워놔 봐야 저 잘난 줄이나 알지. 누구 뱃속에서 나온 줄도 모르고. 세상에 은혜 모르는 짐승은 사람밖에 없을걸?"
나는 궁금한 생각이 들었지만 내밀한 가정사가 얽혀있을 것 같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부지런히 말을 이어갔다.
"이 나이 먹도록 곁에 남은 건 시츄 2마리뿐이야. 애들이 얼마나 착한지 한 번 짖지도 않아. 나 오면 반갑다고 꼬랑지 흔들며 반겨주고. 패드 깔아 두면 똥오줌도 잘 가리고."
"많이 외로우셨나 봐요."
"..."
아주머니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묵묵히 순대만 썰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사연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백신은 맞으실 거예요?"
아주머니는 순대 썰던 칼을 내저으며 말했다.
"난 나중에나 맞을 거야. 그거 맞고 잘못되면 나만 손해잖어. 이 고생하면서 살고 있는데 백신 맞다가 죽을 일 있어?"
"유서 다 써두신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그래도 살고는 싶으신가 봐요?"
"세상천지에 빨리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럴 거면 뭐하러 야밤에 순대를 썰고 있을까. 골방 가서 보일러 끄고 얼어 죽고 말지."
"에이,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시츄들하고 오래오래 사셔야죠."
"그래, 내가 그 녀석들 생각하면서 살지."
그녀는 문득 어떤 장면이 떠올랐는지 안색이 어두워졌다.
"총각은 개 죽는 거 본 적 있어? 그 아이들 죽을 때면 꼭 그렇게 사람 눈을 바라보거든? 얼마나 안쓰러운지... 쯧..."
"키우다 죽은 강아지도 있으신가 봐요?"
"내가 키우던 개는 아니고, 아들 녀석이 지 애인 키우라고 개를 한 마리 선물했는데 몇 달도 안돼 못 키우겠다고 했나 봐. 그 개를 나한테 데려다주더라고. 나도 그 녀석까지 거둘 형편은 안돼기도 하고... 미운 년이 키우던 거라 꼴 보기 싫기도 해서 사촌 오빠네로 보내버렸지. 그런데 오빠가 집에서만 살던 개를 마당에서 키웠나 봐. 손바닥만 한 녀석이 추운 시골마당을 경험이나 해봤겠어?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비 한번 맞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갔어.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 녀석 가는 날에 사촌오빠 집을 갔는데 고놈이 땅바닥에 축 쳐 저서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이렇~게 쳐다보다 가더라고. 어찌나 불쌍하던지. 참.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싶었지."
"안됐네요."
"고것도 생명인데 끝까지 키울 자신 없으면 함부로 거두면 안 되는 거야. 주인한테 버려지면 말이야. 부모한테 버림받은 애처럼 이 집 저 집 전전하다가 사랑도 못 받고 불쌍하게 가버리거든. 저 어린것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어이구 참!"
그녀는 답답함이 치밀어 오르는지 말 끝마다 "어이구 참"을 반복했다.
"키우는 시츄들은 별일 없고요?"
"그러엄! 네가 고 녀석들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는데. 그 아이들만큼은 내가 죽는 날까지 보살필 거야. 지난겨울에는 패딩도 사주고 그랬다고."
"강아지용 패딩도 있어요?"
"그럼! 요즘 없는 게 어딨다고. 돈이 썩어 나는 사람들처럼 구찌네, 샤넬이네 하는 건 못 사줘도 나도 패딩 정도는 사줄 수 있어. 목이랑 등허리도 감싸주고, 배랑 다리도 살짝 덮어주는데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 산책 나갔더니 보는 사람들마다 이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더라고."
그 모습을 떠올리던 나는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따뜻하긴 하겠어요."
"여기 다 됐어요. 총각. 오래 기다렸지? 많이 담았어." 바삐 움직이던 아주머니의 손이 멈췄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까만 봉지 하나가 내게 건네 졌다. 그 안에는 순대 써는 아주머니의 수다만큼이나 많은 양의 순대가 담겨 있었다. 제법 묵직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2만 원을 꺼내서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5천 원을 돌려주시려는 아주머니께 거스름돈은 됐다고 말씀드렸다. 얼마 안 되지만 귀한 시츄들 간식이나 사주시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5천 원을 도로 말아 넣었다.
겨울 끝자락에 붙은 골목길의 밤에도 수천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천막에 가려 얼굴도 모르는 순대 써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짧은 대화가 끝난 후에는 그녀의 지난 인생이 궁금해졌다. 아들과는 어쩌다가 사이가 멀어졌을까? 남편도 없이 홀로 이 야심한 시각에 트럭에서 순대를 팔고 있을까? 누가 그녀를 이토록 억척스럽게 만들었을까? 그녀의 수다에는 사람에 대한 실망이 담겨있었고 그 실망은 분명 그녀의 인생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의지할 건 시츄 두 마리뿐이라는 그녀에게 잠시 안타까움도 일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스름돈 5천 원을 돌려받지 않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결국 지나치는 인연의 값은 딱 그 정도인 것이다.
나의 발걸음은 다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순대를 안주삼아 아내와 맥주 한 캔 꺼내 마실 생각에 군침이 돈다. 곁눈질로 뒤를 보니 장사를 정리하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트럭을 끌고 이제 어디를 향할까? 시츄들이 나와서 그녀를 반겨줄까? 그녀가 했던 말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덧 집 앞이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들이 문 앞까지 나와 반겨준다. "아빠, 이거 뭐야?" 둘째 녀석이 급 관심을 보인다. 먹을 것에는 귀신같이 눈치가 빠른 아이다. "순대 사 왔어. 엄마랑 같이 먹자." 치와와도 냄새를 맡았는지 꼬리를 흔들며 와서 매달린다. 순간 샤넬, 구찌 안 부럽다던 순대 아주머니의 패딩시츄가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올 겨울에는 이 녀석에게도 패딩을 입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