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의 단편소설 4편
대낮이었다.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모든 유리창이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아파트는 아수라장이 됐다. 경보음에 놀란 주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스폭발이라니. 수군거리는 근심이 주민들을 타고 퍼져나갔다.
멀리 옆집 아주머니가 보였다. 안색이 파리해 보였다. 떨리는 눈동자로 불길이 치솟은 위치를 가늠하던 그녀는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를 부축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며 사람들 사이를 정신없이 맴돌았다. 받지 않을 전화를 끊임없이 걸었고, 대답 없는 이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기약 없는 희망에 기댄 채 온몸으로 현실에 저항했다. 흐르는 눈물마저 화재의 열기에 말라붙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겠지. 어떤 현실은 지독히도 잔인한 법이니까.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 일사불란하게 내린 소방관들이 아파트로 진입하고 소화수가 화재현장에 뿌려진다. 옆집 아주머니가 사람들을 밀치고 나가 소방관을 붙잡고 소리친다. "제 딸, 제 딸 좀 구해주세요. 분명 집에 있었는데 지금 연락이 안돼요!" 울며 소리치는 그녀를 진정시키는 소방관의 머리 위로 무지개가 반짝였다. 3가지 색깔밖에 만들어내지 못한 무지개는 물줄기를 따라 허공으로 비산 되었다. 쉽게 꺼질 불이 아니었다. 두 집을 활활 태운 화마는 윗집의 유리창마저 열기로 달궈 산산이 부서트렸다. 완전히 타버린 현장에는 까맣게 그을린 벽면과 이미 재가 되어 버린 것들만 가득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남아있던 잿가루마저 허무하게 흩어버렸다.
멀리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군. 분명 소방차와는 다른 소리야. 그들은 누굴 쫓고 있는 것일까?
"오늘 오전 10시경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20대 아들 김 모 씨가 비상용 가벽을 뚫고 들어가 옆집에 살던 20대 여성 최 모 씨를 살해하고 달아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 모 씨는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르는 대담함마저 보였습니다. 현재 경찰은 다각도로 범인을 추적 중이며..."
빨래를 널고 있던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놀란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뒤에서 징그러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 찔렸으면 숨쉬기도 힘들 텐데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걸까?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도망치는 그녀의 등에 칼을 내리꽂았다. 목숨이 둘로 늘어났다. 이제 방법이 없었다. 옆집 현관문을 통해 아파트 광장으로 나오던 중 공동현관에서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태연히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냐고?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을 뿐이니까.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어. 그는 엄마를 죽이고도 태연하게 웃었지. 우습게도 정신병력이 있었던 엄마는 자기변호조차 하지 못했어. 그는 엄마를 자살로 몰았지.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엄마는 결코 스스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거든. 엄마는 나를 사랑했어. 결코 혼자 도망치다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될 사람이 아니야. 그가, 그 악마가 엄마를 죽게 만든 거야. 그건 진리고 진실이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옆집 여자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그래, 그녀의 죽음은 정말 안타까웠어. 교통사고와 같았지. 녹색불에 횡단보도만 건너지 않았다면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는 오토바이에 치여 죽을 일도 없을 거야. 문제는 달리던 오토바이가 아니라 하필 그때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에게 있는 거지. 그녀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던 거야. 그런 사람은 아무 잘못 없이도 죽을 수 있어. 세상에는 그런 10원짜리 죽음이 즐비하지. 그렇지 않아? 참 안타까운 일이야. 하필 그때 그녀가 나와 마주쳤다는 건. 나중에 그녀는 장례식에는 꼭 가보려고 해. 그녀가 과연 나를 반겨줄진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