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이해하면 '내'가 보인다.

감정을 아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by 작가 전우형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문제는 항상 무리를 지어 온다. 위기는 또 다른 위기를 부르고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부른다. 오른쪽 다리를 다치면 불편한 다리를 아끼느라 왼쪽 다리에 무리가 오고, 그래서 오른쪽 다리가 나을 때 즈음이면 왼쪽 다리에 문제가 생긴다. 양발의 균형이 맞지 않아 걷는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거나 골반이 비틀어지고, 허리 통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오른쪽 다리를 다친 그 하나의 사건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한쪽 다리를 다쳤다고 해서 악순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쪽 다리를 다쳤다면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하면 된다. 인간은 자신의 상처에 무지할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하고 그냥 버티며 산다. 어쩔 수 없는 이유는 언제나 존재한다. 병원에 누워있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당장 해야 할 급한 일이 있는 경우, 부양해야 할 가족이나 아이가 있는 경우, 일용직이라 어떻게든 일터에 나가지 않으면 살길이 막막한 경우 등 병원에 편안히 누워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적 요인들이 많다. 버티는 것과 방치하는 것은 다른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는 알고 버텨야 한다. 가벼운 근육통은 인내심으로 버텨내며 차분히 활동해도 회복되지만, 파열된 근육으로 운동을 이어가다가는 큰 부상을 입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은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 다리가 아픈 사람이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태도, 사고방식. 이 모든 것이 사건의 결과를 다르게 한다. 결국 문제는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어떤 식으로 치료해왔는가에 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낀다. 감정은 행동을 변화시키고, 행동이 변화하면 사건의 질과 양이 달라지며 접하는 환경이 변한다. 사소한 반응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삶의 곳곳을 변화시킨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있다. 그 사고로 인해 많은 시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보행신호를 확인하고 건넜지만 사고를 당했다. 치료는 고통스럽고 지루했다. 다시는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이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게 됐다. 육교나 지하도를 이용했지만, 도저히 건널 곳이 없을 때는 택시를 탔다.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끔찍한 불안이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갔을 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한적한 동네였고 육교도 지하도가 없었다. 횡단보도에는 심지어 신호등도 없었다. 택시도 자주 다니지 않았다. 중고차를 마련했다. 하지만 주위의 차량을 보면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렀다. 결국 운전 중 심각한 사고가 날 뻔한 이 사람은 결국 집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택했다. 웬만한 건 택배로 다 해결했다. 꼭 나올 일이 있어도 가급적 도로를 건너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정했다.


잘못된 버티기의 대표적인 예다. 물론 회피전략도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회피는 해결이 아니며, 문제의 근원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방치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불안에 회피로 대응하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회피할 방법을 찾는데 몰두한다. 회피하는 동안 불안은 덩치가 커지고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이 된다. 모든 것은 어릴 때 생긴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짜 원인은 불안과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태도와 사고방식 때문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은 좋지 않다. 과도한 죄의식과 자책은 우울증으로 몰고 가는 원인 중 하나다. 완벽주의. 실수의 불인정. 자아비판과 비난. 인생 전체로의 과도한 일반화. 이런 것들로 인해 자존감이 저하되고 내면에 잠재된 문제는 더욱 강화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를 정확히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은 해결방법이 아니다.


넘어지면 상처가 나고, 그 상처에는 온갖 이물질들과 핏덩이가 말라붙는다. 그대로 두면 상처는 덧나고 치료는 더뎌진다. 상처를 소독하고 환부를 살펴보는 과정은 일시적 고통을 유발하지만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상처부위가 크면 꿰매어줘야 할 때도 있고 흉터가 남지 않으려면 연고를 발라주어야 한다. 치료가 잘 이뤄져야 상처를 가리기 위해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다니지 않는다. 중고 상점에서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있다. 사람을 곧잘 믿던 이 사람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찼다. 이제 직거래 외에는 결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상대방이 보내준 송장 따위는 믿지 않는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이 사람은 '믿는' 사람에서 '의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의심의 눈초리는 상대방이 잘 알아차린다. 의심은 의심을 부르고 관계를 해친다. 중고거래에만 나타날 것 같은 의심은 생활 곳곳으로 번진다. 가까운 사람의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뒷조사를 하거나 따로 확인해야만 한다. 의심과 불안이 진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가볍게 결정하지 못하고 매사에 심각해진다. 가끔은 확인하는 자신이 진절머리가 나고 머리가 아프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한 번 굳어진 패턴은 수정하기 어렵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호랑이가 멈추기 전에는 내려올 수 없는 것처럼.




감정의 악순환은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불안에 회피로 대응하면 더욱 불안해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의심부터 시작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감정과 사고방식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회피는 경험과 시도를 제한하고, 해보지 못한 일들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불안을 야기하고 발걸음을 꽁꽁 묶는다. 활동영역은 줄어들고 인생의 정체감이 강화된다. 남들은 조금씩 발전해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지만 회피하는 습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뒤집을 노력을 실행하지 못한다. 인생을 비관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어진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내가 없는 곳에서 흉을 볼 것만 같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태도가 고스란히 전달되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다가올 수 없게 만든다. 관계에서 실패한 경험이 외로움과 고독을 강화시키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게 만든다. 하지만 스스로 혼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회피의 결과로 혼자가 된 것이기에 행복한 솔로가 아닌, 고독한 아웃사이더가 된다. 빠져나올 계기가 있음에도 그러지 못한다. 혼자서 끙끙 앓고 버티는 것이 패턴이 되었기 때문이다.


옆사람의 대화나 조언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나쁜 말이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세상 사는 게 다 그래. 너만 그런 거 아냐. 힘내.’ 이런 말들이다.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는 사람에게 더 힘을 내라고 하는 말만큼 가혹한 말은 없다. 미치게 힘을 내고 싶은데 힘이 나지 않는 걸 말로 해결할 수는 없다. 다들 나만큼 힘든데 잘 버티고 산다는 말은 더욱 잔혹하다. 역시 나는 안되나 봐. 나 같은 것은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야.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가장 쉬운 말이 ‘너만 힘든 것 아냐’라는 말이다.


보이는 상처는 정당성을 얻는다. 피가 나고 다리를 절뚝거리는 사람은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한다. 주위에서 보는 사람들도 어서 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그까짓 상처 뭐가 대수라고 그래. 다들 그 정도는 아프고 산다며 집에 가서 푹 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당한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의 무서움을 모른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사고방식이나 감정, 신념, 가치관 등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현실로 반영되고 우리의 행동이나 말 등을 통해 발현될 때는 그 형태가 바뀌기 때문에 그것들의 기원이 사고방식, 감정 등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렵고, 어렵기 때문에 골치 아픈 것으로 치부하고 그냥 넘어간다. 체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의지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여긴다. 마음에는 '그저 버텨라'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상황을 상상할 때 불안은 극대화된다. 예기불안이 심해지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곧 닥칠 거라는 망상적 사고에 사로잡힌다. 언제 갑자기 닥칠지 모르는 해결하지 못할 사건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불안을 이기고 그 일을 해나가는 것에는 분명 의지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안을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대단히 제한되어 있다. 어떤 불안은 도저히 의지로는 제어할 수 없다. 불안이 의지를 압도할 때 의지가 약하다며 다그칠 것이 아니라, 거대해진 불안을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을 줄이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안개의 장막을 걷어내고 불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우리를 두렵고 불안하게 한다. 탐험을 즐기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준비 없이 무인도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조금씩 단계적으로 자신의 활동범위를 넓혀나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 무조건 일단 들이대고 도전하라는 누군가의 조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타인의 사고방식과 생활패턴을 무작정 따라가다가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지는 꼴이 날 뿐이다. 상처와 실패를 무작정 회피해서도 안되지만 무모한 도전으로 회생할 수 없는 실패를 경험한다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빠르게 찾아서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손도 대지 못하고 반 공황상태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만큼 이런 사람은 많은 것을 알기를 갈망한다. 공부하고 습득하고 준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가장 큰 불안요소는 자신이 모르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가급적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불안을 그냥 불안으로 놓아두지 않고 불안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안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알면 알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그동안 불안해했던 것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 불안의 실체는 줄어들고 삶의 영역은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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