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도 어려움의 대상이 된다.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으로 확산되면서 감염자 수가 폭증하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고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출입국을 차단했고 모든 하늘길이 막혔다. 항공사들은 문을 닫았고, 선망받던 직업이었던 항공기 조종사를 비롯한 항공업계 종사자들이 휴직 상태에 놓이거나 퇴사 조치되었다. 주가는 요동쳤고 유류 소요가 줄어들면서 기름값이 하락했다. 정유업체들은 역마진으로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놓였고 재고평가로 인한 손실도 엄청났다. 크루즈 집단감염 사례가 속속 발견되면서 바닷길도 끊겼다. 코로나 블루는 사람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일상이 얼어붙은 것처럼 세상도 정지되어 버렸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전세계를 마비시킨 것처럼, 작은 문제 하나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모든 요소들이 톱니바퀴 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악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감정의 메커니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코로나-19와 같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이 살아 움직인다. 부정적 사고방식, 비합리적 신념과 같은 것들이다.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있으며, 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은 정해져 있다. 바로 우리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에 저항할 힘을 잃어버렸을 때다.
우울증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병들이 그렇듯 심화과정을 거친다. 작은 문제들이 큰 문제로 발전하며, 악순환을 거듭한다. 마음의 방벽이 약해지고 의지로 방어하기 어려워진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존감은 옅어지며 자존심만 남아 주위를 향해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어렵고 귀찮아진다. 인간관계는 언제나 어려웠지만 요즘들어 유독 더 어렵고 괴롭다. 그들이 나를 공격하고 비난할 것 같아 두렵고 불안하다. 나의 위치가 흔들린다고 느끼고, 그곳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느낀다. 때때로 목소리는 들린다기보다 느껴지는 것 같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그들의 대화장면이 떠오르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부풀려지기도 한다. 생각 회로가 비틀어져버린 것이다. 그들이 엄청난 호의를 베풀지는 않더라도 그처럼 악의에 찼을리는 없다. 이성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감정에 압도된 채 무의식적으로 두렵고 자리를 피하고싶어진다. 안타깝게도 그들 속에는 '나'도 포함된다.
나조차도 어려움의 대상이다. 풀기 어려운 숙제를 대면한 것처럼 나의 본모습도 마주하기 어렵다.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렵고 세상 사람들의 말이 두렵다. 내면은 거칠고 황량해진지 오래다. 구름은 있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해는 사라졌다. 회색빛 세상에서 모래폭풍이 불고 곡식은 자라지 못한다. 모두가 떠나버린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황무지같은 광야에 나만 서 있다. 마음의 텃밭은 갈라지고 물길은 말라버렸다. 마음이 더 이상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지고, 삶에 재미가 사라진다. 취미는 사치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기에도 버겁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더욱 무겁다. 밥을 먹는 것도 귀찮고 잠은 오지 않는다. 술에 의지해 보기도 하지만 깨어나면 남는 것은 쓰린 속과 자책, 후회뿐이다. 이래서야 살 맛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얼굴은 퀭하고 흑빛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냥 별일 아니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속내는 딴판이다. 요즘 들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머리를 떼어 내고 싶을 정도로 속이 상한다. 나중에는 속이 상하다 못해 생각이 없어진다. 그저 멍하게 있다 보면 사람들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간다. 정신 좀 차리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이나 게임중독인 줄 안다. 비슷한 상태일 것이다. 그 사람들만큼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고 잠을 못 자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는다. 이런 나를 불쌍히 보는 사람도 있고 고깝게 보는 사람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다. 그런데 자꾸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수군거림이 느껴진다. 좋은 말은 없다. 나쁜 말들이 사실처럼 여겨진다. 내가 점점 그런 못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 비정한 최면을 누군가가 걷어줬으면 하지만 지금의 나는 외롭다. 외로움을 내가 자처했다. 사람들의 곁으로 가기도 싫고 누가 내 곁으로 오는 것도 싫다. 지극히 고독하지만 고독이 편했다. 적어도 한편으로는 그랬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사람을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익숙해진다고 해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을 누르고 자신을 다스릴만한 스킬은 얻었지만 성격은 상수라 한번 굳어지고 나면 변화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배로 남는다. 체력이 온전한 날은 그나마 괜찮지만 잠이 부족하고 컨디션이 떨어지면 의지력은 그에 비례해 바닥을 친다. 평소에는 의연하게 대처했던 상황들이 하나씩 발목을 걸고넘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어색함을 느끼고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자신의 불안은 힘을 얻는다. 역시 나는 안된다는 자기 평가가 고개를 든다. 이것은 마치 최면과 같아서 나를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리고 반복된다. 믿고 기댈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데 내 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많지만 내 편은 없다. 관계 속에서 고립된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고립이 외로움을 완성시키고 배는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는다.
말 한마디에도 상처 받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도 평소에는 잘 살아간다. 말은 사라지기 쉽지만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없는데 상처 받는 사람은 있다. 내가 상대방을 가해자로 바라보는 시선에 불쾌한 상대는 정말로 나에 대한 악의가 생긴다. 한번 생긴 악의는 상대방의 단점을 찾고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킬 준비를 한다. 완벽주의는 완벽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게 만들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작은 실수도 크게 확대 해석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 아픔을 가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