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정신

법은 오로지 약자의 편에 설 때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by 작가 전우형

법은 작은 악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거대 악은 오히려 심판하지 못했다. 공룡이 된 거악은 법의 그물에 걸렸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 결과 법의 그물을 붙들던 법의 수호자가 다치고 말았다. 거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더 넓고 견고한 그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더 많은 법의 수호자들이 필요했다. 법의 수호자가 많아지자 거악은 자신이 가진 화려한 능력들로 타락해가는 법의 수호자를 유혹했고 그중 일부가 거악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물이 넓어질수록 틈을 만들기 쉬웠고, 정교해질수록 톱니바퀴 하나만 빠져도 기능을 멈출 수 있었다. 그 결과 법의 그물은 크고 정교해졌지만 법의 배신자들이 만들어둔 틈으로 거악은 교묘히 빠져나가버렸다. 이제 더 튼튼하고 넓어진 법의 그물은 원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오히려 죄 없는 일반인을 가두고 말았다. 거악은 그물 밖에서 유유히 거닐며 그물에 갇혀 옴싹달싹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입맛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넓어진 법의 그물이 오히려 애꿎은 일반인을 잡는 데 사용되는 메커니즘은 이러하다. 이행해야 할 사항이 많아질수록 약점은 늘어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게 된다. 인간에게 완전무결함을 요구할수록 죄가 없던 사람도 얼마든지 죄인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법의 그물은 어느덧 거악의 손에 쥐어졌고 그들의 수족이 된 법의 배신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합법적으로 약자를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악의 발호를 제어하고자 만들어졌던 법의 그물은 이제 거악의 횡포와 권력 불리기에 방해가 되는 요소요소들을 솎아내고 베어내는 사신의 낫이 되어버렸다.


악은 오히려 법의 든든한 방패 뒤로 숨었다. 법에 의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합법을 가장한 악행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악이 법의 그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법 자체가 악행의 도구로 변질되고 말았다.




준법정신


준법정신은 이런 것이다. 법의 수호자로서 법의 배신자로 변질되지 않는 것. 거악이 가진 화려한 권력에 눈멀지 않는 것. 법을 더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법이 원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법의 틈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거나 파고들지 않는 것. 스스로 법의 틈을 메우기 위한 양심적, 도덕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 법을 이용해 선량한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지 않는 것. 법을 입맛대로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는 것. 법을 악행의 도구 삼지 않는 것. 법의 원래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것.


시민은 법의 주체이자 수호자다. 시민은 스스로 법을 만드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것을 수호해야 할 의무도 지닌다. 시민 스스로 법을 이용하려 할수록 거악은 시민사회의 허점을 파고들고, 종래에는 약점을 이용해 정의의 누수를 일으킬 것이다. 정의가 빠져나가도 물은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사회'라는 그릇에 담긴 물이 독으로 변해갈 뿐. 정의가 사라진 사회의 시민은 독을 마신다. 그것이 독인지도 모른 채.


법은 법치주의의 근간이며 수단이다. 수단은 가치중립적이기에 총구의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느냐에 따라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 총구의 방향을 논하기 이전에 법이 총으로 변하지 않도록 시민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법은 방패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 법은 사회 질서를 수호하고 약자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법이 어째서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할까. 이유는 명확하다. 강자는 약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만, 약자는 강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법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함은 법이 사회의 일부 계층만을 지킴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강자인 동시에 약자다. 강자가 약자를 함부로 짓밟거나 입맛대로 이용하거나 내팽개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야만적 생태계로부터 인간사회가 가진 인간다움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법의 본질적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도출할 수 있다.


법은 오로지 약자의 편에 섰을 때 그 본질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법의 횡포


법의 횡포는 법이 오히려 강자의 편에 설 때 발생한다. 더불어 법으로 정해진 조문의 내용 하나하나가 과도한 구속이 되어 법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할 때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이들이 그러한 법의 횡포를 목도하고도 묵인하거나 눈을 돌려버리거나 혹은 사사로운 이익, 일부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에 그칠 때 발생한다.


법의 횡포 아래서는 '법대로 하자'는 말이 강자의 입에서 나온다.

법의 횡포 아래서는 5,800여 개에 이르는 법령의 구체적 내용을 더 많이, 더 자세히 아는 사람이 법의 총구를 상대방의 턱밑에 겨눌 수 있게 된다.

법의 횡포 아래서는 법률전문가를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는 쪽이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법의 횡포 아래서는 법으로서 악행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이 악행의 주체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법의 횡포 아래서는 정의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한국사회는 준법정신이 남아있는 사회에 가까울까, 아니면 법의 횡포가 만연한 사회에 가까울까? 일반 시민이 준법정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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