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도 봄은 오는가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시민이 살아 숨 쉬는 한.

by 작가 전우형

과연 미얀마에도 봄은 올 것인가?


힘은 결국 정의에서 멀어짐으로써 또 다른 힘에 의해 공격받고 무너진다. 마치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고, 그 늑대는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봄이 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정의는 인간의 DNA에 뿌리내려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힘을 견제하고 정의를 지켜가는 한 겨울은 언제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시민사회의 정의가 힘의 횡포를 완전히 막을 수 없을지라도 기나긴 도덕의 궤적을 따라 인간은 스스로를 조금 더 인간다운 존재로 만들어갈 것이라 믿는다.




국가의 무력이 국민을 향할 때 탄압은 현실이 된다. 미얀마 군부는 힘의 사용처를 선택할 능력을 잃어버린 듯하다. 희망은 당연하지 않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은 지구가 부지런히 움직여주기 때문이다. 봄을 향한 지구의 노력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들이 군인이라면 총을 내려놓고 정의를 집어 드는 것이 맞다. 복종만이 군인의 사명은 아닐 것이다.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군인은 폭도로 변한다.


그래서일까? 힘은 잔혹하다. 힘은 모일수록 정의로부터 멀어진다. 누군가 조종이라도 하는 것처럼 힘과 정의는 서로를 밀어낸다. 정의를 갈망할수록 힘과 권력을 증오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힘과 정의 중 하나만을 주신 것일까? 힘에 도취될수록 정의를 상실하는 것은 힘이 가진 마력으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것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은 망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힘은 그 주인마저 노예로 만든다.


정의는 힘의 횡포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정의는 힘을 몰아내더라도 그 독점을 인정하지 않기에 세상을 휘두를 수 없다. 정의가 힘의 공격에 취약한 것은 정의 스스로가 그것을 지키려 하는 자까지 족쇄를 채우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는 힘에 의해 무너져 내리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힘의 부정의를 지적한다. 그렇게 힘없는 정의는 피로 대지를 적신다. 자유의 대지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은 그 피를 머금었기에 붉고 뜨거운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힘과 정의를 동시에 가질 수 없는 모양이다. 인간은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만약 힘을 가진 절대자가 진정으로 정의로울 수 있다면 세상에는 완벽한 질서가 찾아오고 영원한 평화시대가 도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완벽하게 통일된 세계를 꿈꾸고 선동해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힘으로 평화가 찾아온다는 상상은 완벽한 허구에 가깝다. 그것은 수많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결코 한줄기로 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은 짧고 힘의 논리는 머릿수에 조금 더 유리하다. 그런 이유로 힘을 가진 자 또는 집단에게 정의는 허락되지 않고, 힘이 결국 힘없는 자의 정의로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볼 때 인간은 미묘하게나마 신의 섭리를 깨닫게 되는지도 모른다.


힘없는 정의에 실망해 힘을 갈망하게 되는 것 또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때때로 힘에 대한 시기와 분노, 증오를 땔감으로 삼아 뛰어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들이 있다. 참고 참아 원하던 위치에 오른 사람은 그토록 원했던 힘에 조금 더 다가서지만, 그 과정에서 짚신처럼 닳아버린 정의만이 남아있다. 끊어지기 직전의 동아줄로는 황소를 잡아둘 수 없다. 힘은 정의에서 벗어나려 하고,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성난 황소는 눈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밀어내고 짓밟는다.


그리하여 법은 원래는 정의의 편이었을 것이다. 법에 힘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법 또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힘과 정의를 동시에 아우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법을 집행하고 만드는 이가 인간이기 때문일까? 법의 힘이 강해지면 사회에 질서가 정착되고 정의가 바로 세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법의 힘이 강해질수록 정의는 오히려 퇴보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힘은 정의로서 견제된다. 하지만 법이 언제나 정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기에 법에 기대어 힘의 횡포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법은 미얀마 군인에게 쥐어진 총과 같다. 사용하는 이의 정의에 따라 그 총구는 국민을 향할 수도 있다.



결국 정의의 편에 서서 힘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뿐이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다. 인간은 힘을 선택할 수도 정의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절대적인 힘도, 완벽한 정의도 구현할 수 없지만 힘과 정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기울어지되 쓰러지지 않고, 적응하되 변하지 않고, 물러서되 굽히지 않는 성숙한 시민은 자유의지를 통해 완성될 수 있다.


자유의지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성숙한 시민은 힘과 정의, 국가와 사회, 법과 질서, 나와 타인 사이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기준이 존재해야 하며 법의 타율을 따르기 이전에 양심과 도덕의 법정에 스스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찰이며 자율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유'다.


힘을 가진 자는 힘에 구속되어 그 힘을 노리는 자로부터 공격받기 마련이다. 지킬 것이 많은 자의 불안은 타인에 대한 의심을 부추기고, 지는 법을 강박적으로 잊어버리게 한다. 절대 지지 않는 삶.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삶. 행복할 것 같지만 외롭고 고독하며 가시밭길 같은 삶이다. 인간의 적응능력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다 해도 영원한 만족은 제공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고 힘을 가진 자는 더 큰 힘을 원하며 위에 선 사람은 더 높은 곳만을 바라보게 된다. 신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바벨탑을 쌓던 그 시대의 사람들처럼. 신은 언제나 그들 곁에 있었건만 그들은 누구와 가까워지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려했던 걸까? 신이 높은 곳에 존재한다는 착각. 그것은 높은 곳에 있는 자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힘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만에 대한 경계는 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다. 힘에 도취될수록 오만에 빠지는 것은 그 성취가 온전히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착각 때문이다.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노력만으로 무언가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착각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빚을 진채 살아왔다. 우리는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였다. 인간은 그토록 불완전하게 태어남으로써 서로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인간이 홀로 존재하는 한 명백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오만은 그런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커다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며 미래는 내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는 착각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 참으로 가슴 뛰고 웅장한 말이지만 이것은 커다란 위험을 내포한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고 믿는 한 그 운명의 무게는 고스란히 자신의 책임으로 자리 잡는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이러한 생각은 모순덩어리다.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홀로 책임질 수 없었기에 연대하고 뭉쳐서 생존해왔다. 함께하지 않고 개별로 존재하는 한 인간은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매우 아래쪽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인간이 이제 와서 스스로를 운명을 개척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라 완벽히 믿는다면 그것은 모순적인 믿음일 동시에 오만일 것이다.


오만은 인간을 독선적으로 만들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한다. 오만은 언제나 힘과 함께한다. 입은 하나이지만 귀가 둘인 이유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중요히 여기라는 신의 섭리가 담겨 있다. 입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지만 귀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수단이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나를 표현할 경우보다 타인의 말을 들을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오만은 그와 반대로 귀를 멀게 하고 타인을 무시하게 한다. 약자 없이는 강자도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이 언제까지나 강자로 남을 것이라는 오만에서 비롯된 착각은 인간을 약하고 악하게 한다. 힘은 결국 오만의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힘과 정의를 동시에 가질 수 없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얀마에도 봄은 올 것인가?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곳에 여전히 시민들이 살아 숨 쉬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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