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기괴한 파열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반영할 수 없는 걸까.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온통 하늘을 뒤덮은 구름뿐이었다. 대기를 찢는듯한 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어느덧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유토피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유시계의 영역에서는 없는 것으로 무시되는 세계. 보이는 것을 좇는 방식으로는 유토피아를 풀어헤칠 수 없다.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모토로, 유토피아의 플랫폼은 잠수함을 기반으로 했다. 그것은 일종의 보이는 세상에 대한 시위이자 저항의 상징이었다.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볼 수 없는 세상. 이 두 가지 세상은 다르면서도 결국은 같다. 보이는 세상과 공존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은,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 보이는 세상은 무척 명확하고 편리해서 굳이 그 이상을 탐구하고 확인할 필요성을 떨어트린다. 관심에서 멀어진 보이지 않는 세상은 인식의 범위 안에 존재하더라도 인지의 좁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많은 것들이 소음으로 걸러져 중요한 정보마저 버려지고 만다.
그 결과 개인의 인지를 통해 형성된 고유한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반면에 볼 수 없는 세상은 보이는 것들마저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통합된 세상이다. 맹인이 청각이 발달하는 것처럼 볼 수 없는 세상에 다다랐을 때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자극된다.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볼 수 없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볼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세상이 각자의 주관적 세상으로 통합되기에 이 두 가지 세상은 구분이 모호해진다.
수중환경은 볼 수 없는 세상에 가깝다. 보이는 세상을 지배하던 빛은 수심 20m의 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빛이 사라진 물속 생태계를 주름잡는 것은 ‘소리’다. ‘음파(sound wave)’로도 불리는 이것은 오히려 물속에서 존재감을 더한다. 공기 중보다 3배 이상 음속이 빨라지며, 수온에 따라 속도가 변한다. 적은 감쇄로 원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심해 음파 채널 등을 통하면 지구의 곡면을 극복하고 계측이 어려운 원거리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음파를 지배하는 것은 물속 세상을 지배하는 것과 같았다.
구름이 사라진 세상에서 태양의 열기와 빛은 곧 재앙이었다. 구름이라는 천연의 방어막을 잃은 대지는 주체할 수 없는 열기로 인해 메마르고 타들어갔다. 지구를 닮아 몸의 2/3 이상이 물로 이루어진 인간은 그런 세상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유토피아가 왜 보이지 않는 세계일까? 일단 유토피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허구이며 가상이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구성원은 허구를 실제라 믿고 살아간다. 그들이 그것을 실제라 믿는 한 ‘현실 원리’라 이름 붙여진 허구적 제약에 사로잡히고 만다. 유토피아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는 자신의 믿음과 상상이 만들어낸 세상을 현실로 믿고 산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될 때 그것은 허구가 된다.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가상현실 유토피아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유토피아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허구를 실제처럼 여기게 하기 위한 밑그림이 그려진다. 끊임없이 변하고 생동하는 유토피아의 세상 속에서 오로지 주인공만이 현실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그가 자신이 처한 세상이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격변이라는 행복과 절망의 원재료를 수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토피아에는 독특한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다. 그것은 그를 현실 원리에 가두는 한편 시스템을 뒤흔들 결함을 스스로 생산해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시스템의 산물이지만 유토피아 시스템에 대한 통찰을 가진 존재다. 유토피아 시스템은 그녀를 바이러스로 인식하고 공격한다. 그녀와 같은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최우선 제거대상으로 등록된다. 오류 제거를 위한 프로세스는 그녀를 죽음으로 이끄는 모든 현실적 방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 강도의 습격으로 살해당하기도 하며, 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기도 한다. 교통사고나 건물 붕괴와 같은 재해, 재난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도 있다. 그리하여 대개 그녀와 같은 존재는 99.99%의 확률로 단명한다.
그녀가 주인공을 만나는 운명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이 이 세계에 비밀이 존재한다고 믿거나 의심을 품으면 톱니바퀴가 맞아 들어가며 운명의 시계추가 똑딱이기 시작한다. 때로는 비밀을 아는 누군가가 존재한다고 강하게 믿을 때 유토피아는 시스템이 가진 원리에 따라 그 믿음을 눈에 보이는 세계에 반영하기도 한다. 상상을 현실로 불러일으키는 고유한 시스템은 그녀와의 만남을 어떤 방식으로든 성사시켜준다.
한편 잠수함 형태의 플랫폼에는 유토피아 시스템 구동, 유지보수, 그리고 항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을 탑승시킨다. 각각의 플랫폼은 격자 형태로 구분된 대양의 지정된 구역을 맴돈다. 운영진의 교대는 50일에 한 번씩 이루어졌고, 군수보급 및 폐기물의 배출, 추출된 행복에너지의 회수도 같은 날 이루어졌다. 거대 상선의 형태를 띤 선박은 각각 4개 구역을 순회하며 보급, 긴급수리, 회수, 안전 확인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불안지수가 높은 참가자의 경우 초기 탐색 행위가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에게 있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을 상쇄시킬 방법은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보다 많이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호기심과 적극성을 바탕으로 세심하게 주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불안을 잠재울 수준까지 탐색을 마친 후에는 정체기를 가졌다. 당장의 위험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갖자 호기심은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안도감을 주는 경계 이상으로 벗어나지 않으려 했고, 대개 그 경계란 주최 측이 경고한 울타리와 일치했다.
유토피아에서의 시간은 빠르게도 느리게도 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토피아의 시간을 빠른 속도로 돌리면 참가자의 신체 노화도 그에 비례해 빨라진다는 사실이었다. 10배의 속도로 1년의 유토피아 체험을 마친 참가자는 41살의 실제 나이에 비해 스스로를 50세로 인식했다. 그는 결코 40대 시절로 수명의 모래시계를 되돌리지 못했다.
단순함은 종종 강인함과 비례하기도 해서 인간은 기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할 수 있는데, 인간이 생산성이라는 지표에서 기계를 당해낼 수 없는 것은 인간은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쉽게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염증은 내가 왜 같은 행위를 반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삶에 대한 염증은 마른 들판에 떨어진 불씨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인간이 기계와 같다면 유토피아에서의 삶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최초 계약한 10년 동안 한정된 공간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은 기계처럼 단순하고 강인할 수 없다. 아무 일 없음에 인간은 종종 쉽게 무너지며,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꿈꾼다. 삶의 에너지는 변화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다람쥐 쳇바퀴의 구동축이 마모되고 으스러지는 상상을 한다. 그것이 현재의 안정된 상태를 위협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종종 파괴적인 변화를 애써 기다린다. 그들이 부정하는 위험을 자극할 약간의 의미와 필요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럼없이 일탈에 뛰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