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나는...
대개 우리가 분노하는 일은 배우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배운 것을 실천하지 못해 일어난다. 정의는 드라마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정의로운 사회가 착착 구현되어가는 모습은 개연성도, 현실성도 떨어진다.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지만 습관대로 사는 데는 이유가 없다. 무감각한 부위는 통증조차 일지 않는다.
배운 사람에게는 교활함에 질리고,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단순 무식함에 질린다. 선함은 배움의 수준과 비례하지 않아서 배운 사람은 드러나지 않게 나쁜 짓을 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나쁜 짓을 숨기지 못한다.
카페인은 종종 조증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낸다. 조증인 상태에서는 온몸에 활기가 돌고 일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 예술적 소양이나 창의력을 마음껏 뿜어내기도 한다. 작가의 오랜 친구는 커피라는 말이 영 실없는 말은 아닌 것이다. 에스프레소 60잔 분량의 카페인을 한 번에 주사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커피를 배우는 이유는 카페인 때문이다. 이 밤중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투 샷을 내리 들이키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 좋을 줄 알았는데. 각성이 사라지면 도리어 우울이 찾아오기도 한다.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실 때만 행복하다. 행복은 쾌락과 다르다는데. 쾌락은 또 만족과는 다르다는데.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은 쾌락일까 아니면 만족일까? 나는 행복하려고 커피를 마시는 걸까 아니면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행복을 추구하는 걸까?
말없어 보이는 사람도 간혹 수다쟁이가 되는 때가 있다. 말하는 재주가 은근히 부러울 때가 많다.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말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스스럼없이, 유창하게,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말을 내뱉을 때 나는 왠지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든다. 약속 장소에서 바람맞은 기분이랄까. 혼자 커피를 마시면 왠지 행복하지가 않다.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대는듯한 기분도 든다. 수치심이란 이런 걸까. 때로는 목소리란 들린다기보다 그려진다. 식어버린 라떼를 마신다. 왜 기다렸을까. 그냥 마시고 나가버릴걸. 미련은 종종 내 몸무게보다 무거워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못하게 한다. 기다림에 대한 위안이라도 받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바람맞은 상태로 거리로 나간다. 긴 그림자가 벤치 끝에 걸렸다. 내 키보다 더 긴 그림자다. 석양이 나를 비웃는다. 이 늦은 시간까지, 하루가 다 가도록 너는 누구를 기다렸느냐고. 아니. 난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어. 난 그저. 난 그저...
또 그렇게 난 할 말이 없어졌다. 말하지 않는 건 습관이다. 말하지 않는 습관이 생긴 건 내가 유독 말솜씨가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꽤나 유창하게 혹은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말하지 않는다. 말하기보다는 듣고만 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건 할 말을 아껴두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 말에 쓸 땔감이 부족하다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목적 없는 대화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내심 부러워하는지도 모른다.
글을 왜 쓰냐고? 글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망가진 자존심을 글쓰기로 채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때로는 나도 나를 잘 모른다. 노트북을 펼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투 샷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움직이지 않는 입 대신 움직이는 손으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것뿐. 마음이 하는 말을 귀로 듣기 어려워서 눈으로 듣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생각을 조금 더 오래 붙들어두면 뭔가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아서.
매번 정지선을 밟고 서는 사람이 그랬다. 선 다 지켜가면서 살면 바보 된다고. 앞설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앞에 있는 게 사는데 유리하다고. 밟고 설 거면 그냥 지나치는 게 낫지 않아? 내가 물었다. 그럼 양심에 찔리잖아. 그가 대답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만 단어들이 굴러갔다. 그냥 지나치는 건 양심에 찔리고 선을 안 지키는 건 양심에 안 찔리는지. 말하지 않는 건 내 오랜 습관이다. 생각만 하는 것도 내 오랜 습관이다. 말하지 않는 건 습관으로라도 되는데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더라. 생각이 사라지면 존재하지 않던가? 누가 그랬더라. 칸트였던가...
양팔과 양다리를 쭉 뻗고 기지개를 켜본다. 몸이 펴지는 것처럼 생각도 쭉 펴졌으면. 쭈글이 같은 생각은 고이 접어 주머니 속에 넣고 좋은 생각만 했으면. 개 짖는 소리 대신 사람 같은 대화를 했으면. 사회가 언제부터 정의로웠던가. 언제부터 사람이 약속을 지키며 살았던가. 기다린다고 나타나면 그게 인연인가. 염세적인지 냉소적인지 세상이 가뭄으로 메마른 땅처럼 보이는 것은 카페인이 부족하기 때문인 건지. 그래서 또 한 번 주욱 들이킨다. 이제 얼음이 녹아 조금 밍밍해진 미지근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키가 줄어든다. 이 녀석이 쪼그라드는 만큼 내 마음은 더 채워지겠지. 그런데 컵 홀더가 젖어 눅눅해졌다. 물리법칙은 한순간도 거스르는 일이 없다. 수증기가 응결되어 물이 되고. 그리움은 응결되어 눈물이 되고. 어느 물리학자가 그랬던가. 물리법칙은 마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글쎄. 눈물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리움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졌다. 나는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그리움에 잠겼다. 아마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지도.
돌아오던 길에 보았던 하늘이 떠올랐다. 해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커튼처럼 드리운 구름들이 앞으로 주욱 펼쳐져 있었다. 터널이 바깥보다 더 밝았다. 보통 터널 끝은 하얬는데 아까의 터널 끝은 오히려 검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그 하늘은 오늘 본 하늘이 맞을까. 가끔 기억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가끔이라는 것도 내 기억이 흐트러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기억은 온전할 때보다 왜곡되고 비틀어지는 순간이 더 많을지도. 기억을 의심하는 건 내 오랜 습관이다. 나는 내 기억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자꾸만 무언가를 쓰게 되는 건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화석으로 남겨두고 싶은 까닭이다. 화석처럼 굳어져버린 기억일지라도 단단한 만큼 변형은 적으리라.
선풍기 바람이 시원했다. 그 바람이 서늘해지고, 약간은 시려졌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나는 또 얼마나 손가락을 움직인 걸까. 가끔 나도 놀라고 만다. 내가 이토록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줄이야. 굳어버린 혓바닥 대신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입은 카페인을 들이키는 용도로도 충분하다. 그래. 각자에게 맞는 용도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