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마이클 샌델, '완벽에 대한 반론'으로부터
여러분은 듣지 못하는 것을 장애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정체성이자 삶의 양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의 한 레즈비언 커플 샤론 듀셰스노와 캔디 매컬로는 자신들이 가진 청각장애를 장애가 아닌 하나의 정체성이자 삶의 양식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물려주고 싶은 유산으로 생각했지요. 그들은 아이를 갖기 위해 5대째 청각 장애를 가진 정자 기증자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 고뱅이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게 되지요.
이 기사가 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리자 이 커플은 커다란 비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식에게 고의로 장애를 유발했다는 것이었지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이 커플은 이렇게 항변합니다. "듣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다. 우리 행동은 이성애자 커플이 아이를 가질 때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말한 '이성애자 커플이 아이를 가질 때 하는 행동'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일반인 역시 2세를 고려해 배우자를 고르며, 이처럼 배우자의 조건을 따지는 것과 자신들이 청각장애를 가진 정자 기증자를 찾았던 행위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무더운 날씨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덧 6월의 마지막 날인데요.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이 당깁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으면 우리가 당연히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문'인데요. 샷, 시럽, 사이즈, 따뜻하게 혹은 차갑게 등을 주문하게 됩니다. 만약 핸드드립 커피라면 더 많은 것을 주문할 수 있겠지요. 원두의 종류를 선택하고, 카페인의 농도, 신맛, 진한 아로마, 바디감, 묵직함 등 원하는 취향을 선택할 수도 있고요 혹은 특정 드립퍼를 요청할 수도 있겠지요. 이 같은 주문은 소비자로서 당연한 권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능력도 주문이 가능할까요?
여기 불임부부 한쌍이 난자 기증자를 찾고 있습니다. 키는 175cm 이상, 탄탄한 몸매를 갖춰야 하고, 가족에게는 병력이 없어야 하며, SAT 점수는 1400점 이상이어야 하는군요. 난자 기증자에게는 5만 달러를 지불할 용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난자 기증자의 조건을 주문하는 것은 커피를 주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요즘 돈이면 사람도 살 수 있는 시대이니까 별 문제없어 보입니다.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광고는 하버드 대학 및 아이비리그 교내신문 광고에 실렸던 내용이니까요.
이 불임부부는 앞서 소개드린 레즈비언 커플과 달리 비난에 직면하지 않았습니다. 청각장애를 단순히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본다면 5대째 청각장애를 가진 정자 기증자를 찾는 것과 키 175 이상에 높은 SAT 점수, 탄탄한 몸매, 특별한 병력이 없는 난자 기증자를 찾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조건을 물려주려는 부모의 마음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아서일까요? 하지만 청각장애자 커플의 바람이 타인의 동의를 얻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듣지 못하는 것' 혹은 '듣지 못하는 조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을 아이에게 물려주고픈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면 이 커플에게만 쏟아지는 비난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경우 모두 태어날 아이의 어떤 특정한 조건을 '주문'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주문하는 부모의 행동, 과연 문제가 없을까요? 그리고 어떤 특정한 조건이 '좋은 것'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