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합니다. 급격함은 사람과는 맞지 않습니다. 완벽 추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완벽은 자아실현 욕구와 맞닿아 있을지 모릅니다. 완벽한 예술품. 완벽한 건축물. 완벽한 관계. 완벽한 사랑. 하지만 완벽함은 목표일 수는 있어도 목적일 순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은 완벽할 수 있지만 그것을 만든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뿐. 완전한 사람은 자신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기준을 충족시키기도,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완벽함을 포장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완벽해 '보이려면' 그들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함은 물론, 그 순간만큼은 단점을 꼭꼭 숨겨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속이는 것과 자신을 속이는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연기자가 되려면 그 인물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완벽을 연기하다 보면 자신이 정말 완벽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상 속에 존재하는 모습이 실제의 내 모습이라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완벽을 비추던 거울은 어느 순간 '쩍' 하고 금이 가고 맙니다. 벌어진 틈으로 진짜 모습이 비칩니다. 인정할 수 없는 장면에 놀라고 또 화가 치밉니다. 너무 오래 숨겨두었던 탓에 이제는 나의 일부가 아니라고 믿었던 오래된 단점과 지워진 줄 알았던 수치스러운 기억, 간혹 치욕적으로 느껴졌던 부끄러운 순간까지 그 모든 것들이 떠오르며 마음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흩어지지 않는 잔상이 머리를 맴돌고 꿈속까지 쫓아와 나를 비웃는 것 같습니다.
완벽은 실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기준에 충족된 상태가 있을 뿐입니다. 기준은 정하기 나름이며 늘 변화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변하고 시대에 따라 사회의 모습, 환경, 사고방식, 가치관 등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완벽은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멈춰 설 것을 요구합니다. 딱딱하고 완성된 무언가가 될 것을 강요합니다. 완벽은 더 이상 변하지 않을 때만 완전무결함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항상성을 가진 동물이자 적응의 동물입니다. 항상성은 인간의 욕심에 제동을 걸어줍니다. 원래의 네 모습을 유지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평균치를 유지하는 가운데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적응하고 생존해갑니다. 이처럼 차분한 변화는 한 사람의 짧은 일생만으로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전자라는 수많은 생체 기호를 통해 자신의 변화를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자식은 그렇게 부모를 닮지만 또 다른 세상과 소통하며 새로움의 씨앗을 창조해갑니다. 진화는 늘 그런 식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져 왔습니다.
점진적인 변화는 현대에 이르러 좀처럼 인정받기 어려워졌습니다. 십 년이면 강상이 변한다는 말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앞만 보고 달립니다. 이제는 왠지 점진적이라는 단어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이디어나 기술의 측면에서는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