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로 구슬땀이 흘렀다. 삽질하던 그가 기지개를 켜며 내게 물었다.
"참 열심히도 사는구먼. 뭘 위해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일하슈?"
열 살은 많아 보이는 그의 물음에 나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특별히 할 말이 없었던 까닭이다. 왜 이렇게 낑낑대며 사냐고?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을까. 삶에 투덜대지 않기로 한 약속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다. 얕은 한숨이 미어져 나왔다.
돌아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것은 미련 때문이다. 잊히지 않는 사람처럼 어떤 기억은 용케도 남아 오늘을 괴롭힌다. 과거란 어쩌면 오늘의 뿌리일지도 모른다. 썩은 뿌리라는 것이 문제지만. 제 기능을 하는 뿌리라면 오늘을 살아갈 양분을 제공해야 하는데 내 과거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고장 난 과거가 나를 놓아주지 않아 새로운 들판을 찾아 나서지 못한다.
그래. 내가 오늘을 이토록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이유도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의미했던 과거에 대한 일종의 속죄랄까. 속죄는 공소시효가 없고 형량도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그날을 기억하는 한 무한한 속죄의 사슬은 삶의 24시간을 압박한다. 때로 자책이 가슴을 짓누를 때면 억눌린 호흡에 컥컥거리게 된다. 이상하게도 막힌 건 숨인데 눈물이 먹통이다. 개운하게 울어 본 것은 언제일까? 가끔 아이처럼 울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산다지만 절대 해선 안 되는 실수도 있다. 사람이라면. 그래, 사람이라면. 내가 사람이었다면 어찌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한 가족의 일생을 밀어버렸던 그날 이후로 나는 운전대를 잡지 못한다. 한낱 졸음이라는 실수가 평범한 이들의 삶을 앗아갈 수 있다는 걸 그때까지는 몰랐다. 20살부터 운전대를 잡았던 경력 20년의 베테랑 운전수였던 나의 첫 번째 사고는 그토록 참담했다. 덤프트럭을 몰던 나는 여느 때처럼 시골길을 달려 공사장을 향했고 뜨거운 대낮의 햇빛은 지루한 운전석으로부터 잠깐의 해방을 선사해주었다.
부딪치는 느낌조차 없었다는 것이 나를 더 끔찍하게 만든다. 흉물스러우리만치 거대하고 높은 덤프트럭은 성실하게 신호를 기다리던 승용차 한 대를 덮쳤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탓에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일가족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정수리부터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에 번뜩 눈을 뜬 나는 나도 모르게 차를 세우고 트럭에서 내렸다. 참혹하리만치 납작하게 눌린 철판 뭉치를 보며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너무 큰 일을 당하면 일단 부정하고 보는 법이다. 오히려 그 이후의 급박하고 혼란스러운 시간만이 도돌이표처럼 후회를 맴돌았다.
분명 나는 사고의 순간 깨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묘하게도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선하다. 졸고 있는 내가 승용차를 끔찍하게 덮치선 장면이 CCTV에 저장된 것처럼 눈을 감을 때마다 자동 재생된다. 피고인석에 섰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릴 자격조차 없었다. 그날은 승용차에 타고 있던 일가족의 하나뿐인 노모의 칠순잔치 날이었다.
성인이 된 후 운전밖에 해보지 못했던 나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교도소에서 나온 나는 곧장 노모를 찾아갔다. 그녀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안간힘을 쓰며 사는 건 그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산 사람은 죽은 자의 몫까지 살아내어야 한다. 엎드려 대성통곡하던 나를 보며 노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모에게 하루치 일당을 가져다 드렸다. 언제부턴가 굽은 허리로 작은 밥상을 내어준 노모는 방으로 들어가 따로 밥을 먹는다. 아무래도 내 얼굴을 보면서는 밥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일 테니.
일가족의 기일이면 노모는 홀로 조용히 제사상을 차린다. 늘 바깥에서 홀로 서있던 나를 노모가 부른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였다. 그 노모는 허공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뇌까리듯 말했다.
"그날 내가 부르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까?"
"..."
"생일날 아이들의 제사상을 차리는 기분이 어떤지 자네는 아나?"
"... 죄송합니다..."
한 번 입이 트인 노모는 그날 오래도록 울며 나를 다그쳤다.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모두 내뱉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노모는 일이 끝나고 돌아온 나를 방으로 불렀다. 그간의 밥상과 다른 진수성찬이었다.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쳤지만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그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모와 함께 식사를 한 날이었다. 밥상을 치운 후 노모는 항아리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내가 가져다 드렸던 봉투들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노모는 말했다.
"이제 죽은 사람 그만 챙기고 산 사람은 가서 살게. 대신 우리 아들 며느리 몫까지 열심히 살아주게."
그날이 노모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
한 순간의 졸음. 그 순간의 회한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낑낑대며 오늘을 사는 안간힘을 그날의 눈꺼풀에 썼다면 과거가 달라졌을까. 나라고 억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악독한 사람들도 잘만 사는 세상인데. 나는 그저 하루 밥벌이를 위해 무던히 트럭을 몰던 사람일 뿐인데. 하지만 아무런 죄 없이 그저 노모의 칠순잔치를 찾아가던 일가족이 느낄 억울함에 비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일에 자식의 제사상을 차려야 하는 노모의 슬픔에 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아무 투덜거림도 내뱉을 수 없다. 뭐하러 그렇게 안간힘을 쓰냐고? 글쎄. 내가 그걸 알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