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달리는 이유

by 작가 전우형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달려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지만 나는 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달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긴 그림자가 드리울 무렵까지 달리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가쁜 호흡과 함께 도무지 삼켜지지 않던 그리움도 삼켜지곤 했습니다. 운동장 바닥에 주저앉아 먼발치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모든 잡다한 생각과 감정도 어느덧 캄캄해진 언덕 뒤로 저물어 갔습니다.


그리움은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아서 한시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벽 한쪽면에 걸린 오래된 액자처럼 늘 눈에 띄고 거슬립니다. 너무 오래 그 자리를 지킨 탓에 치울 수도 없습니다. 변색된 벽면의 흔적이 오히려 그리움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날카로웠던 그리움도 시간에 풍화되고 무뎌집니다. 인연은 그리움을 약 올리듯 찾아옵니다. 보고 싶어 아플 때는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가도 한바탕 열병을 치르고 나면 뒤늦게 문을 두드립니다. 겨우 삼킨 감정을 다시 꺼내기 어렵습니다. 홀로 그리워하던 시간이 각인한 상처가 다시 헤집어질까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그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말라는 말이 귀에 거슬립니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별 후에는 반드시 만남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이별은 사랑을 저버린 이에게나 찾아오는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입니다. 나는 그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지금의 그리움조차 누명일 뿐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반드시 오늘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약속을 어기는 이가 아닙니다. 나는 왜 이 사람들이 몰려와 울음을 터트리는지 알지 못합니다. 잠시 여행을 떠난 일이 그토록 슬퍼할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는 또 달립니다. 문득 어깨에 무게감이 짙어집니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바닥을 밀어내지 못합니다. 다급한 손길이 나를 붙듭니다.




1년 전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잃었습니다. 아이가 납치된 차량을 뒤쫓아 달리던 그녀는 골목에서 튀어나오던 트럭에 치여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발작이 시작된 건 아이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직후였습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의식을 잃어가던 와중에도 동료에게 차량의 등록번호를 알려주었던 그녀였지만 그런 사실 역시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려면 달려야 한다는 게 그녀의 주장입니다. 때때로 병상을 뛰쳐나가 숨이 찰 때까지 달리는 건 그런 믿음 때문입니다.


그녀는 누구를 기다리는지에 대해 말을 아낍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날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료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최근 일어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느라 열흘 째 잠복수사 중이었다고 합니다. 엄마를 찾는 2살 배기 아이의 성화를 못 이긴 남편이 아이와 함께 잠복 장소 근처로 나와 잠시 얼굴만 보고 가겠다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추적하던 범인이 움직임을 보인 터라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범인은 잠복을 이미 눈치채고 경찰을 유인하기 위해 연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와 동료가 미끼를 뒤쫓아간 틈을 타 진범이 안거를 빠져나오던 과정에서 아이를 달래고 있던 남편과 마주쳤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남편이 목을 부여잡은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차량 한 대가 골목 모퉁이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쓰러진 남편을 도외시한 채 미친 듯이 차량의 뒤를 쫓았습니다. 쓰러진 남편의 상태를 살핀 동료경관이 응급상황을 알리는 무전을 타전한 후 그녀를 뒤쫓아 갔을 때는 차량은 이미 사라진 후였고 벽면을 들이받은 트럭과 쓰러져 의식을 잃어가던 그녀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의식이 희미해진 와중에도 추적하던 차량의 번호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범인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수 있었고, 아이를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이의 사체가 발견된 곳은 도주 경로 인근의 강가였다고 합니다.


긍지 높은 형사였던 그녀는 아이에게 늘 엄마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사에 돌입하면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릴 만큼 일중독이었던 그녀였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달라졌다고 합니다. 적어도 하루 한 번은 영상통화로 아이를 달래는 모습에 그녀를 알던 동료들이 놀랄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범인의 움직임이 잦았던 탓에 잠복수사에 들어간 며칠 동안은 그녀도 여유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잠복조 교대가 다가왔지만 범인 검거를 목전에 두었다고 판단했던 그녀는 며칠 더 자신이 맡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고집을 피운 탓에 아이와 남편이 살해당했다고 자책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찰 신분이었다는 건 기억하지만 잠복수사를 진행하던 시간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더군요. 짐작 건데 그녀는 그날 자신을 기다리던 아이로 돌아가버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다리는 쪽이 아니라 기다림을 저버린 쪽이 자신이었다는 아이디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그녀의 머리는 기억을 억누르지만 그녀의 몸은 당시를 기억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녀가 발작적으로 달려가는 것은 납치당하던 아이를 쫓아가던 순간에 모든 세포의 시간이 못 박혀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달리면 아이를 구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비틀어진 모든 시간을 바로잡을 유일한 방법은 더 빨리 달리는 것뿐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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