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황금조개 - 못다한 이야기

민철에게 보내는 해모수의 편지

by 작가 전우형

2021년 7월 31일. 해모수의 편지.


아이야. 어지러울 때는 먼 곳을 봐야 한단다. 먼바다는 언제나 평온하단다. 아무리 큰 파도가 쳐도 수평선은 고요하기만 하지. 네 엄마는 바로 그 수평선과 같은 사람이었단다. 그녀는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지. 그녀를 따라 시선을 그 고요함에 두면 어지럼증도 한결 괜찮아지곤 했단다.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건 예측이 빗나가는 순간이란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면 나를 제외한 것들은 모두 뒤로 물러설 것 같지만 삶은 종종 예측을 벗어난단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향이 있단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서서히,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단다. 변화하는 세상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란다. 인간은 세상을 벗어나 홀로 살아갈 수 없단다. 인간이 보잘것없기 때문은 아니란다. 인간의 삶이 서로를 통해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일 뿐.


우리가 자유로운 것처럼 세상 역시 자유롭단다. 고정된 것은 없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모두 움직이고 있지. 그들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가 너무나 빨리 달리고 있기 때문일 거야. 속도가 빠르면 세상을 충분히 관찰할 수 없단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많은 것이 뒤섞여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 세상은 우리를 그저 어지럽게 만들 뿐이란다.


빠르게 달리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눈앞으로 곤두박질친단다. 빠른 사람은 오로지 앞을 쳐다볼 수밖에 없어. 그건 그 사람이 다른 곳을 볼 줄 몰라서가 아니야. 그 사람의 삶의 속도가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이지.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옆을 살필 겨를이 없다고 한탄한단다. 정작 자신이 너무 빨리 달리고 있다는 것은 모른 채 말이지.


인간은 적응에 능해서 빠른 속도에도 곧 적응해버리고 만단다. 너무나 오랫동안 빨리 달려온 탓에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단다. 속도감에 취할수록 먼 곳은 볼 수 없단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먼 곳은 결코 빨리 도착할 수 없어. 소중한 보물은 가까운 곳에 있지 않단다.


먼 곳을 바라보려면 속도를 늦추어야 한단다. 세상은 조급하지 않아. 조급한 건 인간뿐이지. 욕심은 언제나 우리를 조급하게 만든단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가지려고 하는 마음이 우리를 무리하게 한단다. 눈에 보이는 결과에 급급하다 보면 기다림과 여유를 잃어버린단다. 세상을 속단하게 되고 쉽고 간단한 예측을 선호하게 된단다. 그런 예측은 종종 우리를 어지럽게 한단다. 아이야. 네가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면 하는구나.


아이야. 먼 곳에 도착하려면 당장 한 걸음에 집중해야 한단다. 너무 먼 곳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현실로 다가와서 지치고 절망하기 쉽단다. 먼 길을 떠나려면 자신만의 이정표가 필요하단다. 무리하지 않고 내딛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한걸음을 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해. 자신을 관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단다. 한 걸음씩 쌓아나가는 것은 중요하단다. 한 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 하는 것은 좋지 않단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위험한 것은 세상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란다.


기다림은 지루해 보일지 몰라도 열매는 달콤하단다. 열매의 달콤함은 그 안에 충분한 시간이 담겼기 때문이란다. 요즘을 살다 보면 돈만 있으면 언제든 달콤함을 얻을 수 있어 보이지만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있단다. 그 달콤함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누군가의 노력과 시간이란다. 돈은 그 자체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선물해주지 못해. 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구할 수 있는 건, 그걸 만든 자연과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단다. '빚'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부담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구나. 물론 이 '빚'은 갚아야 할 대상과 비용, 기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향유함에 있어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건 매우 중요하단다. 그런 깨달음은 삶 그 자체에 감사할 수 있게 해 주거든. 삶 속에서 먹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것에는 결코 공짜가 없단다. 심지어 우리가 그것에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말이야.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도 언제나 그 대가는 충분할 수 없단다.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낼 순 없단다. 어쩌면 요즘 세상에서 이런 생각은 의미 없고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돈이 있으면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시설을 세울 수 있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오만이란다. 우리 모두가 어떤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에 일이 그런 식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뿐이지. 돈은 그저 수단일 뿐이란다. 우리 모두가 돈을 목적으로 여기고 그것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이 그려지고 있을 뿐이야. 돈에 집착하는 한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단다.


어지럼증은 예측에서 빗나가는 순간에 가장 심해진단다. 그래서 돈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고 달려가는 한 우리는 어지럼증에서 벗어날 수 없어. 아이야. 너만큼은 돈이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차렸으면 한단다. 사람과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려무나. 세상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단다. 그것들은 돈을 향해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지 않을 때만 보고 듣고 느끼고, 가질 수 있단다.


명심하거라. 어지러울 때는 먼 곳을 바라보아야 한단다. 너무 빨리 달리지 말고 돈과 충분한 거리를 두거라. 못난 아비가 너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가 너무 보잘것없구나. 비록 네가 나로 인해 슬퍼했을지라도 그건 내가 원했던 바는 아니었단다. 네게 많은 짐만 맡기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사랑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라진 황금 조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