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물었다.
"커피는 어떻게 마시는 거야?"
"첫 번째 이파리 끝까지 물을 채우면 돼."
"그게 전부야?"
"응. 이후는 마시는 사람에게 달렸지."
그녀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니,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좀 더 성의 있는 설명은 없어?"
"세상은 원래 호의적이지 않아. 너도 잘 알잖아?"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곤 말했다.
"너는 다를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본거야?"
왠지 웃음이 나왔다. 약간의 도발에도 발끈하는 것이 그녀의 매력이었다. 나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커피를 내려주기로 했다. 때로는 한 번의 행동이 천 가지 말을 대신하니까.
짙은 갈색빛을 띤 원두에서 진하고도 고소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무게를 확인한 나는 그라인더의 스위치를 눌렀다. 약간은 거칠고 투박한 입자들 사이로 아까보다 더 진한 향이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잘 갈린 커피가루를 여과지에 담았다. 이제는 시간싸움이었다. 향이 진하다는 것은 그만큼 원두의 성분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93도.' 알맞은 온도였다. 능숙한 손길로 드립포트를 기울이며 가운데에서부터 나선을 그려나갔다. 얌전하던 원두가루가 머핀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새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갈색 머핀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미를 좋아했지.' 나는 평소보다 뜸 들이는 시간을 줄였다. 숨 몇 번 내쉴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물줄기가 드립포트 끝의 부드러운 곡선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며 오른손을 조금씩 더 기울였다. 살짝 부풀어있던 머핀이 점차 가라앉으며 검고 투명한 커피 방울이 서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커피를 내리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었다. 잠시 시간이 멈추는 듯한 그 순간이 가장 좋았다. 침묵을 싫어하던 그녀도 이때만큼은 함께 숨을 죽인 채 곧은 물줄기로 시선을 모았다. '똑똑'하는 소리가 적막을 채우는 사이, 어느새 서보는 투명한 검은 빛깔의 커피로 채워졌다. 길고도 짧은 마법의 순간을 끝낸 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희열에 찬 한마디였다.
"됐다...!"
나는 서보를 살짝 좌우로 기울이며 흔들었다. 에스프레소 잔에 커피를 담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코끝으로 숨을 들이켜고는 커피 잔을 붉은 입술로 살포시 기울였다. TV에서 본 장면을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입을 오물거리던 그녀는 이내 미간을 찡긋거리며 한쪽 눈을 감았다. 원하던 맛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곤 말을 건넸다.
"혀 아래로 마셔봐."
그녀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한차례 쳐다보고는 다시 커피산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녀의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아까랑 맛이 달라. 엄청 쓰기만 했었는데..."
"이제 산미가 조금씩 느껴지지?"
그녀는 여전히 토끼 같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서 잠시 눈을 돌린 뒤 서보에 온수를 조금 채웠다. 투명했던 검은빛이 진한 와인색으로 변했다. 다시 커피를 조금 따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다채로운 표정을 보는 건 내게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어라? 이건 또 맛이 다르네?"
"부드럽지? 이제 아까 걸 다시 마셔봐. 혀밑으로 넣는 걸 잊지 말고."
"... 뭔가 달라졌어. 아까랑은..."
이제는 말을 아낄 차례였다. 하나의 감각을 끄면 다른 감각이 되살아난다. 이제 그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두 잔에 담긴 커피를 번갈아가며 마셨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이제 알겠지? 좋은 건 단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직접 느껴보는 수밖에 없지."
그녀는 나를 쏘아보며 뭔가 말을 꺼내려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바싹 다가선 탓에 숨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이마. 코 끝. 그리고 입술. 그녀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입술이 가볍게 맞닿은 채로 그녀에게 말했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야."
이번에는 그녀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는 귀 끝을 살짝 물고는 속삭였다.
"아니. 틀렸어.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 하지만 이번만큼은 네 말이 맞는 걸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