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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

어떤 사랑, 어떤 배신

by 작가 전우형

유혹은 그리워하던 연인이 건넨 찻잔처럼 치명적이다. 그 안에 독이 든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에 빠지게 될까? 치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뺨을 후려치게 될까? 아니면 분노마저 삭아버린 눈동자로 거칠게 낚아채 들이켜버리게 될까? 그도 아니면 그녀의 손을 이끌고 문 밖으로 뛰쳐나가게 될까?


배신에 대한 반응은 사랑의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흔한 반응은 '분노'다. 이어질 행동은 상대방에게 같은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공포와 죽음. 이 두 가지는 복수의 가장 자연스러운 조건을 완성시켜준다. 경악으로 물든 상대방의 눈동자는 그가 충분하리만치 배신의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여겨질 것이다.


두 번째는 자괴감이다. 진심이라고 믿어온 사랑의 감정과 관계를 규정하던 밀어들이 새빨간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가져다줄 충격은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 무너트리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자괴감은 다시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사람에 대한 본질적인 신뢰를 훼손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왜 그랬어? 하고 이유를 묻겠지만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도 변명처럼 들린다. 상대방에 대한 모든 기억은 소거의 절차를 거친다. 가끔 버리지 못한 사진 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더라도 무심히 넘긴다. 때때로 추억 곳곳에 새겨진 사랑의 파편이 내장을 후벼 팔 때도 있다. 마른 눈물자국이 남지만 애써 그 눈물이 흐른 이유를 추궁하려 하지 않는다. 추궁 역시 어떠한 반응이므로.


세 번째는 절망이다. 절망은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절망은 분노도 자책도 미움도 증오도 슬픔도 그 어떤 감정도 소거시키는 능력이 있다. 인간의 소유물 중 가장 흔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생명이다. 생존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목적이지만, 사랑하는 이의 배신은 생에 대한 의지를 뿌리째 뽑을 만큼 강력하다. 절망에 빠질 때 개인의 시계는 멈춘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여전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내가 어떠한 저항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어쩌면 나의 바보 같은 선택이 없었을 문제를 오히려 만들어낸다는 불안이다. 무능의 씨앗이 마음 깊은 곳에 심어진다.


마지막 단계는 사랑이다. 상대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나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사랑은 그런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을 아우를 수 있는 적절한 단어다. 어쩌면 사랑은 가장 수동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방식의 복수다. 상대방에게 인간적인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사랑. 물론 이것은 지극히 소설적인 사랑이며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사랑이다.


사랑의 깊이는 예컨대 늪의 중심에 얼마나 가까이 들어왔는지를 이른다. 뒤늦게 돌아나가려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드는 발걸음 속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사랑이 '속박'이라는 아이디어는 정답도 오답도 아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향해 목숨을 내던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에 기대어 목숨을 구한다. 낙하산이 몸을 구속해 막무가내로 땅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처럼 사랑이 가진 중력은 우리를 인간성의 중심으로부터 너무 먼 곳까지 벗어나지 않도록 돕는다.


사랑은 배신 앞에서 지극한 멜로로 돌변하기도 한다. 의심과 망설임은 그녀를 그리워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배신이므로.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강력한 촉매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재거나 따지지 않게 된다. 사랑은 인간의 강인함을 이끌어내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인간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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