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내부에는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이 손바닥만 한 블루투스 스피커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마을 부녀회 소속인듯한 네(4) 아주머니는 벌써 두 시간째 테이블을 차지하고 수다 중이었다. 목소리는 다소 큰 편으로 간혹 노랫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공백이라고는 없는 그녀들의 수다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나름 팔아주겠다고 온 손님들이었지만 마을 분들에게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네 사람 합쳐서 겨우 6천 원을 받았을 뿐이었다. 심지어 한 잔은 넉넉한 인심으로 리필까지 해주었으니 사실상 원두값도 나오지 않는 장사였다. 아주머니들은 그나마 자기들이라도 팔아줘서 카페가 망하지 않고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속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고 어느 카페 매뉴얼에도 없을 뜻밖의 요구도 곧잘 해왔다.
몇 번인가 그녀들을 상대하다 보니 매일 타고 오는 차량이 흰색 코란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용하던 카페 앞으로 익숙한 실루엣의 차량이 등장하면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고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주머니들은 거침없이 내게 반가움을 표현해왔다. 나의 뜨뜻미지근한 응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하루 동안 겪었던 모든 일들을 허락도 없이 내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내가 타인의 일상을 너무 자세히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일절 고민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매우 신비롭게도 나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그녀들의 이야기에서 모두 같은 장면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곤 했다. 관심사에서도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일상이 펼쳐지는 배경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 대답할 말도 마뜩잖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제한된 사람이었다. 이미 나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는데도 그녀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신나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또 다른 아주머니(아마도 마을 부녀회 소속의 아주머니들께 소개받아 온 듯한)들은 종종 먹을 것들을 꾸러미 꾸러미 싸들고 왔다. 그러고는 요즘 카페에서 음식 못 먹게 돼있다는 만류에 가까운 안내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며 걱정 말라며 막무가내로 그것들을 풀어놓곤 했다. 쑥떡이나 오징어, 파전, 도토리 묵 등 종류도 다양했지만 내 입맛과는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게다가 아주머니들이 주로 오는 시각은 오후 1시 반에서 2시 사이였는데 그때는 카페 점심시간 직후였다. 대충이라도 배를 채운 시각이라 어떤 산해진미도 입맛이 당길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내가 먹을 때까지 권하다가 입에 무는 것을 보자마자 맛이 어떤지를 물어왔다. 그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솔직한 대답을 내뱉을 수 없었다. 맛있다고 몇 번 맞장구를 쳐주었는데 그것이 실수였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과도한 친절이 빚어낸 에너지 소모는 카페에서의 하루를 버티는데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아주머니들을 대충이라도 상대하고 나면 나는 거의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되곤 했다. 간혹 감사하게도 아주머니들이 함께 온 일행들로만 대화 상대를 구성하는 날에도 그 거대한 존재감이 카페 내부를 빽빽하게 채운 터라 그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래나 저래나 그 아주머니들은 서비스업이 왜 감정 소모가 큰 직업인지 확실히 알게 해 준 소중한 은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