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흙탕물처럼 빗물에 쓸릴 때면 지난날의 웃지 못할 기억이 우유 거품처럼 몽글다. '공백'이라는 두 글자가 밀어둔 불안을 끈질기게 눈앞으로 가져올 때면 공연히 아무나 붙들고 말을 걸고 싶다. 고립을 밀어내려 애쓰듯 혼자라는 아이디어로부터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혼자가 반갑다면 그건 외로움이 내 것이 아니라는 강한 확신의 추출물이다. 귀찮게 하는 누군가가 스스로를 애처롭지 않게 하기 마련이고.
흔히 노래하는 '사랑'에서 욕심을 제외하면 무엇이 남을까. 사랑하고픈 욕심과 사랑받고픈 욕심. 내가 더 사랑해야 하고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픈 모순된 욕심이 제멋대로 뒤섞인 것이 어린 사랑의 진면목이 아니었던가. 시분초 단위로 누가 더 많이 기다렸는지를 따지고 밥값을 계산한 것이나 선물 가격의 합을 따진 것으로 사랑을 재단하느라 정작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에게 진지한 시선으로 집중할 수 없을 때면, 문득문득 조급함에 소스라치며 시계나 액세서리 따위를 들여다보지만, 정작 그런 것들로 사랑이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이별 후 부는 바람에 마른 눈물자국 비비는 순간에서야 슬며시 깨닫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랑에 빠져보지 못하면 이별을 경험할 수 없고, 예정된 이별은 인생에 다시없을 것으로 무지한 가정에 빠져든 채 다시 사랑이 찾아올까 홀로 애틋하지만 사랑은 어쩌면 딱 거기까지. 고통은 사라지기보다 무언가로 덮어져야 비로소 안 아프기에, 일정량의 딱지가 앉거나 시간 흘러 봄꽃 잎이든 단풍이든 뚝뚝 떨어질 때가 되어야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잊히기 마련. 그러니 고통을 잊어보려면 무작정 기다리거나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하나, 쓸데없는 지난날의 학습 탓에 자꾸만 주저하게 되고, 몇 명 겪어보지도 못한 주제에 사람과 사랑에 대한 기준과 공식을 제멋대로 정립해버리니, 늘어난 의심과 높아진 기준을 들이대며 상대방 간 보기 바쁘고 이제는 사랑다운 사랑에서 멀어질 밖에.
이별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허기진 마음을 달래 보지만 고급스러운 스테이크를 쓱쓱 썰어보아도 그때뿐이고, 다시금 찾아온 공백에 어찌할 줄 모르다가, 나는 언제쯤 진정한 사랑이 찾아올까 고민하며 그간의 불운을 원망하고, 오지 않을 잠에 간절해보지만 어찌 그런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가 나뿐일까 은근한 기대와 함께 남도 모르고 자신도 모를 저주를 꿈에 품는다.
옆이 허전한 것은 누구의 곁으로도 다가가지 않아서인데 대체 누구를 탓할까마는 은근히 옆에 와서 앉아주는 친절도 불편으로 일관하거나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는 것도 모자라 도망 중인 이가 그 외로움의 답을 찾은들 어떤 머리에 총 맞은 양반이 그에게 손을 내밀까. 미련만 남을 사랑 따위 집어치울 용기만 있다면 한겨울 산등성이에서도 부는 봄바람에 한기를 덜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