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박조건형, 김비 지음
한 달의 시작이 한 주의 시작과 겹쳤다.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선물 받은 책을 펼쳐 들었다. 작가님 사인받은 책을 너무 좋다며 권해주셔서 받아 들긴 했는데, 맨 앞장과 187페이지에 두 번이나 주신 분 이름과 작가님 싸인이 남아 있어서 평소처럼 거칠게 읽지 않고 곱게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고 읽다가 눈물도 많이 흘렸다. 눈물에 이유는 없다. 설사 그 속에 많은 이유가 숨어있더라도 나는 그저 소매로 쓱 눈물을 훔치듯 그들을 걷어내어버리고 만다. 곱씹다 보면 바로 옆자리에 불현듯 소환되는 과거가 이제는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하기에. 새로운 것들로 나의 과거와 현재를 채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p.41
"가족이 없다"고 말하는 건 가족을 지우는 게 아니라, 나를 지우는 일인 것 같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상처를 주는 관계라면, 낡은 서류 위 같은 줄을 깔고 앉은 글자 몇 개에 불과하다.
p.54
나는 그저 어딘가에 살고 있을 어떤 '삶'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적을 뿐. 그들을 책 한 권에 담아 끌어안고 싶을 뿐. 나에게 문학은 이 사람이고, 이 사람을 만난 일이다.
p.68
사랑을 하다 보면, 그때 그 마음들이 시간에 뭉개져 보일 때가 있다. 김이 서린 창문처럼 아무리 팔꿈치로 문질러도 더 흐릿해지는 것만 같다. 사진 한 장처럼 붙들고 있긴 하지만, 얄팍하게 만져지는 기억들이 이따금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 멀리 와버린 지금, 다툼과 섭섭한 마음이 쌓이는 건 그 때문인지도. 방법은 없다. 매일 그 사람을 새로이 사랑하는 수밖에.
p.81
순간 많은 감정이 거품처럼 솟아올랐다가 사라진다. 8년이면 긴 시간인데,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 시간에 존재했을 '사랑'을 제대로 붙잡아 두었는지. 사랑이 돈이 되고, 집이 되고, 관계가 되고, 양육이 되어가는 시대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만 사랑했던 것 같다.
p.99
겨우 몇백 원, 몇천 원으로 유통되니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노동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격표 너머에 숨어 있을 누군가의 땀이다. 너무 쉽게 돈으로 치환되더라도 여기 이 현실을 떠받치고 있을 무수히 많은 노동의 시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p.135
맞다. 먹고사는 일이란 그런 것.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위해 떡볶이를 끓이지 않는다고, 아주머니 일상이 한가롭고 게으른 것일 리 없다. 차갑게 불판이 식어 있으면, '어딘가에서 아주머니가 또 다른 삶을 끓이고 계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더 묻지 않았다.
p.173
남편의 노동에, 아내의 노동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을까? 혹시 통장에 찍히는 숫자 몇 개로만 그 의미를 파악하며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p.186, 203
'예술'이라는 이름 속에 기록되지 못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무감하게 지워진 시간이, 삶이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다시 태어나며 허투루 떠나보냈던 시간은 살아남고, 그의 시선 또한 영원히 머문다.
p.214
'목표'라는 것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로 쉽게 쓰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매달리는 모두의 마음이나 삶까지 납작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p.226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부러울 때가 있는데, 바로 '자화상'으로 자신을 남겨놓을 때다. 소설을 쓰는 나는 곳곳에 나의 모습을 나누고 갈아 숨겨 놓기 바쁜데.
p.248
나는 요즘 내 몸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나 혼자서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이 견뎌 온 시간이 요즘 들어 고지서처럼 날아든다.
p.254
어쩌면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삶을 지배한 우울에 관해 나에게 말을 꺼냈을 텐데, 나는 그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누구나 우울할 때가 있잖아요? 기운 내요. 밝은 생각 좀 하고요" 따위의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을 털어놓고 돌아섰는지도 모른다.
p.265
신랑은 자주 휘청거리면서도 자신과의 다짐이나 약속은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너무도 많은 일을 꿋꿋하게 해내고 있다. 거기에 온 힘을 다한, 가장 고통스러운 혼자만의 싸움까지 더해서.
p.276
그토록 떠들고 즐거워하며 보내던 일상의 얇은 문 너머에서, 누군가는 생과 사를 오가며 온 힘을 다하고 있구나. 새삼 '삶'의 의미가 묵직하게 우리 두 사람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p.283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자고 약속했고, 출렁거리던 시간을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삶의 의미를 잘 깨우치고 있는 듯했지만, 그는 그때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다. '기록'이란 시간을 거역하는 일. 그것만으로 우리는 비로소 시간이란 삶과 나란히 서서 당당하게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다.
* 좋은 책 권해주신 분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