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안 다스리기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

by 작가 전우형

안녕하세요.^^ 전우형 작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불안' 때문에 힘들어하십니다. 불안해하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때로는 자책까지 하시는데요. 불안을 다스리려면 우선 불안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불안’이란 ‘편안하지 않은 상태’를 뜻합니다.


불안은 인간의 생존에 큰 기여를 해온 일등공신입니다. 불안해지면 주위를 다시 한번 살피게 되어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혹은 완료된 일의 오류를 확인하게 만들어 실수를 줄여줍니다. 집을 건축한 후 제대로 지어졌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자칫 무너질 수도 있겠죠? 불안을 다스리기 위한 첫 번째 방법. 그것은 바로 불안에 씌워진 누명을 벗겨주는 것입니다.




1. ‘불안’이라는 감정의 누명 벗겨주기

불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불안은 우리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불안이 분노, 우울 등과 더불어 부정적인 감정으로 평가받는 것은 불안의 활동이 과도해져 오히려 일상생활 또는 우리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기 때문인데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불안은 우리에게 약간의 스트레스와 불편한 느낌을 주어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 또는 과거를 확인하게 합니다. 이 작용은 우리에게 굉장히 유용한 작용입니다.


적절한 불안을 느끼지 못하고 매사에 태평하고 편안하기만 하다면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스밸브가 제대로 잠겼는지에 대한 아무런 불안이 없다면, 밸브 개폐 상태를 다시 확인하지 않을 것이고, 많은 인명피해나 재산피해가 뒤따를 것입니다. 소중한 나의 가족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겠죠. 이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자책과 슬픔, 우울, 외로움, 망연자실함, 자괴감 등 훨씬 더 크고 충격적인 감정에 빠지게 만듭니다. 불안은 이런 큰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불안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감정입니다. 이것부터 인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불안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 불안으로부터 회피하게 하고, 불안을 눌러야만 하는 것으로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불안에 다가서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안을 제대로 보고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불안을 다스리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불안을 다스리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는 몇 가지가 더 남아있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습니다. 그중에는 좋은 일도 있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은 주로 나쁜 기억들이 더 많습니다. 운전 중 옆 차량과 접촉사고가 있었던 기억, 누군가와 크게 다퉜던 기억, 세미나 도중 일어났던 방송사고, 갑작스러운 블랙아웃으로 인한 당황스러움이 그것이죠.


과거의 경험들은 끊임없이 현재와 유기적인 작용을 하면서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상상들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으로 불안이 활동하게끔 유도합니다. 그래서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 기억’들을 꺼내어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2. 불안을 증폭시키는 ‘감정 기억’ 꺼내보기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들, 그리고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사건들, 그것이 바로 ‘감정 기억’입니다. 강력한 감정을 느끼는 상황을 우리의 뇌는 ‘기억해야 할, 저장해두어야 할’ 상황으로 판단하고 대단히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평소에 우리가 경험하는 일들은 휘발성이 강하고 대부분 잊어버립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머릿속에 넣어두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다른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워지죠, 또 괴로워지죠. 이러한 단기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 전할만한 한 가지 희소식은 장기기억은 거의 무한대의 용량을 자랑한다는 것이죠. 그러니 나의 뇌가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시고, 계속해서 많은 것을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장기기억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문을 거치지 않고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 다들 보셨을 거예요. 여기서 동백이는 무려 27년 전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엄마에게서 고아원에 버려지던 날의 기억이었죠. 그날의 날씨, 엄마와 했던 대화, 엄마가 시켜줬던 메뉴까지 동백이는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엄마의 간곡한 부탁은 약간의 왜곡이 있었죠. 그것은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분노와 외로움, 충격이 엄마의 이미지를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순간의 기억들은 ‘감정 기억’이 되어 평생을 갑니다. 이 기억들은 잊어버리고 싶어도 끊임없이 떠오르며, 혹은 잊어버렸다 싶다가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현재를 헝클어놓고 맙니다. 이러한 기억들을 소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시에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버려졌던 기억은 대인불안을 유발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약간의 불안감으로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엄마에게까지 버려졌다는 기억은 자존감을 저하시키고,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한 존재로 보거나 없이 자란 아이로 생각할 것이라는 오해와 상상을 만들어냅니다. 이 상상은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더욱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들고 실제로 대인관계는 어려워집니다. 상상이 현실로 되는 순간이죠.


사람들은 처음에는 호기심 반, 호의 반으로 대하다가도 말수도 적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이 사람에게 이런 이미지를 덧붙이게 되죠. ‘역시 부모 없이 자란 아이라 그런가 너무 어둡네. 뭔가 그늘져 보여.’ 이런 생각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온갖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역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 부모에게까지 버림받은 나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와 같은 자기 판단과 편향이 더욱 강화됩니다. 이런 과정이 대인불안을 증폭시키는 커다란 요인이 되죠.


불안이 과도하게 작용함으로써 삶의 선택을 나쁜 쪽으로 기울게 만들고, 오해와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경험이 계속해서 발생할수록 불안은 더욱 ‘강화’됩니다. 이처럼 강화된 불안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힘들게 하고, 많은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 기억’을 끄집어내 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 ‘감정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감정일기’ 쓰기


‘감정 기억’은 두 가지 패턴으로 우리 삶에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언제나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입니다. 이런 기억들은 가만히 앉아 떠올려보려고만 하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그 기억들을 차분히 써 내려가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30분 정도 편한 시간을 정하셔서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자유롭게 쓰는 것입니다. 너무 막연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팁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어떤 상황이었는지 쓴다.

두 번째, 당시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쓴다.

세 번째,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해본다.

네 번째, 당시의 나를 이해해본다.

다섯 번째,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쓴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저의 기준으로 써보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분명 초록불로 바뀌는 것을 보고 횡단보도로 뛰어나갔는데 그 직후 정신을 잃었다. 다시 일어섰을 때 나는 도로 한가운데 누워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픔보다는 부끄럽고 당황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는 있었다.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어, 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덜덜 떨렸지만 비틀거리며 도로 반대편 인도로 갔고 저 멀리 오토바이 하나가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누군가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차가 와서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휠체어에 앉아보았는데 신기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어디가 아픈 건지 잘 몰랐다. 하지만 휠체어에서 어딘가로 올라가기 위해 오른손을 짚었을 때 나는 까무러칠 것 같은 고통에 그대로 허물어졌다. 오른손이 너무나 아팠다. 나중에 알았지만 손목이 으스러진 것이었다. 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나는 의사 선생님이 내 손목을 잡 아비트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엄마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다며 엄마를 위로했다. 5주 가까이 입원해 있었는데 입원생활은 너무 갑갑했고 매번 링거를 맞는 것이 너무 싫었다. 바늘을 새로 찌르는 것도 너무나 무서웠고, 며칠이 지나면 바늘 꽂은 곳이 멍이 드는 것도 싫었다. 나는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때를 썼다. 결국 엄마가 장난감 로봇을 하나 사주는 걸로 협상을 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맞았지만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다. 나를 친 오토바이는 중국집 배달원이었는데 제대로 된 보험도 없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멀리서 이야기하는 걸 언뜻 들었는데 합의해주지 않으면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아저씨 빨리 보내드리라고 말했다. 나를 아프게 한 아저씨라 밉기도 했지만 그 아저씨가 나쁜 일을 겪는 것도 싫었다. 그랬다가는 내 마음만 불편해질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두 다리와 오른손을 모두 다쳤다. 부상은 오른손이 가장 심했고 지금도 왼손보다는 오른손이 가끔 저리고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하지만 나를 더 오래 괴롭혔던 부상은 두 다리의 인대가 늘어난 것이었다. 어렸던 나는 재활치료를 받는 것이 너무나 지겹고 싫었다. 근육 부상은 뼈를 다친 것보다 오히려 잘 낳지 않았고 축구를 좋아했던 나는 그 이후로 오른쪽 무릎을 몇 번이나 더 다쳤다. 사관학교에 갔을 때까지 무릎 부상은 나를 괴롭혔고 결국 수술을 했다.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는 정말 조심을 했고 허벅지 근력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나는 항상 오른쪽 다리를 약간 구부정하게 걸어 다녔고 보행 태도로 선배들에게 지적받는 일도 많았다. 이 다리로 4년의 생도생활을 버텨낸 내가 기특하다.




보시면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틀에 박힐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위한 글쓰기로 편안하게 손이 움직이는대로 써 내려가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조금 더 깊숙이 당시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본다는 느낌으로 써보시면 좋습니다. 저는 이것을 쓰는데 대략 10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쓸 수 있는 것이죠. 당시에 내가 겪었던 상황, 내가 느꼈던 감정, 그때의 일이 나에게 미친 영향 이런 것들을 쭉 생각해보며 쓰는 것이죠. 억지로 끄집어내실 필요는 없지만 당시의 나, 그 이후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 이렇게 연관 지어서 생각해보시면 당시의 경험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를 이해해볼 만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감정 기억’이라고 한다면 어떤 촉발 사건을 맞아 잊어버렸던 것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촉발 기억'이라고 부릅니다. 저의 경우, 우울증 시기에 겪었던 기억들이 주로 그렇습니다. 일종의 한이 맺힌 것이죠.


예를 들면, 누군가가 저를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면 과거에 상사가 끊임없이 저를 무시하던 일, 양보가 습관처럼 굳어져 내 의견을 무시당하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분노가 솟아오를 때가 있습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기 싫은 마음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져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뭔가 잘못되거나 수용되지 않을까 봐 불안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제가 하는 일은 역시 ‘감정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기 형식으로 쓰면 되지만 막막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 몇 가지 팁을 드리겠습니다. 위의 틀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불현듯 치민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써본다.

두 번째, 그 감정을 나타나게 한 현재의 사건, 상황에 대해 쓴다.

세 번째,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해본다.

네 번째, 과거의 감정 기억을 떠올려본다.

다섯 번째, 당시의 나를 이해해본다.

여섯 번째,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쓴다.



4. ‘불안’을 현실적으로 평가하기

1~3번까지의 과정이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부터가 실제적인 부분입니다. ‘불안’을 현실적으로 ‘평가’해보는 것이죠. 정말로 내게 필요한 불안인가, 아니면 과도한 불안인가. 필요하지 않은 수준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가. 불안의 ‘현실성’을 판단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치러야 할 시험에 대한 불안감이 든다면, 내가 얼마나 공부했는지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모의고사를 한 번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틀린 부분을 정리하고 오답노트를 만들거나 해답을 보며 다시 한번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는 ‘막연함’은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반면에 이런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선 실체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불안을 ‘걱정’의 단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를 판단하고 ‘준비’하는 단계로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불안’은 사그라듭니다.



물론, 이 단계를 넘어서고도 계속해서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패’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 때문인데요. 이 부분은 쉽게 극복하기는 힘듭니다. ‘실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파고들고, 그 뿌리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어디에서부터 자신이 실패를 나쁜 것으로 여기게 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실패’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경험하며,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100% 얻어낼 수는 없습니다. 충분한 준비와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실패할 수도,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입니다. 실패에 대한 불안이 떨쳐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거의 경험이나 '완벽주의'에 기인한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어릴 적 경험한 트라우마가 뿌리가 될 수 있는데요. 부모님께서 실수나 실패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퍼부었던 경험이 있었거나, 아이의 실수를 바탕으로 ‘유기 불안’을 자극하는 말 또는 행동을 한 경우,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님께서 끊임없이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이것을 자기화시켜 현재의 불안으로 이어진 것일 수도 있겠죠. 아무튼 이와 같은 뿌리 깊은 불안, DNA에 새겨진 기저 불안과 같은 것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극복해야 할 것으로 쉽게 누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와 같은 불안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나의 일부로 수용해줄 때 오히려 누그러듭니다.


예를 들어, ‘실패’를 불안해하는 자신을 억누르려고만 하면 할수록 더욱 불안은 우리를 옥죄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억압되지 않는 불안으로 인해 자책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훈육할 때 아이가 쉽게 수정할 수 있는 행동은 지적해도 되지만, 몇 번 이야기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들을 계속해서 지적해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계속된 실패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시키고 부정적인 자기 판단을 만들어냅니다. ‘나는 영원히 이 불안을 감당할 수 없어!’라는 운명론적 판단을 강화시키고, 무의식적으로 여기에 집착하게 합니다. 강화된 불안과 그릇된 자기 판단은 그릇된 상상을 현실에 반영시키고, 현실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불안을 더욱 실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불안에 대한 강화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한 번 회전하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의외로 허점이 많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은 좋지만, 모든 것이 의지 하나만으로 해결될 거라는 기대는 아픔을 유발합니다. 불안의 뿌리에 접근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긴 시간, 꾸준히 자기 분석의 과정을 통한다면 일부 통제가 가능하겠지만 완벽한 극복은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자책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사람인 이상 불안할 때도 있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죠.




오늘 이렇게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려보았는데요. 어떠신가요? 감정은 근본적으로 ‘에너지’입니다.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게도 만들고 주춤하게도 만들죠. 감정이 일어날 때 에너지도 함께하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는 소진됩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순간이 지나면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축 쳐지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불안을 경험하는 동안 100m 달리기를 수십 번 한 것과 같으니까요. 이것을 적절한 불안으로 바꾸어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써 장거리를 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불안’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불안을 ‘부정’ 하지 마십시오. 불완전한 인간은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불안을 자연스러운 나의 일부로 ‘인정’ 하시고 그것을 나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현실에 발을 디딘 채 문제를 해결해가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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