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짜리 하루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by 작가 전우형

광장에 주차된 차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고 빈 공터에는 그림자만 둘로 나뉘었다. 해가 지기 전 눈이 부시던 순간이 있었는데 입동 이후 서서히 태양의 남중 고도가 낮아지더니 어제부터는 같은 자리에 석양빛 대신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눈부심을 만끽할 틈도 없이 갑작스레 해가 진 걸 알았고, 곧 허탈했다. 오늘이 모두 지났건만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하루의 끝이 날카롭게 가슴팍으로 파고들었고, 하릴없이 사운드바의 음량만 키웠다.


소리가 채운 공간으로 사람의 흔적이 스쳐 지나가고, 긴 기다림 끝의 사소한 재회는 짧고도 희미했다. 진한 커피 향을 건네며 할 수 있었던 흔한 말. 체크리스트의 빈칸을 하나씩 채우면서 하는 것 같은 상투적인 인사.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곧 수많은 불빛들 속으로 멀어져 간 하나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물끄러미. 상의 구분이 불가한 곳까지. 이별의 절차가 모두 종료되고, 노래는 울었다. 오늘의 끝에서 나는 태양도 놓쳤고 사람도 놓쳤다. 빵점짜리 하루다.


주차를 마치고 퇴근길의 마지막 여로를 걷다 보면 같은 아이와 늘 마주친다. 그네의 단진자운동에 몸을 맡긴 채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아이는 행인 1의 등장에 흘깃 눈동자를 굴린다. 못 본 척 지나치지만 신경이 쓰인다. 초등학생쯤 되었을까. 춥진 않을까. 캄캄한 놀이터에 혼자 그네를 타는 이유가 뭘까. 발걸음을 돌려 핫팩 하나를 건넨다. 받아 드는 눈빛에 경계가 가득하다. 말없이 돌아선다. 나는 그 핫팩에 오늘 신경 쓸 분량을 털어냈을 뿐. 가늘고 긴 마찰음과 함께 그네의 단진자운동은 다시 시작된다.


접혀있던 인생의 한 페이지가 탁 하고 펼쳐지면 갑자기 와락 하고 고독이 파고들 때가 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막의 족적은 부는 모래바람에 이내 사라지고 만다. 시간은 기억을 지우고 나는 애써 기록한다. 휘발성 가득한 순간의 소산을. 그래서 오늘 하루도.


별일 없었길.

울지 않길.

좋은 꿈 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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