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 - 4

사소한 빛줄기 하나도 사라진 순간을

by 작가 전우형

멀리 그녀의 거처가 보였다. 커튼 너머로 노란빛무리가 새어 나오는 모습이 석양을 덮은 구름처럼 아름다웠다. 바람결을 따라 커튼이 나부꼈고 희미한 그림자가 물결 속으로 흩어졌다. 나는 다른 의미로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저 움직임을 따라가려면 애 좀 먹겠군. 어지럼증과 근육통으로 한동안 걷는 것도 힘들겠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이미 월광마저도 잠든 깊은 밤이었다. 커튼의 나부낌 따위에 위화감을 느낄 만큼 감각의 섬세함이 남아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커튼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고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지도 몰랐다. 기다림은 그런 것이니까. 그녀는 잠들지 못한 채 밤공기와 시름 중인 것이 분명했다. 어둠이 내릴 때를 기다려야 했다. 사소한 빛줄기 하나조차도 어둠에 완전히 매몰될 순간을.


그녀에게 소등은 일종의 '포기'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어둠은 달갑지 않은 존재였고, 스탠드 불빛은 그녀의 마지막 저항이자 미련이었다. 그녀에게 어둠이란 아늑함이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둠 속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무언가가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어둠이란 그저 빛이 도달하지 못한 공간일 뿐임을 머리로 알게 된 후에도 그녀의 발걸음은 늘 어둠의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밧줄처럼 팽팽한 긴장이 그녀의 심장에 채찍질을 가했고, 바로 눈앞에 절벽이나 허공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은 미신적 불안이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무의식의 저항은 한 차례의 긴 심호흡과, '어둠은 아무것도 아냐'를 마음속으로 수 차례 되뇐 뒤에야 잦아들었다. 그녀를 미지의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줄 마지막 등불을 내리는 일은 같은 맥락에서 시간과 노력을 요했다.


그림자 세상에는 [빛과 꿈은 영원의 속도로 멀어진다]는 철칙이 있다. 빛과 꿈은 그토록 상극이었다. 그녀는 꿈에 빠져들기를 원하면서도 빛을 놓지 않으려 했다. 영원한 낮은 그녀의 오랜 소망과 같았다. "밤 따윈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가 종종 내게 건네던 말이었다. "하지만 밤이 아니면 나는 올 수 없는걸?" '정확히는 밤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도 입을 삐죽 내민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도 혼자는 싫어. 정 밤이어야 한다면 네가 오고 난 다음에 바로 끄면 되잖아." 불가능을 알면서도 부정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저항했다. 귀여운 자존심이었다.


'여전하구나. 너는.' 빛이 남아있는 한 다가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녀는 먼발치로 나를 찾느라 까치발을 들고 있을 것이 뻔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거면서. 그녀는 나의 턱을 매만지고 심장소리를 듣고 호흡을 느꼈지만 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어둠과 동화된 존재였고 하나의 개체로서 분리될 수 없었다. 하지만 고집이 매력인 여자였다. 돌아보지 않는 그를 바라보는 눈빛과 앙다문 입술이 그녀의 성격을 말해주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그녀를 등졌기에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눈망울을 사랑할 수 있었고 꿈에 다가설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불빛마저 사라졌다. 항복의 신호였다. 동이 트기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짙은 어둠을 타고 미끄러지듯 그녀 곁으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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