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 - 6

그림자의 공감법

by 작가 전우형

공감은 그림자의 주요 덕목이다. 클라이언트가 흥분하면 몸놀림도 격하고 빨라진다. 움직임을 따라가려면 나의 심장박동도 함께 빨라져야 했고 그가 어떤 마음인지도 알아차려야 했다. 클라이언트가 할당되고 수습과정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클라이언트의 비언어적 신호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인수인계를 통해 클라이언트별 주요 특징, 생활 패턴, 인간관계, 감정이 격해지는 포인트, 하늘이나 땅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간과 같은 참고사항이 전달되지만 문서로 전달할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었다. 하루나 하루 반나절 정도 이전 담당자와 함께 클라이언트 관찰 시간을 가졌는데 그동안 나는 근처 나무나 집의 그림자를 옮겨 다니며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정작 나는 아무 움직임이 없는 무생물의 그림자를 흉내 내며 클라이언트의 주요 특징보다는 다른 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클라이언트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신기하게도 클라이언트는 그녀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돌아서서 그녀의 옆을 지날 때도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그녀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어쩌면 그녀에게 동정이나 연민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무신경함이 마치 나를 찌른 듯 아팠다.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 그녀는 나를 보지 않는 서로 다른 계단으로 연결된 어긋난 시선 속에 닿을 수 없는 절망은 난간 사이로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림자 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좋은 그림자는 클라이언트를 앞서 나가선 안돼. 그건 공감에서도 마찬가지야. 공감은 그를 앞서 나가는 것이 아냐. 그저 그를 이해하는 거지. 하지만 우린 늘 실수를 한단다. 그건 우리가 상대방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야. 상대를 완벽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설사 우리가 클라이언트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고 해도 말이야. 시간이 흐르면 너희도 한 번쯤은 같은 오류에 빠질 날이 올 거야. 늘 상대방을 관찰하다 보면 이제 그의 움직임과 생각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오거든. 그때를 주의해야 해. 그 오만과 방심이 너희의 움직임에 불필요한 과장을 집어넣을 테니까." '하지만 어떡하죠 선생님? 저는 이 클라이언트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늘 너의 뒤에서 너 하나만을 바라보는 여자가 있다고. 그림자가 생각을 갖고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대답 대신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대화가 존재하지 않는 대화를 늘 하다 보면, 언제부턴가 새로운 경험이 시작될 거야. 그건 화자가 존재하지 않는 청자가 되는 경험이지. 말한 사람은 없는데 너희는 분명 어떤 말을 듣게 될 거고, 그 말을 클라이언트가 한 것으로 믿게 될 거야." 한 학생이 물었다. "저희가 정신병자가 되거나 환청을 듣게 된다는 말씀인가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 하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어딘가가 고장 나는 것은 아니란다. 다만 어떤 신념이 마음에 자리 잡는 것과 같단다. 이를테면 '나는 그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어'와 같은. 그래서 늘 그 목소리를 듣게 된단다. 때로는 그의 무의미한 움직임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말 거야. 저기 엎어져서 잠이나 자는 녀석은 내버려 두고, 이제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어떻게 할지 방법을 알려주마."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학생까지도 귀를 쫑긋 세우며 순간적으로 교실이 조용해졌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돼. 그 목소리는 클라이언트의 생각이나 마음, 감정 따위가 아냐. 너희 스스로가 만든 목소리지. 이것 하나만 마음에 담고 있으면 바로잡을 기회는 있어."


'그래. 자꾸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어. 나는 그게 그녀의 목소리라고 생각했어. 그녀가 늘 그를 향해 소리치고 있다고 생각했지. 어쩌면 그녀를 향해 소리치고 싶었던 사람은 나였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녀는 왜 그렇게 그의 뒤만 쫓았을까?' 또다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측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어.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추측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지만 그것만으로 확인 도장을 찍는 건 불가능해. 정답은 알아낼 수 없단다. 하지만 진심으로 무언가가 궁금하다면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상대방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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