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곡선이 이삼일 단위로 꼭짓점을 찍고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다 내려가기만 하고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는 날이 있는데 그렇게 우울증 환자의 감정이나 활력 수준처럼 내리막을 거듭하다 보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을 만큼 거센 한파가 어느새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 느낌은 지극히 우울하던 수년 전의 내 마음과 같다. 하지만 한파에 얼어붙는 건 사람의 마음만은 아닌 모양이다. 언제나 우리 부부의 성실한 발이 되어주던 자동차가 시동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배려심 부족하고 무신경한 주인이 실외에 주차한 탓인지 추운 밤을 홀로 견딘 자동차는 죽음을 앞둔 병자처럼 몇 차례 쿨럭이더니 이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 추위에 배터리가 집을 나가버리는 걸 나는 몰랐다. 추우면 집에 들어와야 사는데, 이놈의 배터리는 오히려 집을 나가버리니 답이 없다. 집 나간 자식 달래듯 골이 난 배터리 박스를 어루만지고 비벼보아도 어디까지 가버렸는지 소식도 없다. 배터리가 시동을 못 걸어주니 자동차는 차가운 쇳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점프를 해야 하나... 하고 집을 나서다 오늘, 날이 조금 풀렸다는 소식에 밑져야 본전이지 하며 시동을 걸어보았다. 별 기대 없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스마트키 시동 버튼을 눌렀는데 아 글쎄 부릉하며 지난 며칠간 듣지 못했던 엔진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태어난 아기의 첫 울음소리처럼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처음엔 반갑고 좋다던가 하는 어떤 감정이 들기보다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어안이 벙벙해서 볼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함께 신기해하는 아내와 서로 눈을 맞추며 혹 이러다 곧 꺼지는 건 아닌가 잠시 불안해도 하다가, 평소처럼 자동차의 센서 알림과 오토 윈도나 히터, 라디오 등이 모든 기능이 정상 작동하고도 은은한 엔진음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니, 기분 좋은 안도감이 이제야 훈기라는 것이 약간 느껴지는 자동차 실내처럼 가득 채우고 있던 불안을 살짝 녹여주는 것이었다.
노력 없이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어떤 것들은 그냥 그렇게 물 흐르듯, 해가 뜨고 지듯 당연하다 여기며 신경을 벗어난 것들이 있다. 숨 쉬는 것처럼 평범한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당장 호흡기라도 떨어지면 생사를 다툴 만큼 위급하고 필수적인 것임을 그 얄팍한 호흡마저 끊어지기 직전의 어떤 순간에 이르러서야 알아차린다. 매일 먹던 반찬이 맛있고 따뜻하고 질 좋은 수준이었다는 것도 열심히 맛집 검색해서 찾아간 멀리 있는 유명한 음식점에 가서 비싼 값 치르고 그래 봐야 별맛도 없고 이게 왜 맛집인가 하는 일을 겪어보고 나서야 깨닫는 것처럼. 그러니 나는 날씨가 영하 15 도건 20 도건 버튼만 누르면 자동차 시동이야 알아서 걸리는 줄 알았고, 기름만 제때 넣어주면 알아서 굴러가는 것이 현대 문물의 중심에 선 '자동차'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날이 덥건 춥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문 밖에 덩그러니 세워두면서 변변한 반찬 하나, 따뜻한 옷 한 벌 없이 찬 밥 한 그릇 툭 하고 던져준다고, 너라면 그런 꼴 당하고도 멀쩡히 살아있을 수 있겠느냐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니, 푸대접도 그런 푸대접이 없으며 참 그 별것 아닌 무관심이 사람도 잡고 자동차도 잡겠더라고 가슴을 칠 밖에.
그래도 참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다. 나 같으면 그딴 주인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을 텐데, 이 착하고 요령 없는 자동차는 겨우 이틀 쉬고 다시 돌아와 준 것이. 사람이며 무생물이건 정 준만큼 주인을 대한다는데 요즘따라 오죽 공짜만 찾기 바쁘고 노력 안 들이고 대박 터지길 바라며 제 건 쌀 한 톨 안 주면서 남의 것만 제 쌀독에 부어두길 바라는지. 그래서 겨울 한파가 더 싸늘한가 싶고, 그러다가도 남 욕, 세상 욕할 것 없이 나부터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 한 번이라도 되돌아보며 잘해주어야겠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전이어서 그런가, 요 며칠 선물처럼 무언가를 깨닫는 일이 많은데 깨달을게 많아서 좋은 건지 아니면 그만큼 내가 놓치고 살았던 것이 많아서 안 좋은 건지 계산은 복잡하지만 무언가 생각해볼 일이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므로 오늘도 이렇게 쓰고 기록하고 남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