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브런치 연말 결산

올해가 47시간 35분 남은 시점에

by 작가 전우형

동지와 크리스마스도 지났고 2021년의 마지막 장을 떼어낼 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늘 그렇듯 마무리가 다가올 때면 애써 미뤄두었던 지난 아쉬움들이 꼬리를 문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뭘 했을까? 무엇을 이뤄냈을까? 당초의 다짐과 달리 시간의 부지런함에 늘 뒤처져 있었고 거듭된 핑계로 나의 태만을 방어하기에 바빴던 나날들. '무슨 나라를 구하겠다고!' 하며 노트북을 덮어버리기도 했고, 내려놓는 것도 지혜라며 홀로 다독이던 밤도 적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시간의 멀어짐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보면 마르지 않는 아쉬움이 오히려 갈증을 더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후회와 아쉬움마저도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들이어서, 그 낡고 더딘 다리라도 이끌고 꾸준히 걸어온 것이 대견스럽고 기특한 마음도 들다가, 막상 그런 생각에 기대어 위안을 찾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 야심 차게 기획하고 시작했던, 한편으로는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도 했던 글들이 막상 쓰다 보면 맥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그 뒤섞인 맥락을 차분히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연결하며 엇나간 가지를 쳐내고 수정할 여력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반복되는 오늘에 지치고 때로는 다른 중요하고 급박한 일들에 우선순위가 밀리다 보면 어느새 끊어진 지점조차 찾아내기 어렵고, 어렵사리 찾아내더라도 그즈음에 내가 어떤 마음과 생각과 태도로 그 부분을 쓰고 있었는지 스스로조차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힘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용두사미가 되거나 애초에 용두 근처에도 올라가 보지 못한 글들이 수많은 지난 페이지들 중 하나로 사장될 때마다 아쉬움이 들면서도 그래도 다시 써보자, 계속 써보자 하며 다독이는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글쓴이조차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계속된 자기 의심에 휩싸이고, 펜을 놓고 싶어 지고, 글은 늘어지고 생동감이 반감되니 글쓰기 동력이 멈춘 자동차처럼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따로 물주도 없으니 누가 나를 방치해서 그렇다 핑계 댈 거리도 없어서 스스로의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흘러가버린 시간에 조바심치며 마른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마음이 흐린 날은 맑은 하늘도 어딘지 모르게 구름이 가득해서 좀처럼 내가 서 있는 곳만 햇살이 비켜가는 것 같고 쥐구멍도 아닌데 볕 들 날만 기다리는 입장이어서 그늘진 곳을 스스로 찾아 숨으면서도 내 주변은 이리 춥고 섭섭한지 한탄하는 꼴이 되려 우습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나는 쓰는 사람이고,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이고, 쓰는 것이 편하든 불편하든 숨 쉬듯 당연히 그리 하는 사람이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해가 뜨든, 구름이 하늘을 덮든, 달이 아침에 뜨든 저녁에 뜨든, 그렇게 날씨나 계절과 관계없이 틈나는 대로 쓴다. 쓸 곳이 없어도 쓰고 날이 좋고 자리도 좋아도 쓴다. 기분 좋은 날 잘 써지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났다고 해서 졸작만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쓰다 보면 어느새 눈물은 멎어 있고 마른 자국만 눈가에 가득하며 어떤 날은 쓰다 보면 불현듯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쓰는 게 일상이라 하루라도 안 쓰면 끼니 거른 듯 허전하고 한 사나흘 볼일도 못 본 것처럼 속이 불편하다. 그렇게 태어난 글이 해묵은 속내를 말끔히 긁어낸 것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어쩔 수 없고 스스로 읽을만하다 느끼면 좋지만 영 시원찮아도 또 어쩔 수 없다.


그토록 쓰면서 웃고 울다 보니 한 해가 다 지나갔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일은 미련을 정리하는 일이고 내년의 등짐을 더는 일이다. 반복되는 일이고 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생략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2020년은 브런치를 시작한 해였고, 5월 브런치 채널을 개설한 이래 7개월간 133편의 글을 썼고 122명의 독자분께서 부족한 브런치 채널을 구독해주셨다.

https://brunch.co.kr/@highting1/145

2021년에는 연간 173편의 글을 발행했고 99명의 독자분께서 새롭게 채널을 찾아주셨다. 여느 작가분들의 브런치는 쭉쭉 성장하는 것만 같은데 이토록 더딘 채널이라니 홍보 부족인가, 글이 형편없어서인가 가끔 속이 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독자분이 생겼다는 점에 감읍할 따름이다.


올해 새롭게 시도해본 것이 있다면 단편의 단편을 이어나가는 소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반응은 보잘것없었고 나에겐 아프지만 귀한 손가락이다. '단편의 단편소설'이라는 매거진을 새로 만들었고, 대략 70여 편의 실험작들을 썼다.

https://brunch.co.kr/magazine/shortest-story

초기에는 초단편 분량의 습작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올해 가을을 기점으로 중단편 분량의 시리즈물을 기획했고, 16편을 '대낮의 납치극'이라는 브런치 북으로 엮어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kidnapped

그리고 현재도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소설을 19편째 이어나가는 중이다.

https://brunch.co.kr/@highting1/319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글쓴이마저도 스스로 갈증과 혼란의 와중이지만 계속해서 애써보는 중이다. 뭇 작가분께서 성토하셨듯 소설은 브런치에서 주류는 아닌 느낌이며 이번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서도 대상으로 선정된 10편의 브런치 북 중 소설 분야는 없었다는 아쉬움 담긴 글도 보았다. 소설을 쓰는 일은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글이 쓰기 어려움은 매한가지나 나의 생각과 나의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쓸 때와 어떤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경험과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생각의 결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야 했고, 글쓰기의 방식 또한 새로움을 필요로 했다. 무엇보다도 들인 시간이나 노력에 비해 결과물은 형편없거나 가끔은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때도 있고 심지어 무반응으로 느껴질 때도 있어 좌절이 머리채를 잡아끌고 목표한 곳에 도착하기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자주 방문하는 작가님 중에서 'Rudolf' 님이나 '신소운'님처럼 소설을 이어나가는 분들을 보면 많이 배우고 존경심도 느낀다. 그런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사한 점은 글 친구가 생겼다는 점이다. 온라인으로는 발행하는 글마다 관심 갖고 댓글 달아주시는 '공감의 기술'님과 '신미영'님이 있고, 오프라인으로는 좀처럼 마르지 않는 잉크와 만년필을 선물해주신 카페 손님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는 동향 누님이 있다. 글쓴이의 외로운 길에서 누군가 자신의 글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과 의미 있는 피드백이 돌아오는 것은 가뭄의 단비 같은 일이다. 특히나 가까운 독자와 문학적 대화를 주고받을 기회는 대단한 행운과 같다. 쓰는 과정에서 담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도 있었고 스토리상의 난맥을 해결할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기도 했었다. 선물 받은 만년필과 잉크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글이 멈춰버린 날에 수첩을 들고 손글씨로 한 줄씩 써내려 가다 보면 멈췄던 회로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도록 돕는 귀중한 보물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채운 아이디어 노트가 어느덧 3권째다. 작가마다 마법의 만년필이 한 자루씩 있다고 한다. 내게도 그런 축복이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카페라는 공간과 늘 옆에 놓인 커피도 글쓴이의 여로에 햇살 같은 존재들이다. 이 글을 통해 숨겨두고 미뤄왔던 원조와 관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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