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언어가 귓가를 맴돌 때

'개비다'와 '땡초'

by 작가 전우형

첫눈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그 잠깐의 느린 낙하가 자신이 겨울의 전령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작은 얼음 알갱이들은 우산, 바람, 나뭇가지, 빗방울과 합주하고 변주했다. 비의 직선이 눈의 곡선으로 바뀌고, 그 사이를 빗줄기가 추월하며 공간을 수놓았다. 마치 어제보다 한참 떨어진 겨울날 아침 기온처럼 비와 눈은 서로를 휘감으며 한기를 가득 머금은 찬바람을 택배 상자에 담아 문 앞에 가져다 두었다. 강아지 눈곱만 한 얼음의 결정들은 테이블 위로 후드득 떨어지더니 이리저리 제멋대로 굴러가다 멈췄다. 이내 하얀 점의 경계가 흐릿해지며 투명한 원으로 퍼져나가더니 세상과 하나가 되었고 그 짧은 여행을 마감했다. 겨울바람은 불어왔으나 아직은 눈의 계절이 아닌 것이다.


영화 '첫눈'의 러닝타임은 대략 30분가량이었다. 올해의 여름 비 양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첫눈도 소나기처럼 일대를 훑고 지나갔고, 어느새 머리 위로 뻐끔한 푸른 하늘이 희미한 햇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에서부터 또 다른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그 잠깐의 푸르름만으로도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제 도착한 옷 꾸러미들을 정리할 때 우연히 들은 말.

"그럼 이 옷들 색깔별로 정리하고 개벼두기만 할까?"

'개비다'. 옷을 개다 할 때의 그 '개다'의 경상남도 방언이다.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말이 송곳처럼 고막을 파고들었다. 어떤 말은 한마디만으로도 부산을 떠올리게 하는데 '개비다'라는 한 어절이 딱 그런 언어였다.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숨통이 트인 느낌이었다.


식사자리에서였다. 내가 고추를 집어먹고 "아유 매워. 땡초가 섞여있나 보네." 하자, 옆에 있던 5살 아이가 "삼촌, 땡초가 뭐야?"하고 물어왔다. 나는 "응, 땡초는 매운 고추를 말하는 거야. 청양고추 같은 거"하고 설명해주었고 아이는 대충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매운 고추, 매운 고추"하며 이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지만 정작 궁금해진 건 나였다. '그런데, 땡초가 표준어였나?'

[땡초 : '땡고추'의 경상도 방언]

[땡고추 : 아주 매운 고추]

'땡초'도 방언이었다. 예전에 국밥집에서 자주 듣던 말이 떠올랐다.

"아지메~ 여기 땡초 좀 주이소~!"

이 말 역시 부산에서나 자주 듣던 말이었던 것이다.


사투리는 타지에서는 생소한 말이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는 공기처럼 내 삶을 채우던 언어였다. 나는 친구들과 고향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숨을 쉬었고 그 짧고도 긴 시간 속에서 추억을 쌓아왔다. 하지만 고향으로부터 몸도 마음도 멀어지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투까지 표준어스럽게 교정하게 되면서 때로는 숨이 가쁠 때도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가 그게 그거지 하고 도매 취급당할 때도 있지만, 정작 대화를 나눠보면 고향 사람인지 타향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명확해서, 간혹 익숙함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이내 다름을 느끼며 실망 아닌 실망을 하던 날도 더러 있었다.


오랜 시간 부산을 떠나 살아온 탓에 잊어버린 줄 알았던 고향의 언어가 최근 몇 사람과의 만남을 계기로 주변을 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향에서 늘 듣던 사소한 말과 억양이 대화 가운데 조곤조곤 묻어나고 같은 향수와 시대상을 공유하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늘어나자 신선한 공기를 마신 듯 속이 뻥 뚫리고, 허전했던 마음 한구석이 수선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잠깐의 혼란과 반가움은 나를 감상에 젖어들게 했고 슬픔에 잠기게도 했다. 쉬이 가라앉아도 좋았고 오래도록 흔들어도 좋았다.


비도, 눈도 언제까지고 구름 속에 머물고 싶었을까? 고향에서의 삶과 타지에서의 삶이 정확히 반반이 된 지금의 시점에서 나는 어디에 머물고 싶은 걸까? 소나기든 첫눈이든 결국 구름을 떠나야 할 운명이라면 너무 오래 머물다 아프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의 품이 따뜻하다 하여 영원히 안겨있을 수 없는 것처럼. 어쩌면 고향은 이렇게 가끔 향수로 남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경기도 한쪽 끝에서도 가끔 고향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면 세상의 변수와 소낙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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